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마케팅 나무 ep.6
“축하해. 축하할 일 맞지, 근데?”
지난 인사 발령으로 정식으로 마케팅 팀원이 되고 나서, 명화는 기념으로 밥을 먹자고 했다. 나는 설렘 반, 걱정 반의 속내를 그대로 전했다.
"고마워. 근데 잘할 수 있을까?"
“팀장님이 너 고민 많을 거라고 하던데, 진짜였구나?”
"맞아... 사실 마케팅에 대해 좀 찾아봤거든. 그런데 무슨 일을 왜 하는지 명확히 설명된 건 못 찾겠더라"
명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나도 처음에 인사팀에서 일하게 됐을 때, 찾아보니까 이런저런 개념들이 어찌나 많은지,..."
명화는 이곳이 첫 회사이다. 취업 박람회를 통해 경영관리 부문에 채용돼 인사팀에서 일을 시작했다.
"... 그런데 정작 들어오고 보니까 내가 미리 찾아보고 걱정할 필요가 없었더라.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까 익숙해지고 그랬던 것 같아. 너무 미리 걱정하지 마 미지야"
'속 편한 소리 하네' 싶으면서도, 명화의 말은 썩 위로가 됐다.
“그나저나 뭐 먹을래?”
건물에서 운영하는 구내식당도 있었지만, 이런 날은 ‘외식’을 해야 한다며 명화가 밖으로 이끌었다.
아침엔 제법 쌀쌀했지만, 점심 무렵에는 햇빛 덕에 포근했다. 우리는 기분 전환 겸, 새로 생긴 바비큐 그릴 식당에 가보기로 했다.
식당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요즘 여기 인기 많다더니, 줄 선 것 좀 봐.”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왔는데도 줄을 선 걸 보니, 다들 같은 마음으로 서둘러 나온 걸까. 식당 근처에 다다르자 바비큐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아, 고기 굽는 냄새 미쳤다. 미지야. 우리 동네에 나 어릴 때부터 있던 치킨집이 있었거든. 거기 사장님이 입구 쪽에, 밖에서 보이게 갓 튀긴 치킨을 쌓아뒀었어. 그 집이 장사가 잘 되니까, 옆 동네 치킨집도 그렇게 하더라고. 이후에는 따라 하는 가게가 점점 늘더라니까?”
“나도 그런 가게 본 것 같아. 그렇게 치킨을 쌓아두는 걸 처음 시도한 가게일까?”
“그건 모르지. 아무튼 그 동네에서는 그 집이 처음이었어. 시각적으로 끌리니까 사람들이 더 많이 찾게 됐고. 근데 더 대박인 거 뭔지 알아?”
“뭔데?”
“환풍구를 문 바깥으로 낸 거야. 지나가다가 치킨 냄새가 심하게 나서 참기 힘들더라고. 사장님 센스가 진짜 뛰어나다고 생각했었어.”
명화가 신나게 말한 동네 치킨집 이야기를 듣다가, 언젠가 언니가 해준 일화가 떠올랐다.
언니는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는데, 산책시킬 때 강아지가 유독 어떤 애견용품 가게 앞만 지나면 정신 못 차리고 그쪽으로 줄을 세게 당기더란다. 어쩔 수 없이 이끌려 가 보면, 매대에 강아지 장난감이나 간식을 할인해서 파는데, 그걸 결국 사게 된다고.
“그 가게, 알고 보니까 강아지가 반응하도록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일부러 냄새를 풍기며 유인한다니까?”
언니 말에 ‘설마’ 하고 웃었지만, 명화의 치킨집 이야기에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가게의 밝고 활기찬 분위기에, 냄새에, ‘탄/단/지 세트 9900원’ 포스터에 멈춰 잠시 망설이다가, 줄을 섰다.
"들어오세요"
줄은 금방 줄었다. 직원이 열어준 문 안으로 들어가서, 알려준 대로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했다.
이 식당은 주문을 마치고, 각 해당하는 음식 코너를 돌면서 주문서를 보여주면, 해당하는 음식을 조리사가 직접 담아주는 구조였다. 주문할 때에는 고기 종류, 굽기, 소스를 취향껏 선택할 수 있었고, 기본 제공되는 밥이나 면, 샐러드 이외에 수프, 볶음밥, 샐러드 토핑 등을 고를 수 있었다.
'사람들 줄이 길었는데, 금세 줄어든 이유가 있었구나'
“와, 여기 좀 신기하다. 취향대로 고를 수 있네”
우리는 각자 원하는 메뉴를 골라 담고 자리로 갔다. 선택을 다 하고 보니, 1만 5천 원을 훌쩍 넘겼다. 9900원은 기본 구성만 선택했을 때 가능한 가격이었다.
