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의 확산: 스타트업의 위기
모두가 정처 없이 허우적 댈 때,
나는 바닷속 물의 길을 보았다
산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헤엄을 치다가
고개를 옆으로 해 편안히 숨을 쉬었다
모두가 나를 따라 그렇게 했다
침몰하는 배에서 나온 이들은
다행히도 쉬어갈 섬을 만났다
여러 기업을 거쳤다. 그중 스타트업만 네 곳이다. ‘참 스타트업’의 방식으로 소통하고 성장한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은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그래서 회사가 10년이 되어도 아직 규모가 작거나 기술 성숙도가 낮다면 스스로를 스타트업이라 부르곤 한다.
스타트업은 대체 무엇일까. 여러 글에 정의된 내용을 종합하면, 스타트업(Start-up)은 세상에 없던 혁신적인 기술이나 서비스를 개발한, 확장 가능성이 있는 신생 기업 혹은 프로젝트를 뜻한다.
자칭이든 타칭이든,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혁신과 문화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자칭 스타트업은 그 타이틀을 사용하면서도, 실상은 혁신이나 열린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신구 갈등, 세대 차이, 잘못된 문화 인식, 높은 퇴사율, 성장 정체 등 여러 문제 속에서 몇 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존폐 위기를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타성에 젖어 방만한 경영을 하다가 변화의 시기를 놓치고 결국 쇠락하는, 오랜 기업의 길을 더 이른 시기에 걷는 셈이다.
이런 기업들은 실무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금세 위기의 징후가 드러난다. 우선, 기존 구성원들에게 패배의식이 만연하다. 자신들이 일부가 되어 일구어온 터전을 스스로 부정하며, “어차피 안 돼”, “어차피 안 바뀌어” 같은 말을 반복한다. 체념과 비판에는 적극적이지만, 정작 일에는 무기력하다. “내년은 너무 멀어요”, “송년회요? 그때까지 내가 여기 있을지 모르겠네요” 같은 말이 아무렇지 않게 오간다. 극단의 경우, 새 식구에게 “아니, 능력 있는 분이 왜 이 회사에 오셨어요?”라고 말하며 새싹을 꺾어버리기도 한다.
더 심각한 신호는 일부 구성원들이 이 부정적인 인식과 태도를 주변에 퍼뜨리는 것이다. 조직에는 오랜 동료들도 있지만, 이제 막 합류한 새 직원들도 있다. 부정의 전염은 그들의 의지를 꺾고, 불신을 키운다.
리더의 기존 인원에 대한 불신도 하나의 신호다. 이는 일종의 악순환이다. 구성원이 열정을 잃으면 리더는 그 탓을 구성원의 무능으로 돌리고, 구성원은 그런 리더와 회사에 헌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서로가 반대로 노를 젓는 셈이다. 배는 그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적 부진이 주된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회사는 커졌지만 실적이 예전만 못하면, 리더는 투자의 타당성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위기감은 스트레스로 전이되고, 그 감정은 구성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또 하나의 원인은 비전 로드맵의 부재다. 로드맵이 있다면 실적 부진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도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노력을 시도했을 것이다.
물론, 당장의 성장이 크고 투자금이 넉넉하다 해도 방심할 수는 없다. 바로 ‘고인 물’이라 불리는 정체된 문화, 부정의 확산 때문이다.
정체된 생각은 고정관념이 되고, 타성에 젖어 발전을 거부하며, 때때로 새로운 시도에 찬물을 끼얹는 오래된 구성원들을 흔히 ‘고인 물’이라 부른다. 고인 물은 새로 온 이들을 경계하며,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네?” 같은 의심의 눈빛을 보낸다. 그들은 머물러 흐르지 않으며, 적극적인 시도에 ‘쓸데없는 짓’이라며 제동을 건다.
고인 물로 인해 탁해진 문화를 맑히려면 새로운 물의 유입이 필요하다. 채용을 확대하고, 조직은 쇄신 의지를 내보인다. 그러나 새 물만 유입된다고 저절로 조직이 맑아지지는 않는다. 맑은 물이 흘러 전체를 정화하려면 마중물이 필요하다. 바로 리더의 깨인 생각과, 변화를 수용하려는 태도다.
“비효율을 줄이려면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지금 방식은 같은 일을 두 번 하게 되고, 색인도 안 되어 나중에 찾기 어렵습니다.”
“부서에서 명확히 보이는 실적이 없으니 기존 방식을 탓하는 것 아닌가요? 새로운 시스템 도입은 적응 부담도 크고, 저는 반대입니다.”
“실적이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주먹구구로 일해서 데이터를 남길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시스템을 바꾸자는 겁니다. 이후 영업과 마케팅 효율도 더 좋아질 겁니다.”
이런 대화가 실제 회의에서 오간다면, 누가 고인 물이고 누가 새 구성원일까. 고인 물은 쉽게 반박하기 어려운 무기를 갖고 있다. “그런 생각, 예전에 안 해봤을 것 같아?” 같은 말이다. 이는 새로운 시도 전체를 쓸데없는 일로 만들며, 변화의 싹을 자른다.
신규 인원 비중이 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전체적으로 근속 연수가 짧아지는 회사라면 리더조차도 고인물화된 경우가 많다. “그때는 없는 인원에도 열 배 성장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왜 정체되어 있을까?”라는 불만이 커진다. 그러다 결국 “구관이 명관”이라며, 오랜 구성원만을 신뢰하게 된다. 그 시절의 빠른 성장과 보람을 자주 회상하며 새로운 인원의 동기를 꺾는다. 이는 기업을 과거의 영광에 붙잡아두는 원인이 된다.
스타트업 문화에서 기존 인원의 부정적 시각과 그 파급 효과를 언급한 이유는, 스스로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기 위함이다. 그때 나는 희망을 품고 지금의 회사에 들어왔고, 적잖은 경력을 살려 기존 구성원들과 앞으로 함께할 동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자 했다. 이제 두 해가 지났다. 나는 고인 물일까, 맑은 물일까.
약 2년 전 적었던 이 문화 관련 글이 지금도 어색하지 않게 읽힌다면, 여전히 그 마음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 역시 돌아보고 회고할 시점에 다다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