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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이 Oct 18. 2024

공감의 한계

간만에 외출 일정이 없던 주말, 집앞 영화관에 영화 <리바운드>를 보러갔다. 시련과 위기를 강인한 정신력과 끈끈한 팀워크로 극복하는 팀스포츠 영화 특유의 서사를 좋아하기에 기대를 품고 갔다. 아니나다를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지나가자마자 고추냉이를 한움큼 먹은듯 코끝이 시큰거렸고 이윽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심지어 실화 바탕이라니 심금이 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 농구팀이 엉겁결에 만들어져 우승하기까지의 우당탕탕 과정을 담은 영화였는데, 농구에 진심인 친구들이 따로국밥처럼 모였다가 시너지를 내어 마침내 우승했다는 신파스럽지만 그럼에도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오합지졸이던 팀이 일련의 사건을 함께 겪으며 끈끈하게 우정을 다지게 되는 스토리, 모두가 예상도 기대도 하지 않은 최약체 팀이지만 불굴의 의지로 만들어낸 기적같은 결과를 보여준 결말, 이후 Fun의 <We are young>이 깔리며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제 부산중앙고 선수들의 사진과 함께 올라가던 엔딩크레딧까지. 이는 서사중독자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 감동스러운 이야기 중 가장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던 장면은 다름아닌 한 선수의 부상 장면이었다. 

'조던' 흉내를 맛깔나게 하지만 실력은 그에 한참 못 미치는, 이런 비교조차도 조던에게 송구스런 진욱이라는 친구는 농구는 엄청 잘하지는 못해도 애정만큼은 여느 선수 못지 않았다. 감독은 대회에 나갈 선수를 뽑는데 애를 먹고 있었기에 어쨌든 이토록 열정에 가득찬 진욱을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끝없는 노력으로 열정을 실력으로 업그레이드시키던 진욱은 지역 예선 대회에서 멋진 3점슛을 꽂아 넣고 이내 쓰러졌다. 어깨 크게 다친 것이다. 안 그래도 교체 멤버가 부족한 팀에 큰 전력 손실이었다. 진욱은 나갈 수 있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상태는 3개월을 쉬어야하는 심각한 상황. 결국 진욱은 본선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나도 한창 풋살에 빠져 주말이면 이런저런 경기에 나가서 짜릿한 승부의 맛을 보는 데 재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한 순간의 부상으로 삶의 낙을 빼앗긴 그 친구의 처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에서 재미와 팀의 스피릿을 보여주는 감초 역할이라 비중이 크지 않은 역이었는데 경기 동안 응원하는 그 친구가 장면 곳곳에 별사탕처럼 보일 때 괜히 더 마음이 갔다. 

영화를 본 후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주말, 뛰다가 발목을 크게 접질렀다. 두두둑 하고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심상치 않은 부상임을 직감하고 응급실에 갔다. 발목 바깥쪽을 잡아주는 인대가 순식간에 늘어나면서 발목쪽 뼛조각이 같이 튿어져나온 미세골절이었다. 난생처음으로 깁스를 했다. ‘깁스는 얼마나 해야 하나요?’ 한창 공차는 실력이 오르고 있을 때라 조급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은 최소 한달은 뛰는 건 물론 많이 걸어서도 안된다고 했다. 한달이라니. 일주일에 2번은 뛰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에게 한달은 억겁의 시간이었다. 깁스를 하고 절뚝절뚝 병원을 걸어나오는 길에 속이 정말 상해버린 것처럼 따끔따끔거렸다. 발목이 꺾여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지던 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떠올랐다. 조금만 천천히 뛸 걸 뭐가 급하다고 참. 

5-6월은 날씨가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이라 풋살대회가 많이 열리는 시기였다. 나 역시 한달 후 2개의 대회에 출전해야 했기 때문에 ‘한달은 봐야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한달 후엔 나을 수 있다’로 이해하고 주말마다 마시던 술을 끊고 뼈에 좋다는 곰탕을 챙겨먹고 예사로 챙겨나오던 처방전을 꼬박꼬박 들고 약을 타먹으며 버텼다. 그러나 한달은 턱도 없는 시간이었다. 아직 발의 피멍과 붓기도 제대로 가라앉지 않았고 디딜 때마다 통증이 있었다. 달리 방도는 없었기에 결국 대회엔 나가기 어렵겠다는 소식을 알렸다. 진욱의 얼굴이 떠올랐다. 며칠 전만 해도, 대회에 나가지 못했을 그 친구의 심정이 참으로 답답하고 미안하고 쓰렸겠구나 생각했는데 바로 내가 그의 처지에 처하게 된 것이다. 답답, 미안, 속쓰림 같은 언어로는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풋살은 나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근육을 단련시키는 운동인 동시에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는 연대의 장이었고,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골이라는 환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성취의 시간이자 조금의 틈만 나면 밀려드는 온갖 잡생각으로부터 도망칠 밝은 동굴이기도 했다. 그런 존재가 잠시나마 내 일상에서 사라진다는 건 생각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는데 이제 그 캄캄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깁스를 한 왼쪽 발이 더 무거워진 듯했다. 아마도 그를 보는 내 마음의 무게가 더해진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된 이상 휴식 시간이라 생각하고 기다려보자.' 서른이 넘어서 운동 못 한다고 땅을 치며 울고 불고 할 수는 없으므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입밖으로 내가며 막막한 일상을 살아가려 할 때 문득문득 진욱의 얼굴이 떠올랐다. '니가 이런 맘이었구나. 그때 니 기분이 이랬겠구나.' 내 발에 이 뻣뻣하고 하얀 깁스와 수술복을 연상케하는 시퍼런 고무 신발이 없었던 때와 달리 영화를 보며 느꼈던 것보다 훨씬 깊고 넓은 슬픔이 느껴졌다. 겪어보지 않은 자의 공감이 얼마나 얄팍할 수 있는지 비로소 실감했다. 그가 영화 속 캐릭터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함부로 그의 슬픔을 예단하고 위로하고 싶었던 내 감정이 참 건방져보였다. 그가 실재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도 했다. 