방금 조리된 수비드 목살 바비큐에 버섯 감자 샐러드, 계란과 날치알이 들어간 볶음밥은 맛있었다. 우리는 5천 원 더 낸 것을 불평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도앱 리뷰 이벤트로 무료 탄산음료도 준다고 하니, 오늘 이 가게를 택하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주의 시작이자, 현재의 마무리인 첫날 첫 끼니로 더할 나위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이, 일주일은 너무도 빨리 지났다.
"이미지 마케팅 매니저님, 자리 이쪽입니다"
명화의 사뭇 진지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하는 안내에 나도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했다.
명화는 입퇴사자들의 절차를 챙기면서, 새로 온 직원이 업무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맡고 있다.
나는 신규 입사자는 아니지만, 자리는 명화가 미리 준비해 줬다. 안내받은 곳으로 가보니 책상 파티션 위에 내 이름이 있었다.
마케팅팀 | 영업본부
매니저 이 미 지
인사 발령 공지 메일보다도 더, 실감이 났다.
"명함은 곧 나올 거야"
명화는 자리를 안내해 주고도 옆에 조금 더 있어 주었다.
"그런데, 팀장님 오늘부터 출근 아니야?"
한쪽 책상을 가리키며, 명화에게 물었다. 그 책상은 노트북, 모니터, 다이어리, 볼펜, 메모지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명패도 있었다.
'팀장님 이름이 최우현이구나'
자리는 비어있었다.
"아직 9시도 안 됐거든"
명화가 어깨를 쿡 찌르며 말했다.
"입사하신 분들 첫날은 9시 30분까지 출근이야"
인사팀 직원의 안내가 필요하니 입사 첫날은 출근 시간을 30분 늦춰 오도록 한다고.
"근데 여긴 왜 이렇게 조용해?"
"오늘 월요일이잖아. 영업팀은 오전 회의 갔을걸?"
그리고 팀장님을 파티션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본 내 자리 오른쪽 옆에, 빈자리가 하나 더 있었다.
"정혜은 매니저?"
"응, 이번에 육아휴직 복귀하면서 마케팅팀으로 오게 됐대. 원래 영업팀 영업지원 역할이었는데, 홍보자료를 만들거나 전시회 지원 같은 걸 했었나 봐"
'아,...'
"혜은님은 다음 주부터 출근이야"
이렇게 마케팅팀은 새로 온 팀장과 회사에서 오래 일한 경력 사원 하나, 그리고 모든 것에 미숙한 나까지, 총 셋으로 출발하게 됐다.
'이렇게, 셋이란 말이지'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켰다. 원래 내가 쓰던 거여서 새로 설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메신저에 바뀐 조직명은 아직 어색했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우선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홈페이지는 내가 이 회사에 오기 전에 업체를 고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4년여 전에 만들어진 홈페이지는 왠지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이다.
'홈페이지도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나?'
운영기획팀에서는 간혹 홈페이지에 뉴스나 공지글을 작성하곤 했다. 어쩌다가 접속이 안 되거나, 내용 중 수정해야 하는 것이 있으면 업체에 연락을 해서 해결해야 하는데, 관리업체 담당자는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아 골치였다.
포털 검색창에 우리 회사 이름을 검색해 봤다. 제일 상단에 검색된, 회사 이름 아래 설명이 좀 부자연스러웠다.
'About Us · 산업용 안전 모니터링 드론 로봇 솔루션 개발 기술특허 다수 보유 ; Greetings · 대표이사 인사말· 2014년 창업이래 인류의 안전과 행복이라는 기조 아래 전 임직원이 일심단결하여...'
'비문이 많고, 뭔가 어색해'
스크롤을 내리며 탐색한 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누가 등을 톡톡 두드렸다.
"미지 매니저님"
돌아보니, 명화였다. 그리고, 그 옆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새로 오신 마케팅 팀장님이세요"
"안녕하세요!"
일어서서 인사했다.
그는 어두운 그레이 색상 재킷에 와인색 머플러를 하고 있었고, 앞이마가 살짝 보이게 머리를 고정했다.
"최우현입니다. 반가워요"
웃으며 손을 내민 팀장님. 악수를 하면서 그의 눈을 보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빛이었다.
내가 멋대로 상상한 날카로운, 냉철한, 또는 생각을 살피는 듯한 그런 눈빛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