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신과 함께 살고 있다. 문상신은 내 하나뿐인 남동생이다.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신이는 자신의 맥주를 만들어 펍을 차리겠다는 야망을 품고 우리 집으로 상경했다. 나는 신이가 오면 문밖에서 들리는 부스럭 소리에도 가슴을 졸이지 않아도 되고, 밥도 해주고, 국도 해주고, 청소와 빨래도 해줄 것이라는 환상에 부풀어 기꺼이 복층 오피스텔의 위층을 내주었다.
예상대로 신이는 일에 찌든 나 대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출근하면서 화장실 세면대 위에 아무렇게나 흩뿌려놓은 렌즈 통을 깨끗이 닦아 책상 위에 말려둔 것을 보고 나는 감동했다.
"어우 신아 이렇게까지 청소를 했어?"
"그 뭐시라고."
신이는 새침데기 중에 새침데기다. (정확히는 츤데레라는 표현이 맞겠으나 일본어에서 나온 단어라 우리말로 순화했다.) 나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는 척하면서도 내가 이사를 하면 엄마한테 '그 집에 방범창은 제대로 달맀다나?'하고 묻고, 신이가 멀리 여행 갔을 때 걱정되니까 도착하면 전화하라는 말엔 대꾸도 없다가 카톡으로 여행 가서 찍은 사진만 10장씩 보내준다.
한 번은 회사에 있는데 파스타가 너무 먹고 싶었다. 신이는 조리학과를 나왔고, 같이 20여 년을 살아서인지 하는 요리마다 내 입맛에 척척 맞았다. 카톡을 날렸다.
"신아 누나 저녁에 파스타 먹고 싶다."
"어쩔?"
그래 지도 아르바이트하느라 피곤할 텐데 하고 포기했는데 웬걸.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 파스타를 해주려고 면을 삶아두었다. 국밥 한 그릇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들어간 지라 위에 파스타를 넣을 공간은 없었지만, 사랑의 힘은 강했다. 신이가 프라이팬 한가득 해준 파스타를 다 해치웠다.
매일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작정하고 논다. 그날은 서로 같이 놀자고 약속을 하고 어떤 술을 마실까 고민한다. 자주 이야기를 하지 않는 대신,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4시간은 기본이 된다. 꼬꼬마 때 추억부터 앞으로 먹고살 방법까지 다양한 카테고리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한 번은 어릴 적 누가 엄마 속을 더 썩였나 라는 주제로 2시간 동안 서로의 허물을 떠올리고 비난하다가 결판이 나지 않자 엄마한테 전화해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했다. 결과는 신이의 체면을 위해 비밀로 하도록 하겠다. 풉.
이렇게 사이좋은 우리의 동거 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 문제의 시발점은 역시나(?) 음식물 쓰레기였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가 집에 있는 꼬락서니를 보는 건 죽어도 싫어하면서 그걸 버리러 가는 건 더 싫어한다. 신이가 일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며 들어왔고 이때다 싶어 심부름을 시켰다.
"신아 음쓰 좀 버리고 온나."
지금 생각해보면 사이코패스 초기 증상임이 틀림없다. 나도 일하고 집에 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하는 주제에 종일 기름 뒤집어쓰고 일하고 온 동생에게 음쓰나 버리고 오라니.
하지만 신이는 착하게도 “조금만 누워있다가.”하고 대답했다. 그 조금만은 10분이 되고, 20분이 되었다. 30분이 지날 무렵 나는 다시 알람을 울렸다.
"신아 음쓰."
"아 쫌만 누워있을게."
초록색이었던 알람은 열이 받아 노란색으로 변했다. "아까도 조금만이라고 했다이가. 그냥 빨리 버리고 와서 누워라." 텍스트로 적고 보니 상당히 싸가지 없는 말투지만 나름 화를 눌러가며 상냥하게 말했다. 하지만 가만히 누워서 음쓰나 버리고 오라고 말하는 누나의 말을 듣는 동생의 기분은 그다지 상냥하지 않았으리라. "아 그럼 누나가 버리고 온나."
삐뽀삐뽀. "아까 니가 버리고 온다 그랬잖아. 약속 지켜라." 아까보다 조금 근엄한 목소리로 제법 누나다운 포스를 풍기며 말했다. 그때 신이가 벌떡 일어나서 음식물 쓰레기가 있는 현관 쪽으로 걸어가더니 그 옆에 있는 애꿎은 페트병을 집어 던졌다.
삐-------. 인내심에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공격적으로 물건을 던지는 행위는 내가 끔찍하게 혐오하는 것이었다. 즉 뭔가를 던진다는 것은 내게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 하는데 니."
"아 버리러 갈게. 뭐."
"왜 던지는데."
"던지는 거 아니고 그냥 버린 거다."
"던졌잖아."
"아 왜 시비 거는데."
"시비는 니가 먼저 걸었다이가."
"아 시X."
죽음의 티키타카 같은 말싸움 끝에 욕이 나왔다. 먼저 욕하는 사람은 지는 거다. 문상신은 졌다. 나는 전혀 유쾌하지 않은 승리감을 얻었고, 그대로 자기 방으로 올라가 짐을 싸는 문상신의 분주한 소리를 들으며 코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어디에다가 욕질인데?"
