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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이 Oct 25. 2024

풋살이란 무엇인가


지난 금요일에 아주 오랜만에 만족할 만한 경기를 하고 아 조금 성장했구나 하고 마음이 편해지자마자 어제 경기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만 앞서서 침착하지 못하고 위치 제대로 못 잡고 우왕좌왕 볼만 이리저리 끄는 내 모습이 밤새 생각이 나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또 생각이 나서 고통스럽다. 본업도 아닌데 말이지. 이런 답답함은 글을 쓰지 않으면 해소되지 않기에 출근길에 재밌자고 시작한 초심을 되새기며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처음 축구와 조우한 때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발단은 이스탄불의 기적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지성팍이 맨유에 입성하며 내 또래 남자아이들은 다 가슴 속에 EPL 클럽 하나씩 품고 있었다. 옆에서 걔네 얘기를 하도 듣다보니 자연스레 축구에 관심이 갔는데 그중에서도 '이스탄불의 기적'이라는 대서사를 가진 리버풀에 꽂혔다. 유럽 리그에서 뛰는 클럽 중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챔피언스리그의 결승 경기가 이스탄불에서 열렸다. 리버풀은 AC밀란에 밀려 초반부터 3:0으로 지고 있었고 그렇게 패색이 짙은 채 전반전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역시 공놀이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고, 감히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의지가 그들의 능력치를 한껏 끌어올려 후반전 추가시간까지 마쳤을 때 스코어 보드에는 3:3 동점이 찍혀 있었다. 마지막 페널티킥. 승리는 리버풀의 것이었다. 


승리를 이끈 주역 중 No.8 선수 제라드에게 눈길이 갔다. 비록 영국인이었지만 고구려상의 기백이 보였던 그는 다른 빅클럽의 수많은 제안에도 불구하고 유스부터 선수까지 오직 리버풀에서만 뛰었던 낭만의 상징이자 리버풀의 캡틴이었고, 패스와 태클 마스터이자 슈팅, 것도 중거리슛의 장인이었다. 이 역시 서사에 미치는 나에게 거부할 수 없는 셀링 포인트였다. 


그렇게 나는 리버풀 팬을 지칭하는 콥Kop이 되었다. 대학생 때 첫 유럽여행의 마지막 국가는 영국이었고, 매우 운 좋게 리버풀 홈 구장인 안필드에서 열리는 경기 티켓을 구했다. 너무 바트게 구한 티켓이어서 예약할 수 있는 숙소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노숙을 해버렸다. 눈 앞에서 보는 제라드를 놓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때의 팀은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을 몇번이나 들었던 팀이라고 하기 무색하게 엉망진창의 상태였고, 순위는 더욱 하락세였으며, 경기는 하필 최대의 라이벌인 에버튼과 벌이는 머지사이드 더비였다. 결과는 2:0 패배였다. 



노숙과 맞바꾼 최애 선수의 프리킥 장면



그래도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성해서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곳 앞에서 기다리며 제라드와 몇년 후 그의 뒤를 이어 캡틴이 된 헨더슨, 역시나 몇년 후 각자 다른 클럽으로 이적해 좋은 성과를 거뒀던 꼬마 스털링과 쿠티뉴도 봤다. 경기 중에는 맨눈으로 제라드가 차는 프리킥과 코너킥을 봤다. 경기 결과는 안중에도 없었다. 가난한 여행객이었으므로 경기장에서 역까지 1시간은 넘게 걷고 걸었는데 아침부터 강행군이었던 일정이었음에도 그저 꿈에 그리던 경기를 봤다는 사실 만으로 벅차올라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왔었다. 


역에 도착한 밤 9시부터 새벽 6시 첫차가 운행할 때까지 로밍도 안하고 유심도 안 끼운 주제에 노숙자들이랑 노숙하던 말도 안되는 기행을 펼쳤으나 그조차도 겁없던 그 시절엔 젊음과 애정이 더해진 낭만 그 자체였으므로 단 1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 이후, 이 팀과 더욱 돈독해졌고 축구와 팀을 향한 사랑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축구를 좋아하지만 본격적으로 공을 차본 건 리버풀에 다녀온지 5년쯤이 지난 후였다. 첫 회사에는 금요일 아침 7시마다 회사 옆 공원에서 풋살 경기를 하는 동아리가 있었다. 하도 리버풀 얘기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녀서 축구를 좋아하는 걸 알았던 동료 분들과 위닝을 하다가 한번 놀러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다 아는 사람들이니까 한번 가볼까? 해서 이른 아침 부지런히 일어나 공원에 도착했는데 제안해주신 분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계셨다. 정말 왔어? 머쓱했지만 이미 온 걸 어떡하나? 깍두기처럼 남자 동료들 사이에 끼어 경기장을 마구 누볐다. 


지금도 대단한 실력은 아니지만 그때는 지금에 비해 그때는 공을 차는 수준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따뜻한 심성을 가진 동료 분들이 체력만 좋아서 열심히 수비하고 어떻게든 때려보려는 노력을 좋게 봐주셔서 다들 싫은 소리 없이 어여삐 끼워주셨다. 처음으로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풋살에 푹 빠져 매주 금요일 아침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날,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였는데 너무 공감가고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이 책을 보고 여자들과 제대로 축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집 근처 클럽을 알아보다가 집 근처라기에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아예 못갈 정도는 아닌 거리에 있는 여자 축구 클럽을 발견했다. 


