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이마와 콧잔등에 땀이 이슬처럼 맺히고, 축축한 습기에 물 만난 고기가 된 모기들이 신나게 인간들의 피를 빨아대던 어느 주말의 여름밤이었다. 에어컨도 더위와 습도를 벅차하는 계절의 꼭대기에서 풋살 실력을 늘리기에 여념이 없는 풋살팀 팀원들과 용감하게도 수풀로 둘러싸인 풋살장에서 만났다. 풋살화, 공, 무릎보호대, 물... 훈련에 필요한 짐만 단출히 챙겨 나왔는데도 이제 막 도착한 주제에 1시간은 뛴 것처럼 옷이 땀으로 물들어 있었다.
대문 안이 가장 안전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풋살장은 야시장처럼 붐볐다. 8시 이후로는 예약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용 풋살장이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잔디 구장 안에 2개의 경기장이 있고, 이 두 경기장은 선만 그어져 있을 뿐 필드 사이에 가림막이 없다. 그래서 한쪽 경기장에서 공이 굴러 나와 다른 경기장을 침범하기 일쑤다. 그러나 역과의 접근성이 좋고, 늦은 시간까지 주변의 민원 없이 공을 찰 수 있으며, 무료인 데다가 잔디의 퀄리티도 나쁘지 않아서 예약이 필요한 낮 시간은 경쟁률이 꽤나 높다. 우리는 따로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는 8시에 만났는데, 다행히 안쪽 경기장이 비어있었다. 경기장의 가장자리에 있는 벤치에 앉아 훈련을 위해 모인 팀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건 심한데?' '너무 더운데?' '벌써 힘들다' 입으로는 투덜투덜 대면서도 황금 같은 일요일 저녁 시간에 굳이 굳이 풋살을 하겠다고 모인 넷은 빠르게 풋살화를 갈아 신고, 이제는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발목과 무릎, 허리와 어깨 등 신체 곳곳에 숨어있는 관절들을 부지런히 풀었다. 대단한 훈련 계획은 없었지만 그간 받아온 훈련의 짬밥과 집단지성이 있었으므로 금세 짝을 맞추고 대열을 갖춰 패스부터 주고받기 시작했다. 해는 진작에 졌는데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한반도에서 느껴본 적 없었던 더위에 설렁설렁 움직였을 뿐인데도 숨이 턱턱 막혔다. 5분가량 공을 찼을 뿐인데 잔디에 물을 주는 스프링쿨러처럼 후두둑 후두둑 땅 아래로 땀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뱉어낸 물을 다시 채우듯 생수를 벌컥벌컥 마실지언정 '날씨가 하 수상하니 이쯤 하고 집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평소 경기에서 어려웠던 부분들, 이를테면 같은 팀원과 주고받는 리턴 패스나 1:1로 수비수를 제치는 개인기, 수비가 옆에 붙었을 때 빠르게 때리는 슈팅 같은 기술을 떠올리며 우리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훈련 방법을 창조했다. 먼저 각자의 생각을 말로 주고받으며 훈련 방식을 정리하고, 경기장 안에서 패스를 주고받거나 수비가 막아야 하거나 슈팅을 때려야 하는 위치에 훈련용 형광색 콘을 세운 후, 각자 맡은 역할이 있어야 하는 위치에 섰다. 이제 막 만들어낸 훈련 대형이었지만, 그간 비슷한 훈련들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처음에는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다들 금세 적응해서 진지한 자세로 훈련에 임했다.
