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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과정

미지의 마케팅 나무 ep.7

by 케니스트리

“반가워요, 최우현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미지입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팀장님은 웃고 있었다. 명화가 팀장님을 자리로 안내했다.


“팀장님, 이쪽이에요. 노트북 켜시고, 일단 드린 이메일로 저희 그룹웨어 계정에 접속하시면 되고요, 메신저는...”


명화가 이메일, 메신저, 그룹웨어 시스템 설명을 마치고 돌아가자, 공간엔 팀장님과 나, 둘만 남았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만 간혹 들리고, 적막이 우리를 감싼 듯한 상태가 한동안 이어졌다.


자리를 둘러봤다. 이 구역에는 마주 본 책상 열이 두 개였다. 스탠드형 옷걸이와 책장, 수납장이 별도로 놓인 독립된 공간은 본부장님 자리였다.


두 개의 열 중 하나는 영업팀이 쓰고, 다른 하나는 마케팅팀을 위해 비워져 있었다. 나와 팀장님은 서로 마주 보는 자리였다.


“매니저님?”


“네, 팀장님.”


“잠시 시간 되시면, 같이 커피나 사러 가실까요?”


언제쯤 날 부를까 하며, 별로 할 일도 없이 기다리던 중이라 그 제안이 반가웠다.


“네, 좋습니다”


복도를 따라, 나는 팀장님의 반보 정도 뒤에서 걸었다. 팀장님이 문득 내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지 매니저님, 원래 운영팀에 계셨다고 들었어요”


“네, 거기서 한 8~9개월 정도 일했어요”


“갑자기 오시게 돼서 당황스러우셨겠어요?”


‘물론 당황스럽고, 지금도 어색하죠’


마음과 달리, 표정은 아니라며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저도 그래요. 처음은 늘 어색하네요”


내가 자주 가는 카페는 건물 1층 입구로 나와 건너편에 있었다. 팀장님에게도 그 카페를 먼저 소개하고 싶었다. 잠시 방향을 몰라 머뭇거린 팀장님.


“팀장님, 이쪽이에요”


팀장님은 나보다 경험도 많고, 불편함이나 어색함 같은 것은 없을 것 같았지만, 방향을 잘 모르는 모습에서 나와 같이 무언가 새로움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처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마케팅이 처음이고, 팀장님은 이 회사가 처음이고. 듬성듬성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겹치고 얽혀 조금 더 촘촘해진, 한 여름의 그늘이 문득 그려졌다.




일단

영업본부


“팀장님, 저희 소속이 영업본부죠?”


궁금한 걸 물었다. 팀장님은 끄덕이며 답했다.


“네, 일단은요”


‘일단은?’


의미가 궁금했지만, 이어진 팀장님의 질문에 되묻지 못했다.


“매니저님, 마케팅을 해본 적은 없다고 했죠?”


“네. 운영팀에 있을 때 행사나 영업 홍보물 제작 같은 결재 품의가 올라온 건 본 적이 있어요”


“네, 그런 일들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팀에서는 좀 더 넓게, 멀리 보고 필요한 활동을 기획하기도 하죠”


‘좀 더 넓게? 멀리?’


“잘 이해 안 되죠? 천천히 알게 될 거예요”


커피를 사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커피가 나오자 들고 자리로 바로 올라왔다.


영업팀


자리에 앉은 지 10분쯤 지났을까, 잠시 소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사람들이 우리 자리 쪽으로 왔다. 회의를 마친 영업팀이 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낮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키 큰 남자분 하나, 왠지 친절해 보이는 조금 작은 남자분 또 하나. 모두 운영팀에 있을 때 내게 전자계약서나 계산서 처리와 같은 일들로 한두 번씩은 메신저로 대화한 적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이 직원은, 종종 명화와 같이 밥을 먹기도 했어서 낯설지 않은 영업팀 허은지 매니저다. 은지 매니저는 영업지원 역할을 한다고 했다.


B2B 국내 영업팀은 부장급 팀장까지 총 네 명이다. 그 위에 영업본부 본부장이 있는 구조다.


영업팀장님은 조금 늦게 뒤따라 들어왔다.


“아, 미지 씨 오랜만이네. 여기 분위기 어때?”


“네, 안녕하세요. 여기...”