집에서 훈련장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 왔다갔다 3만원은 족히 나왔으나 술 한번 안마시면 되는 돈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금세 가벼워져서 바로 DM을 날렸다. 2022년 여름이었다. 2,30대부터 4,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감독님과 코치님의 체계적인 교육 아래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훈련을 하고 있었다. 


역시나 실력은 볼품 없었으나 축구에 대한 진정성과 체력을 인정 받아 경기에도 몇 번 나가면서 축구의 참맛을 느꼈다. 동네 언니들끼리 모여 만든 클럽이라 언니들 특유의 정도 끈끈했다. 회사를 옮기고 이래저래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어 끝까지 인연을 이어가진 못했지만 축구도, 축구 외적으로도 배운 게 많았던 팀이라 기억에 남는다. 


축구 대신 찾은 방법은 '플랩'으로 가까이에서 열리는 풋살 경기에 참여하는 거였다. 근처 풋살장을 검색하면 같은 시간대에 공을 차고 싶어하는 멤버들을 모아 팀을 만들어주는 시스템이라 풋살 친구가 없는 나에게 빛과 소금 같은 서비스였다. 처음에는 혼자 가는 게 매우 쑥스럽고 눈치 보였다가 이것도 여러번 해보니 단련이 되어서 점점 낯짝이 두꺼워지고 나름의 재미가 생겼다. 


그러다 자주 가던 플랩 경기장의 매니저분이 따로 매치해볼 생각이 없냐고 스카웃(?) 제의를 주셔서 일요일 저녁마다 혼성 클럽에서 매치를 뛰었다. 4시부터 6시, 6시부터 8시 팀이 있었는데 회사 동아리 이후로 간만에 혼성으로 경기를 하니까 속도나 스킬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뚜렷하게 보여서 오기가 생겨서 4시간 내내 뛴 적이 여러번이었다. 


처음엔 3시간 지나면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서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것도 2-3개월 하다보니 역치가 올라가서 나중에는 4시간 내내 뛰어도 거뜬한 정도가 되었다. 처음 뛸 때는 역시나 깍두기와 다름없는 포지션이었는데 들이는 시간 만큼 실력도 올라서 나중에는 잘하는 분들이 처음 봤을 때랑 다르다고 격려의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 참 뿌듯했다. 


회사를 옮기고 가장 먼저 했던 일 역시 풋살 동아리가 있는지 찾아보는 거였는데 다행히 여자 풋살 동아리가 있었다. 땡스갓. 다른 날에 뛰고 있던 외부 팀도 있었지만 매주 1회 훈련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었고, 마침 코치님까지 계신다기에 바로 가입했다. 그렇게 화/금에는 소속팀에서 훈련+경기, 주말에는 혼성 경기를 뛰는 주3회 풋살 스케줄을 완성했다. 





헬스부터 요가, 필라테스, 킥복싱 등등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애정을 갖고 임하는 운동은 풋살이 처음이다. 사실 운동이라고 하기에 갈 때마다 놀러가는 것처럼 설레는 마음이라 신기할 정도다. 


엄마도 동생도 친구들도 왜 그렇게까지 뛰냐는 질문을 했었다. 나한테는 풋살이 글쓰기와 비슷한듯 다른데 상호보완이 상당히 잘 이루어져 시너지가 난다. 잡념이 많아 늘 머리가 무거운 내게 풋살은 먼지를 털어주는 바람 같다. 좋은 패스를 찔러주는 것도, 골을 넣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냥 경기장에서 뛸 때 얼굴에 느껴지는 바람이 좋다. 머릿속에 나쁜 것들이 싹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한번씩 경기장에서 그 바람을 느낄 때 여지없이 행복해진다. 


인터랙션이 있다는 것도 빠질 수 없다. 글쓰기가 나의 내면과 소통하는 행위라면 풋살은 나한테 정말 필요한, 타인과 소통하는 행위다. 같은 팀 멤버들이랑 콜을 주고 받으면서 의견을 나누고, 경기가 끝나면 다른 팀 멤버들과도 격려와 칭찬, 감사 인사를 주고 받는다. 그렇게 풋살이란 매개체로 가까워지면 더 다양하고 깊은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한다. 이렇게 건강하고 꾸밈없이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참 귀중한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풋살엔 서사가 있다. 한 사람만의 개인기만으로 하나의 골을 완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로의 위치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부지런하고 정확하게 패스를 주고 받고, 도중에 빼앗기더라도 다시 악착같이 막고 빼앗고, 누군가의 양보나 응원이 담긴 볼을 받아 슈팅을 때릴 때 마침내 골 하나가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경기장에서는 이 일련의 과정이 상당히 정신없고 때로는 미숙하게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에 들어와있는 제각각의 배경과 성격을 지닌 5-6명의 인물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없다. 모두의 기대를 업은 에이스의 슛도 찬란하고 본인의 실력에 의심이 많았던 언더독의 슛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실 난 골을 넣을 때보다 골을 넣고 우리가 같이 모여서 하이파이브를 할 때가 더 짜릿하고 뭉클하다. 이것이 풋살 속 서사의 힘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속상했던 마음이 싹 가라 앉는다. 잘 하고 싶었던 마음만큼 내 몸이 따라주지 않아 속상함이 커서 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하지만 그동안 골을 넣기 위해서, 이기기 위해서 뛴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다시 보인다. 깍두기에서 탈출해 팀에 조금이나마 더 보탬이 되려고 열심히 뛰어다녔던 초심을, 뛸 때 느껴지는 얼굴의 바람에 행복해했던 기억을 다시 되살려 앞으로도 즐겁게 뛰어야지. 


기억하자. 엄마의 말을. 

'딸아, 누가 보면 니 국가대푠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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