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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이 Dec 17. 2021

2021년 셀프 피드백

그리고 5년간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배운 것들

서른과 5년 차. 인생에서 꽤 중요한듯한 시기가 한 번에 관통했다. 사실 서른보다 이 회사에서 일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는 게 놀랍다.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갈 일인가. 인턴 기간까지 합치면 6년.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야 한다. 진짜 10대 같았으면 초딩의 굴레에서 벗어나 드디어 교복을 입어본다며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최대한 초딩답게 방만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굴레 속에 머물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사랑하는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이런 대사가 있다.


균형이 깨져야 더 큰 균형을 잡을 수 있지.

중요한 한 해였던 만큼 나와 일과 관계 속에서 큰 균형이 깨졌다. 되돌아보자니 벌써 콧잔등이 시큰거린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매주 써둔 인사이트를 길잡이 삼아 마치 어제 같은 1월부터 12번의 시계태엽을 감아본다. 내친김에 지난 5년을 함께 돌아보며 2022년 일하는 마음을 다잡는다.




하나. 일하는 이유 찾기

WHY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은 한 해였다. 내가 왜 이 회사를, 이 직업을 선택했는지 여러 번 되물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선택의 기로에서 갈피를 잃을 때마다 그 물음에 답한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여전히 이때의 마음이 유효한지 질문을 던지며 중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메시지를 알리는 일이 좋아서 이 일을 선택했다. 사람들에게 우리 브랜드가 가진 본질, 그 본질이 담긴 메시지를 알리는 일에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


일을 둘러싼 큰 WHY가 명쾌해지자 업무를 대할 때도 도움이 됐다. ‘이 콘텐츠로, 이 기획으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 결과물이 쉬울지, 매력적 일지, 우리 브랜드의 것이라고 느껴질지 생각해본다.


원래 당연히 생각했어야 하는 질문이었지만 부끄럽게도 그러지 못했다. 이제라도 이 점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려고 한다. ‘너 왜 이 일을 하고 있어? 이걸로 뭘 말하고 싶어?’


*올해 쓴  WHY에 대한 글들
일하는 이유, 그리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나는 왜 브랜드 마케팅을 사랑하는가

왜가 왜 중요해? Why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





둘. 실패에 주눅 들지 않기

2021년 상반기 키워드는 ‘실패’였다. 크고 작은 실패의 연속. 자꾸만 WHY를 물었던 것도 계속된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안될까. 왜 못할까. 가 왜 일할까. 왜 만들까. 의 질문으로 이어진 셈이다. 요약하자면 슬럼프였다. 쓸모없는 사람,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다행히 2주 간의 리프레시 휴가를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도망치듯 고향으로 떠났다. 과거가 반복될까 봐 두려워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동해 바다의 거친 파도는 나를 육지로 떠밀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에 집중했다. 고향에 있을 때 엄마랑 옥상에 있는 화분들을 정리하는데 구석에 생기가 하나도 없던 식물이 있었다. 그 애를 가리키며 얘는 죽었냐고 물어봤더니 엄마는 ‘아이다. 뿌리만 있으면 된다.’라고 답했다.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나도 뿌리는 살아있는 것 같았다. 새롭게 주어진 일에 집중했다. 서서히 재미와 자신감을 되찾았다.


상반기의 실패를 돌아봤다. 배울 점이 많았다. (이때 배운 걸 로 남겨 두었다.) 그때의 나는 ‘실패’라는 프레임에 너무 갇혀서 주눅 들기만 했고 제대로 배울 용기를 내지 못했다. 실패를 실패로 남겨두지 않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그 우울한 껍데기 안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아야겠다.




셋. 팀워크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위에서 말한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었던 데는 동료들의 덕이 가장 컸다. 사람 한 명의 빈자리가 적지 않은 곳인데도 동료들은 리프레시 휴가를 가고 싶다는 내 말에 흔쾌히 아니 거의 등 떠밀듯 지지해주었다. 우리의 리프레시는 2주 원격 근무, 2주 휴가로 총 한 달이 주어지는데 2주 원격 근무 기간 중 일주일 동안은 동료들이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왜 일해? 쉬어’


‘호흡이 잘 맞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를 느낀 시간이었다. 매번 의견이 같은 것도 아니었다. 잡담을 할 때는 밑도 끝도 없는 농담을 이어가며 껄껄껄 웃기 바빴지만 회의할 때는 누구보다 냉철한 사람들이었다. 각자의 의견을 물러서지 않고 내세우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약속한 듯 합의를 본다. 각자의 생각에서 좋은 점만 골라내어 결과를 만들고 나면 탄탄한 팀워크 속에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동료들 덕분에 팀플레이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게 됐다. 혼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결과를 팀원들과 함께 만들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경험했다. 면접에 임하는 자세도 더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동료,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아주 많다.




넷. 내 한계를 인지하기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잘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의 나는 모든 걸 다 해내고 싶었다. 쉽게 말해서 다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 배우려고 했다. 코딩도 배우고 디자인도 배우고 영상도 배우고 데이터도 배우고. 그러다가 올해 특히 여러 팀들과 협업하고, 또 회사 밖에서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도 경험하면서 번뜩 떠올랐다. 내가 할 수 없는 걸 자꾸 해보려고 하니까 망하는구나.


