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몫에서 나의 몫으로
어릴 적 내 손톱을 깎는 일은 늘 아빠 몫이었다. 아빠는 때가 왔다 싶으면 새하얀 티슈를 바닥에 깔고 아빠 손의 반만 한 내 손을 도토리묵 잡듯 살포시 감쌌다. 이내 손끝을 잡고 또깍또깍 소리를 내며 조심스레 손톱을 깎아주었다. 이때 발동하는 것이 아빠의 결벽증. 그것은 쓸모없이 자란 불투명한 손톱은 단 1mm도 남겨두지 않겠단 일념으로 시퍼렇게 빛나는 손톱깎이를 내 손톱 끝까지 들이댔다. 그럼 나는 손톱깎이만큼 시퍼렇게 질려 혹시라도 살이 깎여나갈까 금속 공예하듯 초집중해 내 손톱을 깎고 있는 아빠를 노심초사하며 바라보아야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애) 죽겠다 죽겠어’ 하며 내 마음의 소리를 대신 뱉어주었지만, 아빠는 ‘이래야 깨끗하지’ 하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숨도 제대로 뱉지 못했던 시간이 지나면 살이 닿는 손톱 위는 싸그리 벌목 당한 숲처럼 매끈했다. 그렇게 작업을 끝낸 아빠는 말끔해진 내 두 손을 포개고 그 위에 당신의 손까지 포개어 슥삭슥삭 비비는 것으로 의식을 끝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아빠가 내 손톱을 깎아준 건 10년쯤 될까. 그 두 배에 가까운 시간 동안은 늘 내 손으로 손톱을 깎곤 했는데 아직도 매일 적절한 때를 까먹는다. 주먹을 꽉 쥘 때 많이 자라난 손톱이 기분 나쁘게 손바닥을 짓눌러야만 펜을 잡았는데 어딘가 불편함을 느껴야만 ‘아 손톱 깎을 때 됐다.’ 싶다. 아빠가 못된 습관을 들인 탓이다. 다 아빠 때문이야!
재밌게도 시간이 흘러 역할이 바뀌었다. 아빠가 다친 후 오른손이 불편해져 이젠 내가 아빠 손톱을 깎아준다. 부산에 살 땐 꼬박꼬박 깎아주었는데 서울로 올라오면서는 한 달에 한 번 깎아주기도 어렵게 되어 그게 유달리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오랜만에 아빠를 만나러 갔을 때 아빠 손톱이 깎기 좋게 자라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다. 그동안 불편했을 아빠는 신경도 안 쓰고 철없이. 우리는 만날 때마다 손을 꼭 붙잡고 있는데 그때 아빠의 긴 손톱이 눈에 들어오면 “아빠 손톱 깎아야겠다!” 하고 벌떡 일어난다. 어릴 적 아빠가 그랬듯 나 역시 티슈를 한 장을 뽑아 책상 위에 슥 깔아두며 우리의 의식을 시작한다. 아빠 손은 여전히 내 손보다 커 나는 한 손으로 아빠의 손을 받치고 남은 한 손으로 손톱깎이를 움직인다.
처음엔 아빠 손에 생채기라도 낼까 무서워서 나로선 적당히 짧게 깎았는데 아빠 입장에선 그게 영 시원치가 않았나 보다. “좀 더 깎아도 된다 아빠 안아프다” 해서 내가 “아빠 내가 무섭다”하고 우는 소리를 냈다. 역할은 바뀌었는데 대사는 그대로다. 결국 조각가처럼 얇게 얇게 몇 겹의 손톱을 더 깎아낸 뒤에야 아빠가 만족할만한 길이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일도 6-7년 해보니 손에 익어 이젠 대범하게 깎을 줄 알게 되었다.
돌아보니 아빠가 내 손톱을 깎아주기 시작한 시간과 내가 아빠의 손톱을 깎아주기 시작한 시간이 어느덧 비슷해졌다. 보통 자식은 부모에게 받은 만큼의 사랑을 갚지 못해 부모가 떠난 뒤 그렇게 후회를 한다고들 한다. 아빠에게 받은 무한의 사랑을 모두 갚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참 감사하게도 내게는 아주 나중에 조금 덜 후회할 만큼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작 손톱 깎아주는 걸로 아빠의 사랑을 다 갚으려면 수백 번의 환생을 거쳐야 할테다. 우리의 운명이 허락해준다면 나는 그렇게라도 갚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