새로 온 팀장님 쪽을 가리키자, 영업팀장님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새로 오신 팀장님? 반가워요. 설태훈입니다”


“네, 팀장님. 안녕하세요. 최우현입니다”


“다들 인사했지? 이쪽이 김민석, 오승우 매니저”


다들 일어나 새로 온 팀장님과 악수를 하고, 눈인사를 나눴다.


“본부장님은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뵙기로 했어요. 그때 인사하시죠”


그리고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영업팀이 돌아왔어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체로 조용했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전화벨 소리, 낮은 톤의 목소리와 친절한 말투로 문의에 응대하는 은지 매니저 목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내 자리에서 보이는 휴게실 쪽 블라인드로 스며든 빛이 맑은, 그런 날 오전 시간. 익숙한 공간인데도, 첫날의 공기는 마치 낯선 이의 숨결 같았다.


실무로의

초대


“미지 씨, 뭐 좋아해? 뭐 가리고 그런 거 없지?”


점심시간. 영업팀장님은 회사 건물을 나서며 나를 한 번 돌아보며 물었다.


“네, 저는 다 잘 먹어요”


“마케팅팀 환영식 겸 점심 회식을 한대요”


은지 매니저가 특유의 차분한 말투로 소곤소곤 내게 귀띔하듯 말했다. 회사 건물에서 길 하나 건너면 있는 초밥집으로 향했다.


나는 은지 매니저와 함께 무리 제일 뒤에서 걸었고, 팀장님은 앞에서 영업분들과 함께 걸었다. 주로 팀장님과 영업팀 분들 사이에서는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는 이야기, 회사 점심시간에 주로 어디에서 식사를 하는지 같은 사소한 대화만이 가볍게 오갔다.


“어, 다들 어서 와”


“안녕하십니까”


조금 더 절제되고 무거워진 목소리로 ‘-까’를 붙여, 머리를 더 숙여 인사하는 영업팀 사람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다다미 좌식 테이블 저 안쪽에 한 중년 남성이 앉아 있었다.


“어서 와요. 우리 그때 봤죠?”


본부장님은 자신 앞쪽 자리를 가리키며 팀장님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 그때 면접 자리에서”


팀장님은 영업 본부장님 앞에 앉았다. 나는 팀장님 왼쪽에 앉았다.


영업 본부장님은 상무 직급의 임원이다. 그는 회사 설립 이후 2년 차 정도부터 영업을 맡아온 초기 멤버라고 들었다. 본부장님은 팔짱을 낀 채로 앉아 연신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이 가느다랗고 턱이 뾰족해 다소 날카롭다는 느낌이 조금 들었다.


“팀장님 원래 그, 외국계 회사에서 일했다고 했나?”


“네, 스위스 IT회사는 전전 회사였고요, 직전에는 헬스케어 플랫폼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인재네. 그런데 왜 우리 회사 왔대?”


말하고는 큰소리로 웃는 본부장님과, 따라서 웃는 영업팀 사람들.


'뭐 저런 말을...'


팀장님 표정을 살폈다. 팀장님도 같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 훌륭한 회사에 제가 어렵게 들어왔네요. 사람 살리는 제품을 언제 팔아보나 싶어서, 기사를 볼수록 애착이 생기더라고요"


"허허..., 그나저나 메뉴가 뭐가 있나?"


당황스러운 본부장님의 농담을 어색함 없이 잘 넘긴 팀장님이었다. 본부장님은 헛기침에 가까운 웃음을 남기고는, 본인이 어색했는지 얼른 메뉴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매주 반복되는 회의가 있나요?"


식사를 하다가 팀장님이 영업 팀장님께 물었다.


"회의요? 주간회의가 있고 또,..."


영업 팀장님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말했다.


"우선 영업팀은 매일 아침에 업무보고를 하고요, 월요일마다 영업본부 회의가 있고,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팀장들까지 모여서 하는 전사 리더회의가 있고요"


본부장님이 끼어들어 말했다.


"오후에 월요일마다 하는 본부회의에도 와야 돼. 일정 알려 드려"


"네, 일정에 초대해 드릴게요"


오승우 매니저가 받아서 답했다.