사실 내 선에서 다 처리하려고 하는 건 일에만 적용되는 특성은 아니다. 집에서도 뭐 하나가 고장 나면 AS를 맡기거나 사람을 부르기 전에 내가 해결해보려고 하는 이상한 오기가 있다. 아주 기적 같은 경우가 아닌 이상 그럴 때도 결과는 같다. 망한다.


내가 잘할 수 없는 분야, 잘 모르는 분야인데 주변에 그걸 잘하고,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는 게 더 지혜롭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이다. 안 그래도 없는 시간, 붙잡아도 안될 것에 매달리지 말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지.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것처럼 내 한계를 인정하는 자의 모습도 아름다울 것이라 믿는다.




다섯. 끈질기게 배우기

회고를 하다 보면 반드시 2가지의 결과가 존재한다. 잘한 것과 못한 것. 여기서 ‘못한 것’을  2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잘할 수 없는 것과 조금 더 노력하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잘한 것과 노력하면 발전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계속 갈고닦아야 할 내 강점이다. 내 강점을 키우기 위해서는 끈질기게 배워야 한다.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찾아 본받고, 책이나 강연을 보며 내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캐치해서 실전에 옮겨 보고, 트렌드를 익히기 위해 끊임없이 디깅하고, 아카이빙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새롭게 배운 것은 열심히 브런치에 정리 중이다!)


하반기에 새롭게 만들어진 서포터경험팀에서 진행했던 업무는 기존에 했던 마케팅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 서비스 통합 메시지를 잡고, 가이드를 만들고, 유저들의 브랜드 사용 경험을 설계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실무 경험과 통찰이 부족한 나에게 책과 강연이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강연을 하다 보면 마케터라는 직업이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피곤하다. 그런데 내가 보고 배운 걸 실무에 적용하고 좋은 반응과 좋은 성과를 이끌어내는 경험이 쌓이면 피로보다 재미가 더 커진다. 그러니 내년에도 좋은 인풋을 열심히 열심히 충전해보자.




여섯.  몰입하기

지금보다 더 주니어일 땐 마케팅이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놀래키고 현혹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그래서 마케터는 창의성과 센스가 필요하며, 이건 길러지기보다는 타고나는 부분이 더 크다고. 그래서 말도 안 되는 크리에이티브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마케터의 자질이 부족한가 자학하기도 했다.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앞으로의 마케팅은 판매 유도가 아니라 관계 맺기가 될 것이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분명 필요하겠지만 타겟의 마음을 읽고 그들과 꾸준히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 줄 짜임새 있는 기획을 만드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은 몰입에서 나온다. 내게 주어진 일과 역할을, 우리 브랜드와 타겟의 관계를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가. 여기서 핵심은 고민이 아닌 깊이다.


집요하게 파고들고, 세밀하게 연결하고, 밀도 있게 그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몰입에는 시간과 리소스는 핑계가 될 수 없다. 집중력과 관찰력에 달린 일이다. 이 몰입은 내가 하는 일의 가치, 즉 직업의식과도 연결된다. 단순히 매출 한 건을 올리는 게 아니라 나와 내가 일하는 회사와 내 브랜드를 좋아하는 유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 이를 위해 몰입이 필요하다.





2021년의 셀프 피드백을 요약하자면 ‘워라밸이 아닌 워나밸을 지킬 것’이다.


작년에는 일과 삶의 균형 위에서 고민이 컸다면 올해는 일이  삶의 일부이며,  사실이  마음에 든다는 것을 인정했다. 일이 재미있고 일할  삶의 의미를 느끼니까.


그러나 올해는 저울 끝에 각각 일과 나다움이 있었다. 일을   행복한  나답게 일할  있기 때문이었다. 워나밸이  지켜진 것이다. 가끔은 일을 하면서 나다움을 잃어가는 듯한 위기감이  때가 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 내가 나다울  있는 적정선이 희미해지던 순간. 다행히 알맞게 주어진 휴식 시간과 좋은 동료들, 운이 따라준 여러 순간들 덕분에 잘 넘길 수 있었다.


일이 나를 나답게 하는 수단이길 바란다. 일을 하는 내가 나답기 힘든 상황 속에 머무르거나 나답지 않은 선택을 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다움이 무엇인지, 이걸 지키려면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살아아 하는지 부단히 고민해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열린 시야를 가져야겠다.


내 한계를 절실히 깨달은 한해였던 만큼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아집을 부리기도 했고, 괜히 더 큰소리치기도 했다. 후회되는 순간들을 잘 마무리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균열 속에서 더 크고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갈 기회를 꽉 잡아야지.


브런치 글을 다시 보니 작년 이맘때에  < 내리는 길을 걷는 마음으로>라는 글이 보인다.   전이라고 해도 믿을  같이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때는 어쩔 줄을 몰라 전전긍긍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는데  1년이 지난 지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그때의 나에게 답을   있는 사람이 됐다. 앞으로 1년이  지나면 오늘의 물음에 답을   있는 내가 되어 있을까 궁금하다. 내년엔 하고 싶은  몰입해서 최선을 다하고, 건강하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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