아빠가 떠난 후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후 쉽게 잠들지 못했다. 갑자기 일어난 일들이 믿기지가 않아서 침대에 누운 몸이 허공에 붕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아무 말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잠을 자고 싶었지만 무엇때문인지 그게 가장 어려웠다. 검색창에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를 쳐봤다.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올라와있었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인사도 못했어요.', '죄송한 게 너무 많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더 자주 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 후회돼요. ' 마치 내가 써놓은 것 같은 글들이 몇 페이지에 걸쳐 이어졌다. 당장 그 글을 쓴 사람들을 붙잡고 어떻게 했냐고, 그 슬픔을 후회와 자책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본 글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창밖이 하얘져서야 겨우 눈을 감곤 했다. 

그 시간이 내게는 위안이자 애도였다. 같은 슬픔을 겪은 사람들이 남긴 글, 그 안에 담긴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어루만지면서 나만 이런 일을 겪은 게 아니구나. 나만 억울하고, 나만 슬프고, 나만 자책하는 게 아니었구나. 비극적인 동질감으로 위안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도 죄스러움을 느끼다가도, 어쩌면 부모를 먼저 보내는 것은 어떤 인류가 공통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실이며, 나는 그리고 우리는 조금 더 안타까운 방식으로 그 상실을 겪은 것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피를 토하는 마음, 내 살을 찢고 싶은 심정으로 먼저 떠난 부모님을 고통스레 그리워하는 글을 남겼을 이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기에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라고 조용히 읊조렸고 그것은 내가 내게 해주는 말이 되어 한 가운데가 뻥 뚫려버린 마음을 잠시 채워주기도 했다. 꽤 오래전 남겨진 글을 보면서는 지금쯤엔 그분들이 부디 평안을 되찾았길 간절히 바랐다. 시간이 흐른 후 나에게도 평안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공감능력이 대인관계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같은 상황과 처지에 놓이지 않는 서로가 서로를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리하여 나는 회의적이다. 가끔은 공감한다는 말이 기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진욱에게 그랬듯 알량한 공감은 서로의 감정에 대한 감도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어 때로는 의도치않게 때로는 의도적으로 위선과 기만의 무기로 쓰일 수 있다. 어른이 될수록 누군가를 위로하기가 어려운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 아닐까. 같은 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건넨 '네 마음 안다.', '얼마나 힘들까'와 같은 의례적이며 섣부른 위로의 말이 되려 독이 된다는 것을 잘못된 위로를 받아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물론 상대는 오로지 선의로 건넨 말이라고 하나 그 의도는 위로에 있어 퍽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의 마음과 상황에 공감하고 위로하고 싶은 나의 의지가 아무리 높은들, 상대에게 위안이 되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실패다. 모른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심지어 겪어봤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본성과 사정에 따라 느끼는 바는 얼마든 다를 수 있다. 신형철 평론가는 폭력을 '어떤 사람이나 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로 넓게 정의했다. 이 문장을 접한 후로 내가 하려는 것이 진정한 공감인지, 공감을 가장한 폭력인지 의심하게 된다. 

그렇다면 경험해보지 못한 슬픔을 위로할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여러 선택지 중 완벽히 배제한 것이 있다면 겪어본 일이든 아닌 일이든 '나도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안다고 말하는 게 위로인 줄 알고 멋대로 떠들어댔던 기억이 숱하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건 그게 아니다. 별말을 하지 않아도, 나와 같은 일을 겪어보지 않았어도 나의 슬픔이 당연한 것임을 알아주는 것, 그런 나의 곁에 머물러있겠다는 것, 털어놓을 곳이 필요할 땐 언제든 시간을 내어주는 것, 가만히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 그러니 정답은 공감이 아니라 이해일지도. 공감과 이해는 닮았지만 다르다. 사전에 따르면 공감은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고, 이해는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비록 너와 같이 느끼지 못하더라도 즉 너에게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너의 마음이 감정이 상황이 그렇다는 것을 헤아리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며칠 전 한창 유행할 때는 무사히 피해왔던 코로나에 처음 걸렸다. 목이 따끔하고 코가 시큰하고 눈이 얼얼한, 보통 감기와는 차원이 다른 코로나에 걸려 며칠을 골골거려보니 친구들에게 말로만 듣던 이 바이러스의 남다른 지독함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백문이불여일견이고, 백견이불여일경험이다. 깁스를 하기 전과 후, 진욱을 떠올리던 감정의 다른 얼굴을 기억한다. 누군가가 인터넷에 남겨둔 글로 나를 용서하고 토닥여주었던 하얀 밤들을 기억한다. 섣부른 위로 없이도 위안이 되었던 이들의 손길과 마음을 기억한다. 어쩌면 비극과 냉소로 가득찬 세상에 필요한 건 어설픈 공감능력이 아닌 애틋한 이해력이라는 사실을 곱씹으며 마음의 문을 넓혀가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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