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오줌을 참은 채로 갇히다
“맨날 똥 싸고 몇 시간을 가만히 있는 거야. 아니 그게 엄청 찝찝했을 텐데 울지도 않고 가만히 있어. 어떻게 된 게 애가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아. 정말 가마안히 있어 글쎄. 배가 고프든, 잠이 오든 그냥 가만히 있는 거야 정말. 맹한 얼굴을 해선 말이야. 진짜 말라붙은 똥을 몇 번이나 닦았는지 몰라. 티를 안 내니까 자꾸 확인해줘야 하는 거야. 그러다 깜빡하면 어디서 고소한 똥 냄새가 나더라니까. 하여튼 고생했지. 그래도 아픈데 없이 똥도 잘 싸고 밥도 잘 먹으니까 다행이지…… 그 어린애가 지 딴엔 서툰 엄말 도와주겠다고 그러는 건지…… 그래도 동훈아, 짜증 날 땐 짜증도 내고, 화날 땐 화도 내고 살아야 해. 아무렇지 않은 척 참으면 그건 엄마라도 모르는 거야. 아픈 건 자랑하고 다녀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알아주고 이렇게 안아주지.”
자 반대로. 무릎을 베고 있는 내 어깨를 그녀가 톡톡 건드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귀이개로 나의 귀를 간지럽히고, 나는 가만히 누워 정겨운 체취를 맡는다. 문득 소리는 점점 옅어지더니 아득히 멀어진다. 어느새 나는 물속에 잠겨있다. 그녀는 물 밖에서 나를 바라본다. 그녀의 얼굴은 물결을 따라 일렁인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어떤 얼굴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나는 입을 열어보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아버지는 주말마다 나를 근처 대형마트에 데려갔다. 아버지는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지만, 나를 넓은 집에 홀로 두고 떠난 이후로는 완전히 목소리가 잃어버렸다. 말을 할 줄 모른다기보단 말을 해선 안 되는 사람처럼 그는 입을 여는 걸 두려워하는 얼굴이었다. 마트를 데려갈 때도 아무런 말 없이 집에 들어와선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나가자는 말 한마디도 겨우 내뱉었다. 처음 이사와 나를 집에 두고 사라져 버린 그 주 주말, 그는 돌연 나타나 그리 행동했다. 툭 던지는 말투와 달리 왼손은 자동차 키를 절그럭절그럭 만지작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섬뜩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는 짧은 한마디를 내뱉고는 얼른 현관문을 나가버렸다.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외투를 챙겨 서둘러 나가자, 무심한 얼굴을 한 쥐색 승용차가 덜덜거리며 나를 조급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조수석에 타자마자 아버지는 말없이 출발했다. 그가 어디서 머무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텅 빈 집에 홀로 머물게 된 건 어린 나이의 아들이었으나, 어딘가로 돌아가지 못한 채, 어딘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건 분명 그였다. 꼴이 꼭 그랬다. 나는 묵묵히 벌을 받는 죄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식빵, 스파게티 면과 소스, 쌀과 김치, 목살 한 근, 라면과 1.2L 콜라를 샀다. 아버지는 운전석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지갑을 꺼내 조수석에 있는 내게 5만 원을 건넸고, 그 후 짧은 침묵이 그만 가보라는 의미라는 걸 뒤늦게 나는 깨달았다. 두 손에 용돈과 흰 비닐봉지를 쥔 채로 아버지의 승용차 뒤꽁무니가 잽싸게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는 장면을 가만히 지켜봤다.
집에 돌아와선 곧장 면을 삶았다. 그의 조급함이 유전된 것인지, 외투를 그대로 입은 채 냄비 앞에서 물 끓는 것을 기다렸다. 물이 끓자 면을 넣고, 또 가만히 냄비를 바라봤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면을 건져 올려 토마토소스와 함께 프라이팬에 올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토마토 스파게티를 그릇에 담으니 얼추 모양이 그럴싸하게 나왔다.
설익은 면을 꾸역꾸역 씹어 넘기며 콜라를 마셨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면을 씹고 있었고, 콜라를 마시고 면을 넘기며 숨을 내쉬었다.
사람도 TV도 없는 집에서 나는 적막 속에 갇혀있었다. 면을 오물거리며 무엇을 바라봐야 할지 몰라 괜히 텅 빈 거실을 두리번거렸다. 콜라의 탄산이 터지는 소리와 해가 기우는 창밖에서 무명의 아이들이 지르는 외침,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소음들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그날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보일러를 켜야 한다는 걸 몰랐기에 그날도 이불을 잔뜩 끌어안은 채 잠을 잤다.
다음날 일어나자 기름을 두르지 않았던 프라이팬은 거무죽죽하게 소스가 굳은 채로 식은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져 있었다.
한 달은 서툴게 파스타, 고기, 라면 등 손쉬운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면을 끓이는 물에 소금을 넣지 않았고, 라면 물을 맞추지 못했다. 쉽게 고기를 구울 때는 파절임을 만들어 봤지만, 식초를 넣지 않은 파절임은 고춧가루와만 뒤섞여 코끝이 찡하고 텁텁했다. 마음이 밋밋하고 코가 시큰해도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그에겐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말을 걸어봤자 대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나는 카트를 밀며 수시로 적어놓은 식료품들을 얼른 넣었고, 차에서 내리기 전 그는 내게 5만 원을 건넸다. 우린 아무 말하지 않았다. 수개월이 지나고 칼질과 면 삶는 일이 익숙해져 얼추 그럴싸한 맛이 나올 때 즈음,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스파라거스와 마늘, 토마토를 함께 구워 스테이크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사골국물에 삼겹살과 배추김치를 말아 넣어 김치찜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새로운 요리들이었지만 얼추 맛이 나왔다. 레시피는 대부분 인터넷에 있었다. 방에서 레시피를 외우고, 얼른 주방으로 가서 요리한다. 헷갈리면 다시 방에 들어가 레시피를 확인한다. 컴퓨터를 켜놓고 요리를 하는 것은 나름 재밌는 취미가 되었다.
“그냥 적어서 보면서 하면 안 돼?” 제이는 펄펄 끓는 냄비를 두고 날쌔게 뛰어다니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래야 잠이 잘 와.”
“쌩 쇼를 한다.” 제이는 한심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지금도 약속이 없으면 저녁엔 음악을 틀어놓은 채 요리를 만든다. 다만 이제는 익힌 요리가 많아 뛰어다니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아버지 역시 매주 찾아오진 않는다. 저녁을 해결하고, 곧바로 설거지를 한다.
제이가 만나러 나가지 않는 날은 일찍 잠자리에 든다. 불을 끄고 이불을 덮으면 서늘했던 이불이 조금씩 따뜻해진다. 노곤한 몸을 따뜻한 온기가 감쌀 때 누군가 어깨를 톡톡 건드린다.
동훈아. 동훈아.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