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마케팅 나무 ep.8
여보세요.
응, 엄마 나야.
엄마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건 겨우 이틀 전인데, 이상하게도 참 오랜만처럼 느껴졌다.
우리 딸. 퇴근했니?
월요일과 화요일, 고작 이틀이었지만 내게는 길고 빽빽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팀에 가고, 팀장님을 만나고, 조직장과 면담하고 회의를 치르다 보니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 시간의 밀도가, 잠시 엄마를 의식에서 멀어지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너 새로운 팀에 간다며. 사람들은 좀 어때?
팀장은 괜찮은 사람 같다고 엄마를 안심시키듯 말했다.그를 만난 지 이틀째지만, 아직 그 어떤 어려움의 신호를 발견하지 못하기도 했다.
다행이네. 곁에 좋은 사람 오는 것도 큰 복이야.
엄마와는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통화를 한다. 엄마 목소리를 듣고, 안부를 묻고, 뻔한 근황을 이야기해도 힘든 건 되도록 말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라면 엄마 집에 한 달에 한두 번은 갔겠지만, 최근에는 잘 들르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가 부족할 때 오히려 쉼터를 찾지 않고, 마치 땅굴 같은 내 방 안에 움츠리게 되는 건 왜일까?
그런데 그날, 회의실 사건이 있었다. 퇴근하는데 문득 엄마가 보고 싶었다. 멀지 않으니 곧장 향하면 되는데, 몸은 자연스럽게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냥 퇴근길 전철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데, 신기하게도 엄마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딸, 별일 없지?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삼킨 눈물이 목소리에 묻어 있어서였을까, 엄마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왜? 무슨 일 있어?
그래도, 그간의 일들을 다 꺼내놓지는 못했다.
나 팀장한테도 미움받고, 팀에서도 왕따 당하는 것 같아. 이런 속마음과는 다르게,
괜찮아. 별일 없어.
라고만 말했다. 그런데 엄마는 늘 하는, 위로의 레퍼토리를 꺼냈다.
얘, 너 기억나니? 너 아기 때, 너희 할아버지가 집에 가신다고 일어나셨는데, 할아버지,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세요 하더니 그 쪼그만 손으로 할아버지 옷자락을 잡았잖아. 할아버지가 그때, 미지 얘가 아주 똑 부러지고 귀엽다고 얼마나 흐뭇해하셨는지 몰라.
엄마 또 그 얘기네? 기억 안 나지, 엄마. 아주 어릴 때라며.
항상 그 이야기를 할 때면, 엄마의 목소리는 조금더 흥이 오른다. 내게는 기억도 없는, 어릴 적 나의 모습.
참 단순했겠다, 어릴 때의 나는.
엄마의 그 시절 이야기는, 신기하게도 지금의 나에게 위로가 된다. 복잡한 생각도 없고, 정 많고, 네 살 터울 언니에게 좋은 걸 빼앗겨도 놀자며 졸졸 따라다녔다던 그 시절의 나라면, 지금의 나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기운 내. 착한 우리 딸은, 분명 잘 이겨낼 거야. 엄마가, 대신 말해주셨다.
엄마는 혜화동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한다. 회사원이던 엄마는 내가 중학생일 때 회사를 그만두고, 이후 보험 설계사로 일했다. 그 일도 엄마는, 엄마답게 했다.
그렇게 해서는 얼마 못 번다며 그 일을 권한 동료 언니가 핀잔을 주기도 할 만큼, 엄마는 고객들에게 최소한으로 꼭 필요한 만큼만 권유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런 엄마를 믿고 오래도록 연락하며 일을 맡긴 고객들이 지금도 언니 동생 하며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고.
처음 엄마가 식당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언니와 나는 '그 힘든걸 왜 굳이 하려고 하냐'며 한 목소리로 말렸었다.
왜, 엄마도 밥집 사장 좀 해보자.