'시작이구나'


마지막, 계란초밥을 집어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그때, 팀장님과 나는 자연스럽게 실무로 들어가고 있었다.


모두

기회의 과정


영업본부 회의에서 돌아오면서, 팀장님이 잠시 이야기를 더 하자고 했다. 탕비실에 먼저 들르는 팀장님. 티백을 우려 차를 한 잔 만들더니, 내게도 종이컵과 차를 건넸다.


“하루에 커피는 두 잔까지가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오후에는 차가 좋더라고요”


“아, 그래서 애프터눈-티인가 봐요”


왠지 팀장님이 편안해져서일까. 조금 경직됐던 언어가 약간 이완되고 있었다.


“조금 전 회의는 어땠어요?”


팀장님 물음에, ‘음…’ 되짚으며 말했다.


“주로 영업 실적이나 고객사 위주로 이야기하던데요?”


“맞아요. 기회랑, 그걸 얻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예요”


팀장님은 허공에 네모를 그리고, 마치 줄을 긋듯 손짓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영업분들이 엑셀을 띄워놓고 보고하던 게 고객사와 매출 리스트였어요. 이미 확정된 기회도 있고, 될 것으로 예상되거나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기회들도 있고요”


‘팀장님은 벌써 다 파악을 한 건가?’


내 표정을 읽은 듯, 팀장님은 친절하게 덧붙여 말했다.


“사업에 따라 방식이 조금 다를 수 있어도, 어느 마케팅이든 ‘기회를 얻는다는 목표’는 같아서 그래요"


곧 참여할 전시회에 마케팅팀에서 지원을 하라는, 영업 본부장님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러면 전시회도 기회를 얻는 장소인 거네요?”


“네, 맞아요. 전시회도 그렇고, 인터넷에서 우리 회사를 발견한 고객이 클릭해서 홈페이지에 들어오는 것도 잠재적 기회예요. 또 뭐가 있을까요?”


“음,... 아! 회사에 전화가 와요. 그걸 은지 매니저가 상담을 하고, 영업사원이 찾아간다든지...”


“맞아요. 인바운드라고, 회사로 전화가 오는 그 과정, 즉 고객이 어딘가에서 회사를 발견하고, 문의를 하는 것도 기회예요"


퀴즈에 '정답!' 외치듯 말하고 나서, 팀장님의 수긍에 엔도르핀이 살짝 도는 것 같았다.


"우리 같은 사업은 ‘관계 영업’이라고, 관계사나 지인들이 추천해서 구매하는 경우도 많을 거예요. 그런 네트워크 영업도 모두 기회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지나다가 간판이 예뻐 들렀던 문구숍, 호객에 들어가 봤던 새로 생긴 식당, 커피 박람회에 갔다가 핸드드립백 커피 향이 너무 좋아 인터넷에서 검색해 주문해 봤던 경험… 모두 사장님들이 매출이 일어날 기회를 위해 한 노력들이었구나'


"매니저님, 내일까지 어디에서 우리 영업의 기회가 오는지 목록 다섯 개만 추려 보겠어요? 드라이브 문서에 리스트를 간단하게 적어서, 저랑 같이 살펴봐요"


"네, 알겠습니다"


첫 미션. 두근두근 떨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팀장님"


"네"


"저희 팀이, 앞으로 어떻게 시작하는 거예요? 회사에 없던 팀이라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건지, 그 시작은 뭔지 궁금해요"


팀장님은 '음...'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곧 답했다.


“일단 나무를 좀 살펴봐야죠.”


“나무요?”


“네, 이 회사의 마케팅 나무가 시들어 죽어가는 나무인지, 좀 어설퍼도 잘 자라고 있는 나무인지부터 파악해야겠어요. 가지가 어지럽게 엉켜 있다면 좀 쳐내야 할 거고, 도저히 못 살리겠으면 뽑고 다시 심어야죠.”


알쏭달쏭한 팀장님의 말에 반응한 내 표정이 웃겼는지, 웃음을 터뜨리는 팀장님.


“미안해요, 이상한 비유를 해서. 조만간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그나저나 매니저님, 운영팀에 있었다고 했죠?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네, 팀장님. 물론이죠”


“우선,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좀 알려주세요”


팀장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약 50여 분 동안, 나와 팀장님의 업무상 첫 대화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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