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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Aug 16. 2024

오~~ 풍문으로 들었소

괴물은 누구일까 _22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역시 너를 들여다본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중에서





공인중개사라는 직업이 아직 전문직의 풍모를 갖추지 못했던 시절, 동네에는 '복덕방'이라는 매우 친근한 이름의 가게가 골목마다 한두 개쯤 자리했었죠. 부동산 중개를 전문적으로 하기보다는 앎음앎음으로 매수자와 매도자를 연결해 주는 느슨한  입소문 시스템이었죠. 당근마켓도, '다방'이나 '직방', '부동산 114'도 아직 없던 시절, 동네사람들은 이런 구수한 이름의 '복덕방'을 통해 집을 구하고, 방을 내놓고, 새로운 임차인을 구했죠. 주로 동네 터줏대감 노릇을 하시던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이 소일거리로 하던 일이었기에 일이 없을 때는 '복덕방'에서 장기나 바둑을 두기 위해 자주 모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곳을 통해 자질구레한 동네 사람들의 입소문과 풍문이 모이고, 전파되기도 했습니다. '미용실'이 '미스코리아' 배출의 산실이었다면, '복덕방'은 '바이럴 마케팅'의 요지였던 거죠.



오랫동안 저의 면담 요청을 거부하다 겨우 만날 수 있었던 우리 조직의 감사과장은 첫 면담에서 어떤 경위로 지난 2023년 상반기 P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게 됐냐는 저의 물음에 마치 동네 복덕방 할아버지처럼 이렇게 말하더군요. 

"풍문을 듣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믿기지가 않아서 재차 물었죠.

"아니 감사를, 풍문 즉 누군가 전해준 말을 듣고 하셨다고요?"


어떤 조직이든 감사권은 이해 당사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가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라 엄밀하게 사용되고, 주의 깊게 행사되어야 하며, 따라서 감사를 할만한 타당한 사유와 근거가 분명해야 발동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함부로 칼을 휘둘러 망나니 춤을 춘다면 엄청난 피해가 생길 테니까요. 그런데, 그런 감사를 그저 '풍문'을 듣고 시작했다는 감사과장의 어이없는 대답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렇게 누군가 전해준 지극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풍문'으로 시작된 감사로 인해 P는 지난 상반기 인사시즌에 부당한 전보조치를 당할 위기를 겪었던 겁니다. 


'풍문'(風聞)이란 게 '바람결에 떠도는 소문'이란 뜻이고, 소문(所聞)이란 그 내용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세상에서 얘기되는 이야기를 말하지 않던가요. 거의 같은 의미이지만, 거짓이라는 쪽에 무게를 둔 표현으로 뜬소문루머유언비어이라는 말도 있고요. 한 직원에게 인사상 엄청난 불이익을 줄 수도 있는 감사를 누군가가 전해준, 헛소문일 수도 있는 '풍문'을 듣고 시작했다는 감사과장의 말에 듣고 저는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죠. 


제가 그렇게 시작된 감사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지 않냐고 묻자 감사과장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풍문'을 듣고 시작했지만 '풍문'만 가지고 감사를 하진 않았다."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더군요. 또 그럼 그 주관적인 '풍문'은 누가 전해줬냐? 감사과장과 같은 동향 출신인, 해당과에서 P에게 상반기에 간식 문제로 갑질 괴롭힘을 일삼던 그 '루카스 나인 라떼 계장'이  '풍문' 전달자 아니겠냐고 따져 물었더니, 어이없게도 감사과장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실실 웃으며 전달자는 알려줄 수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더군요. 



저는 참담했습니다. 한 조직의 감사권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이렇게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자세로 면담에 응하는 것도 이해불가였죠. 그리고 바로 탄로 날 거짓말로 당혹스러운 순간을 모면하려는 저열한 태도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럼 '풍문'으로 시작한 감사를 왜 공교롭게도 간식 갑질 가해자들만 대상으로 탐문을 하고, 당사자인 P나 상황을 제일 잘 알던 P의 직속계장, 해당과 부서장, P와 친해 P를 둘러싼 사무실 환경을 잘 알던 직원은 쏙 빼고 편향적으로 실시했냐고 물었죠. 제 물음에 처음에는 또 거짓말로 다른 사람도 다 했다고 둘러대더니, 제가 이미 사전조사를 다 했고, 반박 자료를 내밀고, 당사자와 그럼 전화 통화를 해보자고 제안했더니 꼬리를 슬그머니 내리며,

"왜, 내가 다른  직원들까지 조사를 하고 면담을 해야 하냐?" 말도 안 되는 반박을 하더군요.

당사자 소명기회도 없었고, 오직 갑질 괴롭힘 가해자들이 전한 P에게 불리한 진술만을 듣고 감사를 진행했으니 편향적이고 부당한 감사 아니냐? 그런 졸속 감사를 한 뒤 편향적인 '감찰 보고서'를 작성해 인사과에 전보심사위에 회부하도록 했으니 이건 당연히 권한남용이다라고 따지지,

"맘대로 해라, 소송을 하던지, 마음대로 하라"며 실실 웃어가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더군요.




이게 우리 조직 감사 책임자의 수준이었습니다. 누군가 전한 지극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풍문'을 듣고 감사를 시작하고, 당시 갑질 괴롭힘 가해자들만 골라 핀셋으로 면담을 한 결과를 가지고 '감찰 보고서'를 작성한 게 객관적이고 공정한 감사인가요? 그 가해자들은 당시에는 P가 보낸, 지나친 간식비교나 간식 타령을 삼가 달라는 메일에 감정이 상해 P에게 불리한 진술만 하지 않았겠어요? 그리고 자신들이 간식 관련 갑질을 해서 P가 불편하다고 말하진 못할 테니, P가 '업무를 기피한다'는 황당한 프레임을 뒤집어 씌운 것이지요. 자신들은 꼬박꼬박 참석하는 회식조차 참석하지 못할 정도를 업무 과부하 상태였던 P에게 말입니다.



그리고 설사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같은 조직에 근무하는 직원이 이 일로 심한 배신감과 환멸에, 정신적 충격에 1년이 넘어가도록 정상적인 생활을 못할 정도로 심리적 타격을 입었다고 말하는 가족 앞에서 어떻게 감사과장은 비웃음과 냉소를 대놓고 보여줄 수 있을까요? 우리 조직의 감사부서 최종 책임자가 그 정도 수준 밖에 안 된다는 것을 보면서 저는 심한 자괴감이 들더군요.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도 인간의 마음도 없는 정말 괴물 같은 존재로 느껴지더군요. 그분도 누군가의 부모이고,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자식일 텐데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저렇게까지 바닥으로  내려가야 하는지 의문이었습니다. 



감사과장은 결국 저의 추궁에 아무것도 해명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반박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했죠. 그저 모르쇠와 '아니다'로 부인하거나 부정하기 바빴고, 자세한 내용은 말해줄 수 없다는 앵무새 같은 대답만 기계적으로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감사과장과의 면담을 통해 알아낸 것은 있었죠. 역시 상반기 감사는 '누군가' 전한 부정확한  '풍문'으로 시작된 편파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하반기 감사 역시 상황과 맥락은 모두 무시한 짜 맞추기식 '답정너' 감사였다는 사실말입니다. 그리고 감사과장이  그 '풍문'의 전달자를 밝히지 못함은 자신과 그 전달자가 이번 '감사'를 함께 기획한 공모자임을 자백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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