엄마는 밥집 사장이 꿈이었다고 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사뭇 진지했다. 언니는, 결국 우리가 주말마다 쉬지도 못하고 고생할 거라며 걱정했다. 그런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가끔 엄마가 SOS를 보내면, 주문을 받거나 자리를 치우는 일쯤 도우러 간 게 전부였다.
엄마는 순두부찌개를 대표 메뉴로 정하고, 이름을 ‘열매식당’이라고 지었다. 나와 언니 어릴 때 태명이, 엄마가 우리를 가졌을 때 그렇게 먹고 싶었던 '자두', '포도'였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처음에는 촌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나도 언니도 그 이름을 좋아한다.
엄마는 '신주임님'이라고 부르는, 엄마보다 두 살 많은 아주머니 한 분을 소개받아 함께 가게를 시작했다. 신주임님은 음식점에 오랜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성실하게 엄마와 함께 가게를 지킨다. 지금은 평일 점심과 저녁시간에 일을 돕는 아주머니 한 분과,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까지 일하는 아르바이트 청년 한 명이 열매식당의 가족이다.
가게 여는 시간은 손님이랑 한 약속이야.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손님이 없어도, 화요일부터 일요일 점심장사 까지는 칼같이 문을 연다.
엄마가 식당을 차린건 코로나가 막 잦아들던 시기였다. 그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폐업한 가게를 인수해서, 주방은 고칠 것만 고쳐 그대로 쓰고, 홀과 외관만 리모델링을 하여 지금의 식당을 만들었다.
코로나의 흔적은, 식당 테이블 위에 아직 세게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아크릴 가림막 지지대뿐만이 아니었다. 코로나가 끝났어도 경기 회복은 더뎠다. 계속 오른 물가는 상인들에겐 덧댄 고통이라고 했다. 원자재가격이 오르니 음식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고, 사람들의 외식을 줄이니 시장이 침체되니 그렇다고.
그래도 ‘열매식당'은 착한 가게로 인근에 입소문이 나 꾸준히 찾는 손님들이 있었다. 멀리서 보다는, 가까운 동네 사람들이 자주 들르는 식당. 열매식당은 그런 가게다.
마케터 최우현 블로그 | #36-2023
3주간의 휴가는 이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기후를 가진 호주 여행은 낯선 환경과 스케일감 넘치는 자연 속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시원한 1리터 맥주와 두툼한 대구살 피시 앤 칩스는 잊을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또 생각나네요)
이직 이틀 만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피로감이 남아 있지만, 다행히 정신 바짝 차려서 회사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회사에서의 첫 출근은 여전히 낯설게 느껴집니다. 직장인의 스트레스 중 새로운 조직 적응 스트레스가 크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경험이 쌓여도, 이 경험은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직 전 마지막 면접에서 사장님께서는 돈을 아낄 생각 없으니 적극적인 마케팅을 기획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절반만 참고할 계획입니다. 마케팅 담당자로서, '효율'과 '비용 절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마케팅 KPI가 회사의 이익 극대화이니, 그게 매출이든 마케팅 효율화를 통한 비용 다이어트든, 다각도로 고민해 볼 작정입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는 더더욱 '매출 건전성'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배운 대로, 하던 대로, 우선 전체를 훑으려 합니다. 사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속속들이 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마케팅 전략을 새로 짜고, 그 실행을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마케팅 경험이 없는 직원과 영업지원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이 우선 팀에서 함께하게 됐습니다. 그들은 저보다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저는 마케팅 분야에 대해 조금 더 아니까 서로 보완하며 좋은 팀워크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첫 번째로 만난 팀원은 마케팅을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는 조용하지만 위트 있는 말투를 가진 사람이었고, 적당히 다니려고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회사와 마케팅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발전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마케팅에 대해 묻길래 나무를 빗대어 이야기했습니다.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제가 더 나은 비유를 찾거나 충분히 설명할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웠습니다. (사실 저는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합니다.)
기대됩니다. 팀이 함께 쓸,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