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지난주에 와이프와 둘이 양양 카라반에 가서 짐정리를 하였다. 4년 동안 카라반에 쌓아둔 짐들이 엄청난데, 실제로는 한두 번도 안 쓴 물건들이 많았다. 100리터 종량제 봉투를 두 개 정도 비워낸 것 같다. 카라반이 처음 샀을 때처럼 깔끔해졌다. 침실부터 화장실까지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렇게 카라반 중고 장터에 올려놓을 준비를 모두 끝냈다.
큰 아이가 중3이 되면서부터 캠핑 빈도가 확 줄었다. 기본 적으로 시험이 일 년에 4번이니, 4달 정도는 움직일 수 없었고, 학원 보강도 자주 있으니 주말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래도 카라반은 계속 유지하고 싶었는데, 지난달에 카라반을 끌어 줄 견인차가 퍼져 버렸다. 고치기에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 폐차를 하게 되었다. 카라반이 꼼짝없이 정박형이 돼버린 것이다. 보일러나 전기 설비라도 하나 고장 난 다면, 업체로 수리를 가야 하는데, 이동할 수가 없으니 곤란할 것 같았다. 결국 와이프와 고심 끝에 판매를 결정했다.
우리가 카라반을 구매하였던 2020년은 카라반 품귀 현상이 극심했다. 코로나 때문에 유럽의 카라반 제조 공장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고, 국내에서는 반대로 코로나 때문에 카라반 여행이 각광받고 있었다. 공급은 줄고 수요는 많았으니 당연히 매물은 적고 가격은 치솟았다. 이제 카라반을 팔아보려고 시세를 알아보니 지금은 반대 세상이었다. 한때 높았던 캠핑 열기가 식은 이유도 있었고, 그동안 참아왔던 해외여행을 많이들 나가서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구매했던 가격에 비해서는 많은 감가를 감수하고 판매를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감가가 얼마가 되었건, 우리의 카라반 구매는 후회하지 않는다. 처음에 카라반을 샀을 때 꿈 꾸웠던 전국 일주 캠핑의 꿈은 이루지 못하였고, 설악산 산자락에서 움직이지 않는 정박형 카라반이 되어버렸지만, 지난 50번의 캠핑은 모두가 너무 좋은 추억이었다. 4년 전에는 서울 토박이인 우리 가족이 강원도에 양양이라는 도시를 알게 되고 이렇게 애정을 가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려 다들 집콕으로 답답해하던 그 시절에, 카라반 덕분에 우리는 그나마 사람 없는 캠핑장에서 잊어버린 자유와 여유를 잠시나마 되찾을 수 있었다. 부부간에 힘든 일이 있을 때, 모닥불 앞에 앉아 막걸리 한잔씩 나누며 풀었던 적이 있다. 아이들과 갈등이 있었을 때도, 양양 시장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 먹으며 풀었다. 서울에서 양양 사이를 오가는 시간 동안은 지루하기도 했지만, 내가 졸까 봐 옆에서 계속 이야기를 거는 와이프 덕분에 서로 간의 근황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한 것 같다. 처음에는 긴 장거리 이동이 지루하여 꼭 영상을 봐야 했던 아이들도, 요즘에는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부르며, 여유 있게 다녀서 참 좋다.
그뿐인가, 산도 많이 다녔고, 계곡이랑 바다도 많이 다녔다. 처음엔 개구리만 봐도 도망치던 녀석들이 이제는 서로 잡겠다고 난리다. 계곡에서도 거침없이 수영을 하고,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는 아이들 모습은 4년 전에 새침하고 소극적이던 것과는 상당히 달라졌다. 작년에는 서울 인교에 있는 워터파크에 데려간 적이 있는데, 물이 너무 더럽고 사람이 많아서 놀기가 싫다고들 했으니, 나름 청정 지역에서 잘 키운 것 같다. 둘 다 집콕 스타일이라 주말에 바깥에 데리고 나가기가 너무도 어려운데, 그래도 캠핑에 가면 한 번씩은 근처 산에서 트래킹을 했다. 처음에 주전골에 갔을 때 입구에 있는 성국사까지 1km 남짓한 거리를 못 걸어서 두 시간 만에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지난달에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는, 아이들이 먼저 다녀온다고 뛰어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와이프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카라반 여행을 시작한 이후 우리 가족은 모두가 성장했다. 50번의 여행 덕분에 아이들이 사춘기 없이 잘 넘긴 것 같고, 형제가 아직도 서로를 챙기며 잘 지내는 것 같다. 5년 전에 큰 수술을 받으며 번아웃을 경험했던 와이프도 카라반 캠핑을 통해서 하나씩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었다. 내가 가족을 대하는 자세도 많이 바뀌었다. 캠핑만 가면 버럭거리던 아빠의 모습을 내려놓았고, 나도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해주려 노력했다. 양양은 우리 가족에서 소중한 아지트이자 안칙처였다. 주중에 일이나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주말에는 풀어낼 수 있는 곳.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제는 그 아지트를 못 간다고 생각하니 몹시도 서운하다. 큰 아들은 몇 년만 더 유지를 하다가, 자기가 20살이 되면 물려달라고 하는데, 조금 더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