"아 됐다. 내 나간다."
"나가라. 가는 길에 음쓰 버려라."
다시 생각하니 조금 추접스럽다. 그런데 더 추접스러운 건 따로 있었다.
"야 니 그거 내가 니 생일날 준 백팩 아이가?" 신이는 나가는 마당에 내가 선물해준 (사실은 유일한) 백팩에 짐을 챙겼다. 분노한 내 레이더망에 그 백팩이 들어왔고 아주 치사하고 더럽고 추접스럽게 그 백팩에 시비를 걸었다.
"참나 니 내랑 싸우고 나가는 마당에 그거 들고 가고 싶나?" 이번에는 조소를 섞어 말했다. 신이의 원래 눈동자 색깔은 아주 새카만 검은색인데 그때만큼은 불타는 빨간색으로 변한 듯했다. 분노에 활활 타버린 신이는 아무 말 없이 백팩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그대로 집을 나갔다. 되먹지 못한 동생의 욕질에 화가 난 나는 신이가 어딜 갔는지 신경도 안 쓰고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잤다.
다음 날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무언가 들은 모양이었다.
"신이는 잘 있나?"
"잘 있겠지 뭐"
퉁명스러운 대답에 엄마는 "와? 싸웠나?" 하고 바로 반응했다. 나는 어릴 때와 똑같이 내 잘못은 쏙 빼놓고 신이가 내게 욕을 한 사실에 포커스를 맞추어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쳤다. 엄마의 목소리가 금세 가라앉았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떳떳했(다고 생각했)으므로 개의치 않았다. 지가 가봤자 어딜 가겠나 싶어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루가 더 지났다. 신이한테서는 여전히 연락이 없었고, 다시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신이 고시텔 구한단다."
"지가 무슨 돈이 있어서."
"지랑 같이 일하는 선배한테 빌린단다."
"고시텔 가서 개고생해보라 해라. 거기는 지옥이다."
인턴 시절, 1평 남짓한 고시텔에서 6개월을 근근이 살아본 경험이 스쳐 지나갔다. 젊어서 그런 고생 한 번 해보는 것쯤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신이가 그 좁고 캄캄한 데 들어가서 살 걸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빨리 신이한테서 사과 문자가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 배은망덕한 새ㄲ...아니 베이비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하루가 또 지났다. 이쯤 되니 어디서 뭘 해 먹고 사는지 궁금해졌다. 엄마는 신이한테서 아직 연락이 안 왔냐며, 안 왔으면 먼저 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옹졸하고 못난 누나였으므로 여전히 신이에게서 들은 욕설에 꽁기해져있었다. 오후가 되어 지난 시간을 복기해보니 미안한 마음도 새록새록 피어났다. 음쓰가 뭐라고. 용기 내어 카톡을 보냈다.
'저녁 먹지 말고 일찍 들어온나. 한치 삶아주께.'
4시간이 지나서야 답이 왔다.
'내 오늘 예약이 너무 많아서 늦게 드가지 싶다.'
일단 오긴 오네. 들어오면 고시텔 생활이 살아있는 지옥과 다름이 없음을 적나라하게 알려줘야겠다. 싶은 마음으로 한치 대신 혼자 먹고 있을 만두를 구웠다. 만두를 굽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하필 맥주가 다 떨어졌다. 만두에는 맥주인데. 급한 마음에 후다닥 편의점으로 달려 나가려는데 신이가 들어왔다. 한 손에 쥔 비닐봉지에 수입 맥주 5캔이 들어있었다.
"오 왔어엉~?"
맥주를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언제 싸웠냐는 듯이 웃으며 신이를 반겼다. 신이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3일 전 나간 그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만두와 맥주를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앉았다. 맥주를 따라주자마자 신이가 먼저 말했다.
"누나 미안해."
미안도 아니고 미안해라니. 진심이 그득 묻어나는 사과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 욕한 건 심했제?"
웃으며 말했다.
"아 진짜 미안하다. 아무리 그래도 욕하면 안 되는데."
"누나도 미안하다. 니 피곤한 거 알면서 음쓰 그 뭐시라고 자꾸 버리라고 시키고."
이렇게 우리의 10년 만의 싸움, 만두 전쟁은 막을 내렸다. 신이는 집 나간 그 3일 사이, 편하게 몸 뉠 곳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왔다. 집을 나간 내내 찜질방에서 잠을 잤고, 고시텔을 얻으려고 알아봤는데 말도 안 되는 좁은 평수와 비싼 가격에 기함을 토했다는 것이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고시텔 이야기를 들려주며 누나와 집의 존재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상기(세뇌) 시켰다.
이 일이 있은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제2차 만두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상황이면 각자 알아서 처리했고, 부탁해야 할 때면 예쁘게 부탁했다. 짜증 낼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조금 더 조심했다. 한 달에 한 번은 약속을 잡고 4시간이 넘게 웃고 떠들고 마시면서 그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눈다.
돌아보니 집밖에서는 싫은 사람에게도 상황에 따라 생글생글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대하면서, 집에서는 가깝고 편한 사이라는 이유로 내 기분대로 말하고 행동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내게 소중한 사람이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조심하고 신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지 않을 때 그 관계에 생기고 마는 상처가 오롯이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을 만두 전쟁을 통해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