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커피란 (revision)
‘커피’라는 단어를 대할 때면 함께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쉼, 위로, 대화, 활기와 같은, 왠지 느리게라도 앞으로 걸어가게 해 줄 것만 같은 그런 도움들이다.
지금부터 모호한 결론을 향해 두서없이 풀어낼 이 이야기는, 글을 쓰다 무심히 집어든 빈 커피잔과 같을지도 모른다. ‘커피를 좀 줄여야겠어’라 말하면서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커피머신 앞으로 걸어가 다시금 가득 채우고 싶어지는 즐거운 모순. 텅 빈 욕망의 잔.
'그래, 난 뜨거운 열정보다는 따뜻한 온기가 더 좋았어'
라고, 얼음을 두 개 띄운 뜨거운 커피를 보고 생각했다.
요즘 직장인들은 따뜻한 커피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더 자주 찾는다. 날씨와는 무관하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라는 표현이 이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열정보다 냉정이 더 어울리는 사회이기 때문일까.
문. 이른 아침 출근 중인 고객이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다음 중 바리스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A. 완벽한 커피 맛을 위해 분쇄도를 측정한다
B. 머신 주위 청소되지 못한 잔여 이물질이 있는지 점검한다.
C. 고객이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도록 덕담을 건넨다.
D. 고객이 주문한 즉시 최대한 빠르게 음료를 만들어 제공한다.
커피가 궁금해 바리스타 자격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준비하며 커피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들은 꽤 흥미로웠다. 청결, 정성, 맛과 같은 자질 외에, 가장 기본이 되는 ‘좋은 바리스타의 조건’은 따로 있었다. 좋은 원료를 선별하고, 정확한 과정을 지키며, 기기와 주방 환경을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덕목은, 고객을 편하게 하는 서비스 정신이라고 교재는 말한다.
아침, 가장 바쁜 출근 시간에 바리스타가 해야 할 일은 ‘최대한 빠르게 고객이 주문한 커피를 내놓는 것’이다. 대가를 지불한 공급이라는 냉정한 거래의 이면에는, 커피를 원하는 이의 상황을 살피는 바리스타의 세심한 감각이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좋은 커피가 완성된다.
실제 SCA 바리스타 스킬 필기시험에 출제된 해당 문제의 정답은, 당연히 ‘D’였다.
그렇다고 해도, 가장 좋은 서비스란 품질과 경험이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성립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때로는 타이밍 하나가 수많은 고민과 숙고의 깊이를 이기기도 한다는 것, 그 사실이 바로 ‘문화’라는 일의 어려운 점이다.
직장인이자 글이 취미인 사람으로서, 의식적이든 무의식 중이든, 잔을 들어 마시는 한 모금의 커피는 쉼이고, 위로이며, 대화이고, 소재다.
커피를 상징하는 여러 단어 중 ‘쉼’을 가장 좋아한다. 커피 뒤에는 마침표보다 쉼표가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처음 ‘카페, 진정성’을 발견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카페, 진정성’은 커피 맛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공간이 편안하고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근처에 있으면서도 이 공간을 아는 사람이 드물어, 모처럼 식사를 함께한 동료에게 마치 비밀스러운 애장품을 꺼내 보여주듯 소개하곤 했던 그런 장소였다.
바다 건너 멀리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게 하는 핑계고
아침의 허기를 잊고 정신없이 일처리를 하게 할 약이고
어제의 의기소침 뒤 또 힘내어 하루를 살아가게 할 힘이고
글을 한참을 써도 다 전하지 못할 이야기의 시작이다.
"좋은 아침이에요!"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자 쓴 사장님이 있는 그 카페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눈앞에 나타났다. 게으른 여행자의 늦은 아침으로는, 아무렇게나 걷다 우연히 만난 카페의 라테와 크로와상 샌드위치가 제격이다. 크로와상을 한 입 베어 물고 우물우물 씹던 중, 어디선가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와 귀를 기울이니 한국 가수의 노래였다. 사장님과 눈이 마주쳐 인사하며 묻자, 아내가 한국 분이라 자신도 한국 노래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내가 한국 사람인 것 같아 일부러 노래를 틀었다고도 했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려 서성이며 길을 찾던 중 발견한 그 카페는, 왠지 모르게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따뜻한 것은 외관만이 아니었다. 커피와 사장님의 배려, 그 마음이 고스란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커피 맛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을 이끄는 것은 카페의 분위기와 사람, 그리고 그들이 품은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찾지 않는 새를 탓하기 전에, 먼저 머물고 싶은 가지가 되어야 해.’
왠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문화란, 그런 가지의 모습이 아닐까.
좋았던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그런 여운을 남기는 공간이 있다. 한창 다니던 시절에는 어떤 날은 차로, 어떤 날은 자전거로, 또 어떤 날은 걸어서 그 카페를 찾았다. 집에서 적당히 떨어진 거리라 외출하는 기분도 좋았다. 주말 낮이면 대체로 쿠즈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몇 달 만에 다시 찾았을 때, 사장님은 “요즘 무슨 일 있으신가, 왜 안 오시나 했어요”라며 반겨주었다. 그 순간, 쿠즈는 왠지 멀고 험한 길을 돌아 도착한 따뜻한 집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떠나도 잠시 혼자라도 더 머물고 싶은 이 공간에서, 글을 썼고, 꿈을 키웠으며, 인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모두, 물이 아니라 진심을 줘야만 잘 자랄 수 있는 가녀린 꽃과도 같았다. 그래서 서너 평 남짓한 이 공간은 내게 볕 드는 정원이거나, 바람 드는 온실이었다.
하지만 이 카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 자본의 이기주의가 소상공인의 터전과, 이곳에 머물던 오랜 추억을 지워버렸다.
“유럽의 도시들은 십수 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우리는 너무 빨리 바뀌어.”
지인은 최근 결혼기념일을 맞아 아내와 함께 추억의 장소를 찾으려 했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섰다. 나 역시 그 아쉬움에 깊이 공감했다. 그리운 공간을 다시 찾으려 하면, 이미 사라진 경우가 많다. 바삐 변하는 도시에서의 기억은, 너무 빠르게 지워지고 또 대체된다.
일하는 중에도, 여행을 하는 중에도, 문화 속에도, 상상 속에서도 존재하며 늘 한 잔의 위로가 되어주는 커피는, 굳이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너무 쉽게 ‘식는다’는 것이다. 가장 맛있는 농도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시간이 지날수록 얼음이 녹아 맛이 옅어지고, 갓 추출한 에스프레소의 최적 온도도 잠깐뿐이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쉽게 식는 것은 비단 커피만이 아니다.
회사원의 식어가는 열정을 다시 채워주는 것이, 온기를 잃은 채 방치된 커피 한 잔이라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한창 자판을 두드리다 마실 타이밍을 놓쳐 미적지근해진 커피를 바라보는 순간, 커피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뜨거웠던 내 열정 네가 다 가져갔니?"
'어떤 이에게는 그저 맛없는 쓰디쓴 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떤 이에게는 채식주의자의 삼겹살 회식처럼 곤란한 것일지도 모른다. 또 어떤 이에게는... 하지만 여기 커피 덕분에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노라고 조용히 회고하는 이가 있다. 이 순간에도 원고를 마감했다는 핑계로 한잔하려는 사람이.'
- <생존 커피>, 최하나 -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에, 쓰디쓴 커피는 삶을 닮았다. 쉼과 비움의 매력을 알면 달콤하고, 그걸 모르면 그저 쓸 뿐이다.
커피는 어쩐지, 꼭 글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