훈련은 반복이다. 오직 반복만이 하나의 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몸 컨디션을 만들어준다. 패스도 해야 하고 수비도 제쳐야 하고 슈팅도 때려야 하고. 기본 훈련이 익숙해지니 새로운 옵션을 넣어 변주도 해보고. 변주가 어색한 멤버에게 차근차근 가르쳐주고. 곧잘 해내는 멤버에게 잘한다 칭찬도 해주고. 이렇게 할 일이 많으니 멈추지 않고 흐르는 땀도 뒷전이 되었다. 어느새 훈련에 몰입해서 물을 마시고 잠시 숨을 돌리는 쿨링타임의 주기도 길어졌다. 당장 내일 출근을 앞두고 있는 일요일 저녁, 천국이 따로 없을 에어컨 밑을 마다하고 굳이 지하철과 차를 타고서는 풋살장까지 나와서 얼굴이 벌게지도록 뛰고 있는 스스로가 웃기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여 샘솟는 건강한 도파민에 도취되어 갈 때쯤 우리 경기장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덩치가 꽤 크지만 얼굴에는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고등학생 무리였다. 우리는 인원이 넷 밖에 안되어서 비어있던 안쪽 경기장의 반만 쓰고 있었고, 이 고등학생들은 우리가 쓰지 않는 남은 경기장에 모여있었다. 하나의 경기장 안에서 반씩 세를 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훈련에 몰두하고 있을 즈음, 4-5명에서 시작된 이 무리들의 수가 15명을 훌쩍 넘겼다. 그리고는 우리가 훈련하고 있는 경기장을 침범하여 우리가 쓰고 있는 골대로 공을 차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를 투명인간 혹은 게임 속 NPC*처럼 대하는 모습이었다.
*NPC : Non Player Character, 게임에서 플레이를 하지 않는 캐릭터
신원을 알지 못하는 남성들과 그들의 위협적인 슈팅의 침범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순간 내가 안 보이는 건가? 하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현실적으로 해보았다. 그러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저기요 뭐 하시는 거예요?'라고 최대한 정중하지만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더 신기했던 건 이들이 어떠한 대꾸도 없이 누군가의 조종에 이끌리는 것처럼 다시 그들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광경이었다. 이런 개무시는 생전 처음이었으므로 그들의 뒤통수에 대고 '저기요, 저기요?'를 두 번 정도 더 외쳐보았으나 끝내 대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1차 도발은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렸으므로 더 이상의 대응은 하지 않았지만 한번 상기된 기분과 예민해진 감각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숱한 전쟁사에서 엿볼 수 있듯, 이러한 국지 도발은 언제든 다시 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앞의 두 눈으로는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제3의 눈은 우리 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그들의 탐욕을 감시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고딩 무리들은 1차보다 좀 더 본격적인 태세를 갖추어 2차 도발을 시전 했다.
이번에는 그냥 슈팅이 아니라 경기였다. 경기장 반을 쓰고 있는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편을 나누어 한쪽 편은 원래 그들의 경기장에서, 다른 쪽 편은 우리가 훈련하고 있는 경기장에 자리를 잡아 아예 풋살 경기를 시작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경기장의 원주민(?)인 우리의 허락을 구하는 과정은 없었다. 신대륙을 침범했던 콜럼버스는 원주민의 존재를 인지하기라도 했지. 이들은 여전히 우리를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 취급했다. 여성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그리스 로마 시대 때도 이보다는 대우가 나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다. 21세기에 이런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는 경험해보기는 커녕 (물론 누군가는 어디서 겪었을 것이고 여전히 겪고 있음이 분명하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무시에 1차 도발 때 잠깐 윤곽을 드러냈던 멸시감이 터져 나왔다. 당장 면상에 욕지거리를 뱉고 다리 사이를 힘껏 차준 후 다니는 학교를 파악해 내일 학교 종이 땡땡땡 치자마자 교무실에 전화를 걸어 소속 학생의 만행을 낱낱이 고발하여 신체적 정신적 참교육을 동시에 시켜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으나 혐오에 분노로 대응했을 때 더욱 어긋나 버린 역사를 떠올리며 조금 더 현명한 방법을 고안해 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일단은 다시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하며 이 경기장의 분단선이 그어진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때 하필 하얀 바탕에 번개처럼 날카로운 검은색 프린팅이 새겨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멤버들은 나의 걸음을 전투적인 얼룩말의 출격으로 보았지만 나의 목표는 화해와 평화였다.
