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파놉티콘'(panopticon) 이라는 독특한 원형 감옥을 고안했죠. 모두를 의미하는 Pan과 보다를 의미하는 opticon을 합성한 이 개념은 결국 모두를 본다는 뜻입니다. 파놉티콘이라는 이중 원형 감옥은 가운데에 죄수를 감시하는 높은 원형 탑이 있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죄수들을 가두는 감방이 있는 원형 감옥입니다. 중앙 원형 감시탑의 감시자는 모든 죄수들을 볼 수 있고, 죄수들은 그 감시자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감시받는 죄수들은 중앙 원형 감시탑에 있는 감시자가 어디에 있는지, 어느 방향에 있는지를 알 수 없는 구조입니다. 죄수들은 따라서 보이지 않은 감시자의 시선으로부터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불안감과 긴장감 속에서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되는 거죠.
감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벤담이 제안한 파놉티콘의 감시 구조는 이후 공공기관이나 일반 회사에도 많이 도입되었죠. 원래는 감옥과 병영처럼 수직적 질서가 중요한 공간에서 주로 사용하던 통제 메커니즘이었는데 요즘은 파노티콘이 사회전반으로 확산되어 감시와 통제를 내면화하게 되죠. 공무원 조직에서도 가끔 관리자의 책상은 모든 직원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고, 일반 직원의 자리는 그분들의 자리를 볼 수 없는 구조를 띠는 이유도 바로 이런 감시의 효율성 때문이 아닐까요? 우린 국과장님이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때가 가장 불안하잖아요..
우리 조직의 중앙 부서에서도 고위 간부들은 아무나 쉽게 올라갈 수 없는 꼭대기 층에 근무하시죠. 그래서 속칭 '4층 간부님'이라고 말합니다. 중앙 부처에 근무하면 이분들과 이분들을 대리하는 분들의 보이지 않은 시선을 느낍니다. 직원들끼리도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듯한 알듯 모를듯한 야릇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죠. 그래서 중앙 직원들은 더더욱 대체로 속마음을 서로에게 드러내지 않고, 위장된 웃음을 띠며, 감정의 동요나 과장 없이 서로를 마치 연극 무대 위의 연기자들처럼 대합니다. 감시사회에서 권력이 만든 감시의 시선이 시민들을 서로서로 감시하며 권력에 순종하도록 만드는 원리와 유사하죠.
디지털 사회로 접어들면서 이제 파놉티콘보다 바놉티콘(banopticon)이라는 개념이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추방하다'라는 의미의 Ban과 opticon을 결합시킨 이 개념은감시와 규율의 체계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구조를 말하죠. 파놉티콘이 보이지 않은 권력과 감시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불안에 기반한 체제라면 바놉티콘은 그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대상을 아예 시스템에서 배제하는 구조입니다. 자신들이 이질적인 존재라고 즉, '타자'로 규정한 대상을 명부에서 '삭제'하고 '추방'한다는 점에서 바놉티콘의 사회는 파놉티콘의 사회보다 더 무자비하고 비정한 감시와 처벌의 사회인 거죠.
중앙 감사과가 구태의연한 간식 문화에 문제를 제기한 P를, P를 괴롭히며 고질적인 간식 갑질을 자행하던 일부 직원들이 전한 '풍문'으로 은밀하게 감찰을 벌여 '업무 기피자'라는 낙인을 찍어 중앙에서 '추방'했던 것은 바로 이 추방의 옵티콘, 바놉티콘이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중앙 감사과는 자신들이 당연시해 왔던, 그리고 계속 유지해야 했던 그구태의연한 '간식문화'에 비판적인 P를 체제 비판적인, 혹은 체제에 부적합한 사람 혹은 자신들의 시스템에는 달갑지 않은 인물로 확인하여 배제했던 것이니까요. 중앙 감사과는 P가 일으킨 작은 균열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판단하여 바놉티콘이라는 추방과 처벌의 기제를 작동시킨 것은 아닐까요?
파놉티콘과 바놉티콘의 기제를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감시자로서 우리 조직의 감사과는 '풍문'과 '위원회 메신저', '자유 게시판' 등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직원들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상반기 감사 때는 사내 자유게시판의 게시글과 댓글을 뒤적여 갑질 피해자를 색출할 구실을 찾으려 했고, 하반기 감사 때는 사무보조원과 P가 나눈 사적 대화를 자의적으로 취사 선택해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으로 각색했던 것은 아닐까요?
규율과 추방이라는 무기로 우리 중앙 감사과가 P에게 작동시킨 파놉티콘과 바놉티콘의 기제는 결국 중앙에서 근무하고 있는 감시 대상들에게 이 체제에 저항하는 순간 당신들은 언제든 이 메커니즘의 잠재적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 결과 대다수의 직원들은 감사과의 부당한 조치와 무리한 감사에 대해 침묵과 방관, 외면과 회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요? 파놉티콘의 사회에서 바놉티콘의 사회로 전환된 우리 조직에서는 이제 '추방'당할 것인가 아니면 '도피'할 것인가의 선택 밖에 남지 않ㅇ은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