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변에 들키면 안 된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딸 아빠 로또돼삐따. 3등이다. 3등.”
순간 머릿속에서 끝없는 숫자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고생 끝인가! 이윽고 아빠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근데 당첨금이 120만 원이다. 120만 원.”
끝없이 이어지던 숫자의 행렬은 1,200,000. 단 7자리에서 끝났지만 신기했다. 로또라니!
아빠는 이 금액을 ‘반띵’해준다고 했다. 단숨에 60만 원이 생긴 셈이다. 한 달 50만 원으로 근근이 버티던 대학생 문연이에게 60만 원어치의 꽁돈은 혼란스러웠다. 뭘 해야 이 귀한 돈을 알차게 쓸 수 있을까?
며칠 전 비용을 검색했다가 기겁하고 검색창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요가-필라테스 학원이 떠올랐다. 그래 돈은 이럴 때 쓰는 거다! 아빠에게 용돈을 받은 날, 바로 집 근처에 있던 요가 학원으로 향했다. 엄마는 늘 말했다. 사람이 통장에 돈이 있어야 든든하다고. 그게 무슨 뜻인지 완벽하게 실감이 갔다. 마음이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관아로 출두하는 암행어사의 걸음으로 학원 문을 박차고 들어가 당당하게 6개월치 수강료를 일시불로 결제했다.
나의 요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빠의 로또 당첨으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잠시 교환학생을 떠나고, 킥복싱에 꽂힐 때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요가의 품으로 돌아왔다. 요가는 여러모로 나의 많은 면모를 바꾸어주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놀라우리만치 뻣뻣한 몸의 소유자였다. 학창 시절에는 체력 검사 시간을 치과 가는 것만큼 두려워했는데 내 놀라운 유연성을 학교 친구들에게 여실히 드러내야 했기 때문이다.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허리를 앞으로 숙이며 손끝을 발가락 쪽으로 밀어 유연성을 측정하는 ‘앉아 윗몸 앞으로 숙이기’ 차례만 오면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다. 아무리 숙여도 손끝이 정강이 이상을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을 유연하게 해 준다는 식초도 먹어보고 벼락치기로 스트레칭도 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요가라니. 이름만 들어도 온몸이 비비 꼬이는 그 운동을 하게 될 줄이야. 일시불로 지불했던 그때의 당당함으로 첫 수업에 입성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다들 관절 인형처럼 선생님의 인헤일 엑스헤일 (들숨 날숨) 구령에 맞춰 몸을 이리 저리로 움직였지만 나는 앞쪽 벽 전체에 걸린 커다란 거울 속에 앉아있는 자신과 아이 컨택을 하며 민망하게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땀이 흐르니까 살이 빠진다는 환상에도 빠지게 되고, 한가한 4학년이었기 때문에 달리 할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잠이 잘 왔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가서 씻고 침대에 누우면 어느새 아침이 되어 있었다. 오랜 불면증에 시달리던 나로서는 수면 효과만으로도 요가를 이어나가기 충분했다.
주 5일을 학원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니 몸도 달라졌다. 방학 때 울릉도에 갔더니 좀처럼 내 칭찬에 박했던 엄마도 “몸이 왜 이래 탄탄해졌노?” 하면서 놀라워했다. 엄마가 같이 산에 가자고 하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학을 떼거나 컨디션이 좋아 따라나섰다가도 산 중턱 정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길었는데 이번에는 가파른 곳도 성큼성큼 올라가며 달라진 체력을 뽐냈다.
요가 역시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나로 하여금 새로운 배움을 안겨주었다. 이 3가지 요소만 명심한다면 어떤 아사나(요가 동작)를 할 때도 쉽게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믿음이다. 그 첫 번째 요소는 호흡이다.
이사를 갈 때마다 요가원을 옮겼기 때문에 만난 요가 선생님만 해도 열 손가락이 부족하지만 이분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호흡이다. 인헤일과 엑스헤일. 처음에는 숨 쉬는 게 무에 그리 중요한가 싶었지만, 강도 높은 운동을 할수록 스스로 호흡을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숨을 참게 된다. 숨을 참으면 운동 효과도 떨어질뿐더러 동작을 한 후 가쁜 숨을 몰아쉬게 되므로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진다.