그러나 겨우 이성을 붙잡고 온 걸음이 무색하게도 역시나 대화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군의 기세로 적진에 뛰어들었으나 적장처럼 보이는 이는 없고 하나같이 책상에서 공부만 하다가 전쟁터에 끌려 나와 정신없는 소년처럼 보였고, 어떻게든 휴전을 맺어보려고 외치는 저기요 얘기 좀 하죠 라는 물음에 응답하는 이도 없었다. 팀원들이 뒤따라와서 경기장 중앙으로 모이자 드디어 그들도 우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다시 물었다.
뭐 하시는 거예요?
풋살 하는데요
저희가 이쪽 경기장 쓰고 있잖아요
저희는 경기할 건데요?
아니, 저희가 먼저 와서 여기 쓰고 있는데 이렇게 침범하시면 안 되죠.
왜요?
4살짜리 조카에게 '차도는 위험하니까 그쪽으로는 가면 안돼~'라고 말할 때 돌아오는 '왜?'와 같은 결의 질문을 18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고등학생에게 들으니 이것 또한 생경한 기분이었다. 질문에는 귀천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것은 질문이기보다 시비와 고집에 가까웠으므로 대화의 의지는 그들이 한 문장 한 문장을 내뱉을 때마다 툭툭 꺾여갔다. 그러나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해 이쪽에서 떠나버리면 그들은 우리가 더러워서 떠나는 게 아니라 무서워서 회피하는 거라 생각할 게 뻔하기에 꿋꿋이 대화를 이어갔다.
여기는 8시 이후에 예약 없이 선착순으로 먼저 오는 사람들이 쓰는 거잖아요
개소리하네 왈왈
두 번째 위기였다. '개소리'를 말하기 전부터 그보다는 임팩트가 덜한 단어와 놀림거리를 찾았다는 표정으로 조롱을 쏟아내고 있었기에 겨우 가라앉힌 분노가 마지노선을 덜컥 덜컥 넘어서고 있었는데, 극단적인 커뮤니티에서나 볼 법한 워딩을 실제 눈과 귀로 경험하니 이건 또 다른 유형의 충격이었다.
몇 살이에요?
성인인데요?
성인이면 대화를 해요. 조롱하지 말고.
대화다운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친히 대화의 기본을 설명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들어먹을 생각이 없었다.
저희가 숫자가 더 많으니까 경기장도 다 써야죠.
경기장을 다 쓰고 싶으면 일찍 오셨어야죠. 저희가 일찍 와서 이미 이 경기장에서 훈련하고 있는데 이렇게 침범하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아 훈련하는 거였어요? 그냥 노는 건 줄. 이래서 풋살은 남자들이 해야 한다니까.
마지막 말에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이성의 끈이 끝내 풀려버렸다. 이 새끼를 어떻게 담글까 생각하며 노려보고 있는데 방관하며 숨 쉬듯 조롱과 혐오 워딩을 뱉어내는 친구의 퍼포먼스를 방관하고 있던 다른 친구들이 이제야 그를 말리고 경기장에서 끌어냈다. 수컷과 수컷의 팽팽한 기싸움과 치열한 주먹다짐, 마침내 정해지는 서열! 이처럼 소년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본새 나는 싸움과 달리 치고받기는 고사하고 닭다리 들고 삐약삐약 같은 닭싸움만도 못한 이 우스운 싸움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아 멀찍이서 이 소란을 지켜만 봤을 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이 친구가 하는 말은 무시하세요. 죄송합니다. 저희도 풋살을 하고 싶은데 못해서...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하면 되잖아요.
네 죄송합니다.
몇 시까지 하실 거예요?
10시까지요.
그럼 저희 훈련 조금만 더 하고 9시 반에 나갈게요. 그때 쓰세요.
대화 병목현상을 유발한 조롱꾼이 사라지자 제대로 된 화해와 협상이 단 1분 만에 이루어졌다. 진작에 이럴 것이지. 대화를 마친 양쪽 진영의 멤버들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미 훈련에 써야 할 체력과 집중력을 다 써버려 바로 경기장을 내어주고 집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 역시 남성과 다를 바 없이 풋살을 즐길 줄 알고 할 줄 아는 존재임을 각인시키고, 조롱꾼의 농간에 휩쓸려 색이 바랜듯한 품위를 되찾고 싶었으므로 다시 훈련에 돌입했다.
