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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연하장

, 그리고 경향잡지

by 케니스트리

이 연재의 2024년을 마무리하며. 많은 공감이 지속과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성당에서 예비 신자 기간에 써서 낸 성경 필사 노트를 돌려받았습니다. 세례식 이후, 그간의 흔적을 잠시나마 잊고 있었는데 다시 펼쳐보니 삐뚤빼뚤한 글씨 사이사이 틀린 글자와 그것을 덮고 다시 쓴 성경의 말씀들이 보였습니다. 쓰다 보니 노트 장이 부족해 다른 종이를 덧붙여 마무리 한 필사 노트. 그 마지막 장에 수녀님께서 쓰신 자필 카드가 소복이 얹혀 있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필리 4:4)'
하느님 자녀 되심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24년 12월 15일. Sr. Aqu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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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 제일 처음 성당을 찾았을 때 따스히 맞아 주신 수녀님. 낯설었던 공간에서 제 이름 불러 주시고 마음의 문을 열도록 도움 주신 수녀님은 은인이십니다.


수녀님의 카드를 보고, 연말에 저는 쓰지 못한 정성의 연하장을 모두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받게 됨에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꼭 답장을 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또 다른 연하장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편집자님이 1월호와 함께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 잡지를 받아보실 때 즈음이면 '미카엘'이라는 본명을 받으셨겠군요. 새롭게 다시 태어나심을 축하드립니다. 다가오는 2025년, 주님 안에서 평안과 행복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반가운 연하장과 함께 잡지는 총 세 권이 왔습니다. 저의 글을 펼쳐보고, 감격스러운 마음에 여러 번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수녀님께 한 권을 전해드렸습니다.


"이 잡지에 저의 글이 있어요. 석촌동 성당도 나오고, 수녀님도 있어요."


마치 학교에서 받아쓰기 100점을 받아온 어린아이처럼 달려가 건네드린 잡지에 수녀님은 놀라고, 또 더 환한 미소로 기뻐하시며 '잘 읽어 보겠다'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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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잡지


브런치에 신앙과 삶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 먹고 <카페 드 바이블>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첫 글로 순교 성인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에 대한 회고 '마지막 편지'를 쓰고 두 번째 글을 집필 중에 있었습니다. 그때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2025년 1월부터 <경향잡지>의 칼럼에 글을 기고해 줄 수 있겠냐는 한 편집자님의 제안이었습니다.


경향잡지는 1911년에 창간된 우리나라 간행물 역사상 가장 오래된 잡지입니다. 칼럼 기고는 제게 너무도 영광스러운 일이나, 제안을 선뜻 수락하겠다고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직 세례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주요 독자층일 성실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저의 이 짧은 경험과 얄팍한 지식의 깊이로 가치 있는 글을 전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당 주제로 글을 쓰면서도 당시는 천주교에 대해서도, 신앙에 대해서도 아직 잘 모르던 시기였습니다. 다만 성당에 다니며, 제 삶 속에 의미 있었던 말씀이나 마음이 편안해진 경험을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남겨 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글을 위해 교리 공부 시간에 무언가 와닿는 내용이 있으면 노트에 적고, 미사 중 신부님 강론에서도 마치 밑줄 그어가며 듣는 수험생처럼 수첩에 메모하며 나중에 그 의미를 되새기며 글을 썼습니다. 글은 확실히 제가 가톨릭의 본의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가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편집자님의 기고 제안은, 일기장처럼 편하게 적던 브런치 연재와는 다른 무게로 다가와 하루 반나절을 숙고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신앙 이전에 글을 사랑하고 또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또 글의 덕을 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첫 원고를 지난 10월경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작가님의 멋진 첫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쁜 한 달이었습니다. 비신자로서, 그리고 예비신자로서 작가님께서 느끼셨을 마음이 와닿았습니다. 신앙의 불길이 약해진 신자들, 성당으로의 발걸음이 주춤한 독자들에게 깊은 생각거리를 안겨 줄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원고의 게재가 결정되고 온 편집자님의 회신입니다. 언젠가 저의 글이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미친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편집자님의 정성스러운 답변은 의지와 방향을 옳게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약속의 글


약속한 글은 총 네 편으로, 각각 새 해의 1월부터 4월까지 간행물에 수록이 예정되었습니다. 글의 주제는 1. 계기, 2. 기도, 3. 세례, 4. 새 신자의 삶으로, 하나의 흐름을 정하고 우선 성당에 가게 된 계기부터 글을 적었습니다. 그렇게 3월분까지 원고를 무사히 제출했고, 저의 글이 실린 1월호 경향잡지를 감사히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여러 우연이 이어져 인연이 되는 신비를 경험하곤 합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가을 초입의 어느 날, 영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성당은, 늘 탄천 길에서 마치 등대처럼 길을 밝혀주던 석촌동 성당이었습니다. - 작가의 문장 중 (단락의 요약)


편집자님은 제가 엄밀히 말하자면 비신자임에도, 저의 글만으로 제가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될 것이란 믿음이 확고하셨던 걸까요? 편집자님이 우연히 발견하고, 기고 제안을 주시게 된 이유였던 그 첫 글은 믿음을 다소 흐릿하게 덧칠한, 가톨릭을 친근하게 여기는 비 신자의 흔한 감상에 불과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편집자님의 믿음으로 경향잡지에 글을 기고할 용기가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오히려, 기고를 통해 마음속 믿음의 모습이 윤곽을 드러낸 듯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으로부터 쌓이고 더해진 막연한 어떤 감성 무리가 글이 되며, 믿음의 근거와 실체로 정리가 되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요한 1:14)


두 개의 카드


연말 두 개의 연하장 중 하나는 제가 길을 잃고 헤맬 때 성전으로 저를 이끈 수녀님, 또 하나는 저를 알아보고 또 세례를 받을 것이라 믿고 기회를 주신 편집자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카드는 두 개이나 모두 한 길에서 얻었습니다. 모두 제게 벅찬 축복의 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주님의 은총과 함께 희망찬 새해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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