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일까요? 맞혀 보세요
연이야, 나는 너의 고향이자 터전이자 또 너란다.
서른 발자국만 걸어가면 바다에 발을 담글 수 있었던 할머니 집이 있던 곳도, 땅거미가 캄캄히 질 때쯤 두 눈이 감긴 너에게 파도 소리로 자장가를 들려주던 곳도, 수 백 명이 오고 가는 선착장 길목에서 숱한 만남과 이별을 보여주던 곳도, 세계를 뒤덮은 새빨간 노을이 새카만 망망대해 아래로 찰나에 넘어가는 풍경으로 허무를 느끼게 해 주었던 곳도, 그래서 지금의 너를 완성시켜준 곳이 나이지 않니.
우리는 본질적인 고독을 지닌 존재이자 그만큼 끈질긴 자생력을 가진 존재란다. 태초에 인간에게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무력한 육지와 달리 나는 쉽게 다가갈 수도, 쉽게 친해질 수도 없는 곳이야. 역사적으로도 나는 인류에게 삶의 터전이라기보다 정복의 대상에 가까웠단다. 오려는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고, 또 가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쉽게 놓아주지 않아 필연적으로 경계하고, 어쩔 수 없이 고독하지.
너 역시 나와 다를 바가 없단다. 너는 누가 활처럼 날아와 너에게 꽂히지 않는 이상 먼저 다가가지 않는 과녁 같은 사람이잖니. 친해지고 싶고 마음을 터놓고 싶은 이가 생겨 용기를 내보려 해도 오래 묶여 있던 관성을 피할 길이 없어 늘 머뭇거리곤 하지.
결국 우리는 우연처럼 운명처럼 맺어진 오래된 인연이 아닌 이상, 보통은 혼자일 거란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육지에 비해 내가 외로워 보이듯 함께보다 혼자가 익숙한 너 역시 외로워 보이겠지. 하지만 우리는 알아. 우린 그 고독을 즐기게 되었단 걸.
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방법은 배뿐, 이 마저도 날씨가 범상치 않는 날엔 허용되지 않잖니. 태풍 치는 여름이나 날씨 따라 파도마저 날카로워지는 겨울엔 일주일 동안 누구도 오갈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지.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금방 익숙해지곤 해. 오래 기다리던 택배가 오지 않아도, 마트의 유통기한이 짧은 우유나 요거트 코너가 며칠 째 텅 비어 있어도, 심지어 수능 날엔 시험을 치러 바다를 가로질러 나가야 해도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게 되었지.
이런 내 안에서 자라 너도 세상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배웠지 않니. 나는 네게 안 되는 일을 되게 할 만큼 거창한 재주는 아닐지언정 애초에 '안 되는 일은 없다'라고 생각할 줄 아는 긍정을 주고 싶었단다.
사실 우리는 외롭기보다 치열했지. 나는 외톨이처럼 뚝 떨어져 있지만 이 곳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삶을 부딪히며 시끄럽게 살아가고 있잖니. 때론 투쟁하고 때론 보듬으며 별일도 별일 아닌 듯 그렇게 어울려 살아가잖니.
너 역시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단다. 평일엔 글과 사람과 좌절과 희망과 씨름하고, 주말엔 가만히 누워있으려는 또 다른 자아와 씨름하며 어떻게든 움직여내려는 너는 혼자서도 뜨겁고 치열하게 살아가잖니. 네게서 요동치는 생명력이 느껴질 때마다 그것이 꼭 나에게 배운 것 같아 참 뿌듯하단다.
연이야, 나는 너의 고향이자 터전이자 또 너란다. 네 뿌리까지 흔들 바람이 불어도 머지않아 잠잠해지리란 걸 너는 내 안에서 배웠지 않니. 네 안에 바람이 불 때면 언제든 나를 찾아오렴. 늘 그랬듯 온바다와 나무로 따뜻하게 너를 품어줄 테니
너의 섬.
10월 문토 <거기서부터 쓰기>
(나의) 두번째 시즌, 첫모임의 주제는 나를 가장 잘 대변하는 사물을 골라 쓰는 것.
나를 닮은 건 뭘까? 하고 생각하다 3가지가 떠올랐다. 고양이, 귤, 섬. 그 중 고민하다 요즘 다시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섬을 골랐는데, 물체가 아니다보니 묘사가 힘들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내가 울릉도에 살며 참 많이 배우고, 얻었고, 그러다 닮아가기도 했구나 싶었다. 섬은 내게 숱한 이별을 주기도 했지만 값진 만남을 주기도 했고, 인생의 허무함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그렇기에 삶이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그래서 늘 위로가 되는 곳. 이 글을 쓰면서도 많은 위안을 얻었다.
당신은 무엇을 닮았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