방치된 콘을 다시 정연하게 세워둔 후 발끝을 잔뜩 세워 패스의 정확도를 높이고, 뚫린 입으로 개소리를 지껄이던 바로 우리 뒤에서 훈련을 지켜보고 있는 무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슈팅을 때렸다. 반대쪽 진영에서 우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말소리들이 은은하게 들려왔고, 덕분에 더욱 맹렬하게 훈련에 임할 수 있었다. 약속한 30분에 딱 맞추어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말이 통했던 우두머리가 우리 벤치를 찾아 다시 한번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갔다.
짐을 정리한 후 바로 헤어지기가 아쉬운 마음에 길 건너 편의점으로 갔다. 이미 마음이 허공으로 붕 뜬 후여서 음료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러다 피크닉을 집어 들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가장 많이 마신 음료 중 하나였다. 음료를 사들고 공원 앞 벤치에 앉았다. 다들 영혼과 신체가 살짝 분리된 것처럼 멍하게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함과 무력감, 그러나 아예 물러나거나 옹졸해지지 않고 화해와 협상을 했다는 승리감과 아직 저기 풋살장에서 공을 차고 있는 조롱꾼들에 대한 적의, 미래 세대에 대한 불안함 같은 감정들이 한데 휘몰아쳐 모두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동안 그렇게 염원했던 경기를 마쳤는지 고등학생 무리들이 따로따로 풋살장 밖으로 나와 우리가 있는 벤치를 지나갔다. 유별나게 까불던 조롱꾼도 다른 친구와 둘이서 우리 앞을 지나갔는데, 친구들이 등 뒤에 있을 때와는 달리 우리를 발견하고는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걸음을 재촉하더니 급기야는 뛰기 시작해 우리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쯧쯧. 조금 아니 많이 찌질해보이는 달음박질에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쪼르르 마시고 있던 빨간 피크닉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언제 또 남자 고등학생들이랑 이렇게 현피를 붙어보겠냐. 이왕 이렇게 된 거, 러키비키 사고로 회춘했다고 생각하지 뭐. 멤버들이 경직된 표정을 풀고 웃으며 동조했다. 맞아 맞아. 혼란한 마음을 그렇게 달래고 나니 내일 출근이라는 가혹한 현실이 떠올랐다. 첩첩산중. 이제 각자 집으로 헤어지려는데 한 멤버가 아까의 무리들을 대치할 수 있는 공원 옆에 차를 주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분 남짓의 짧은 거리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이 들어 주차해 둔 곳까지 다 같이 걸어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혹시나'에 포함될 만한 사건들을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그 적은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무사히 배웅을 해준 후 우리도 각자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땀과 화에 젖은 몸을 깨끗이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얼룩말 옷을 입고 경기장 한가운데서 애타게 대화 상대를 찾던 내 모습을 제3의 눈으로 떠올려보니 어딘가 웃기기도 했고, 개선장군처럼 달려들던 내가 걱정되어 뒤를 따라와 준 팀원들이 귀엽기도 했고, 그런 우리를 어떻게 하면 더 우습게 만들 수 있을까 만을 고민하며 조롱하던 무리들이 떠올라 화가 나다가도, 그런 친구들과 학교를 다녀야 할 상식적인 친구들이 겪을 고행이 그려져 슬프기도 했다. 세상은 분명 옛날보다 더 풍요로워진 것처럼 보이는데 왜 더 나아진 것 같지는 않을까. 어디서부터 무엇을 바로 잡아야 무시와 혐오가 아니라 대화와 존중의 힘이 강해질 수 있을까. 혼자서는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는 고민을 하다가 이내 살면서 다시는 얻을 수 없을 귀한 에피소드를 신나게 나누어줄 얼굴들이 생각나서 이 말은 꼭 까먹지 말고 해 줘야지 하고 '개소리 왈왈, 풋살은 남자들이 하는 거...' 따위의 명대사를 다시 한번 복기하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