요가 호흡법에는 크게 우짜이 호흡법과 까발라바띠 호흡법이 있는데 아사나(요가 동작)를 할 때는 주로 우짜이 호흡법으로 숨을 쉰다. 폐에 공기를 채우는 느낌으로 갈비뼈를 넓히며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멈췄다가 온몸에 있는 숨을 쥐어짜듯 빼내는 것처럼 다시 코로 내뱉는다. 이 호흡법만 잘 익혀도 숨에 깃든 에너지가 내 몸 곳곳을 탐색하며 힘을 불어넣고 균형을 맞춰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두 번째 요소는 코어. 말 그대로 중심부다. 요가는 균형을 잡아야 하는 동작이 많다. 균형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힘을 너무 많이 주어서도 안되고 덜 주어서도 안되고 이상한 곳에 주어서도 안된다. 아이언맨의 에너지가 그의 가슴 한가운데 있는 아크 원자로에서 나오듯 우리의 에너지도 우리 몸의 중심, 코어에서 발현된다.
T자 자세라 불리는 비라바드라아사나 3를 살펴보자. 곧게 선 자세에서 두 발을 붙이고 양손을 하늘 위로 올려 총을 쏘듯 깍지를 잡는다. 이후 상체를 앞으로 서서히 숙이면서 한쪽 발은 뒤로 천천히 들어 올린다. 그럼 몸이 T자 모양을 이룬다. 이때 몸의 중심을 잘 잡고 호흡을 고르게 하지 않으면 허벅지의 근육이 엄청나지 않은 이상 균형이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허벅지 근육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코어에 힘을 딱! 주면 흔들릴지언정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때 또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세 번째 요소인 시선이다. 호흡을 일정하게 하고, 코어에 힘을 주어도 시선이 이리저리 분산되면 몸도 그 시선에 따라 흔들리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한 곳에 시선을 멈추고 은은하게 째려보면 몸도 고정된다.
요가의 이 3가지 요소는 비단 아사나를 할 때만 해당되는 진리가 아니다. 아사나를 할 때 쉽게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이 3가지 요소를 계속 의식하며 체득하고 나니 내 몸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일하다가도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을 때, 커다란 벽이 내 앞을 턱 하니 가로막고 있는 듯할 때, 심장이 빠르게 뛰고 조바심이 날 때, 몸이 나쁜 기운으로 가득 차 축 처질 때, 누군가와 비교하는 마음이 들고 작아지는 기분이 들 때면 즉시 정자세로 앉거나 설 수 있는 곳을 찾는다. 회사 화장실일 때도 있고, 비상계단일 때도 있고, 우리 집 침대 위일 때도 있고, 지하철 안일 때도 있다. 눈을 감고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복부에 힘을 가득 준다. 호흡과 코어에 모든 신경을 쏟아부으면 어지럽고 시끄러웠던 세상이 잠잠해진다. 오로지 내 몸의 에너지에 집중하게 된다. 약 10분의 명상 뒤 눈을 뜨면 조명이 두어 개 더 켜진 것처럼 세상이 밝아져 있다. 자리로 돌아가 시선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집중해야 할 것, 그것에만 시선을 둔다.
오늘 아침에도 요가를 했다.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호흡을 하고 코어에 힘을 주고 시선을 고정했다. 땀이 매트 위에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우짜이 호흡을 내뱉을 때마다 파도 소리를 닮은 숨소리가 들린다.
60분간의 수련을 마치고 매트 위에 누워 사바아사나(송장 자세)로 휴식을 취한다. 깜깜해진 수련실, 더 이상 땀이 떨어지는 소리도, 거친 숨소리도, 선생님의 구령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본래의 호흡을 되찾으며 몸에 남아 있던 나쁜 기운을 몰아 내쉰다. 수련이 잘 된 날에는 사바아사나를 할 때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치 유체이탈을 한 듯 육체가 0g이 된 느낌. 오로지 영혼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몸에 어떤 느낌도 없다. 내가 어떤 표정으로 누워 있는지도 모를 만큼, 심장이 있다는 사실도 잊게 될 만큼 하늘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든다.
이때는 정말이지 어떤 생각도 들지 않는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 속 쓰린 실수, 월세 날, 전세 대출 따위의 수련 전까지 마음을 어지럽히던 어떤 고민도 말 그대로 ‘따위’에 불과하게 된다. 도마 위에 올라간 싱싱한 횟감을 마주하듯 매트 위에 올려진 생생한 내 육체와 영혼을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인 셈이다.
평소 생각이 너무 많아서 밤에 잠조차 제대로 못 이룰 정도라면, 하지만 헬스는 지루하고 수영은 귀찮고 킥복싱은 무섭다면 요가를 강력 추천한다. 이 유체이탈의 즐거움은 나 혼자 누리기에는 너무나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