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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유 Oct 13. 2022

달리면서 울어 _ 이야기를 시작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며


 

나는 죽을 뻔했다.


 첫 번째는 작년 초였다. 사실 재작년을 너무 비참하게 보내서 그때 처음 안 좋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누군들 살면서 비참하지 않았던 이들이 있겠냐만 당시 나로서는 '왜 사냐' 라는 자문을 많이도 했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너무나 비참하고 한심했고 결국 안 좋은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일단 계획을 미루기로 결심한 건, 성경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나는 성경을 거의 다 그려가고 있었다. 3년 넘게 구약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하루에 성경 한 장씩 그려오고 있었는데 그 시점에는 그 것이 거의 끝날 때 쯤이었다. '그래. 다 그리고 죽자.' 라고 생각했다.그러다가 그리던 성경은 마침내 모두 다 그리게 되고, 얼레벌레 몇 달이 지나가며 한참 안 좋았을 때보다는 상황이 나아지니 안 좋은 생각은 차츰 마음 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러다가


그해 연초에, 그리고 여름에. 가까웠던, 가까운 사람들이 연달에 세상을 떠났다.


 첫번째 비극은 얼떨떨 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씁쓸해지거나 우울해지거나 하는 감정이 아니라 혼란스러워 지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아니라 느낌이었다.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그렇게 혼란스럽게 때로는 멍하게 지내다가 두번째 비극을 겪었다.


 현실 같지가 않았다. 장례를 마치고 행정관련된 일들을 정리하느랴 정신 없는 시간들을 보내는데 마치 내 일 같지가 않았다. 비탄에 빠지거나 슬픔에 잠기거나 하는 것이 아닌 내가 로봇이 된 기분이 들었다. 감정이 사라지고 0과 1만 있는 것만 같은.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질 때도 몇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눈물은 나 스스로 내가 로봇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밖으로 내는 호소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을 때도 나는 몇번 그렇게 울었다. 그만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처럼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출근도 다시 시작하고 누군가를 만나면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살아야지. 그래도 살아가야지. 살아야만 했다. 올해 초가 왔을 때는 작년 초 때와는 완전히 마음이 달라져서 무조건 살아가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너무 졸렸다.


 아침에 일어나도 졸리고 길을 걸어도 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졸렸다. 잠을 못자서 졸린 것과는 달랐다. 마치 베터리가 다 된 로봇처럼 느려지고 무뎌지고 졸려졌다.


두 번째 죽을 위기가 찾아왔다고 느꼈다.


 나는 재작년 공황장애 증상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우울 수치가 높게 나왔었고, 의사선생님께서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처방받은 약이 나에게는 너무 맞지가 않았었다. 다른 이들도 그런지 나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약을 먹으면 힘이 빠지고 졸린 건 둘째치고 평소엔 막연했던 우울이 약을 먹으면 현실의 우울과 두려움으로 닥쳐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약을 먹어서 내가 느끼는 기분이 아니라 약을 먹으면 나에게 발현 되는 증상이었다. 다시 약을 먹는다는 건 엄두가 안났다. 평소 우울할 때마다 했던 오래걷기도 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졸렸으니까. 이때의 나는 우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고장난 로봇과도 같은 상태였다. 로보트가 어떻게든 완전히 꺼지지 않도록 나는 무슨 수를 써야했다. 이때는 다양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일차원 적인 행동만 가능했을 때라 여러가지 계획을 세우거나 고민을 하진 못했을 때지만 어떻게든 살아야 겠다는 생각만큼은 잃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어쩌다 다시 기운을 되찾게 되었고 정말 운 좋게도 살게 되었다.






 나는 지금부터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건데, 나의 위기와 우울이 달리기만으로 극복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을 거다. 내가 지금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살아가게 된 건 달리기 뿐만 아니라, 나를 지켜주고 사랑해주고 응원해주는 모든 이들의 마음 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 덕분에 내가 달릴 수 있게 되었고 달리기는 내 삶을 다시 세우는데 엄청난 힘이 되었다.


앞으로의 내 달리기 이야기는 절반씩 번갈아 가며 하게 되는데, 일기와 동화다.


 먼저 일기. 늘상 우울과 싸워온 비루한 작가가 한 명 있는데 이 작가는 큰 행운으로 늦게나마 달리기를 만나 새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 작가는 1km, 5km, 10km를 지나 하프코스 (21.095km)를 완주하게 되고 겁도 없이 11월 6일에 열리는 풀코스 마라톤 준비를 하고 있다. 현재 시점으로 24일 남았다. 그런데 이 작가는 여러모로 문제가 참 많은 사람이라 열심히 연습만해도 모자란 이 시간에 여러가지 스스로의 난관과 만나게 된다. 이 난관들과 타협하게 될 지, 싸우게 될 지, 이겨내게 될 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의 절반의 구성은 이 작가가 이렇게 대회를 준비하고, 대회를 하고, 대회를 성공했던 실패했던 그것을 보강하기 위해 벌이는 어떤 일들에 대한 일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의 절반은 이 작가가 쓰는 동화다. 잠에서 깨어난 로봇 달리는 지금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가운데 자신이 잊고 있는 소중했던 사람을 찾기 위해 우울을 헤치며 달리는 여정을 시작한다. 작가의 이야기는 작가의 세상을 불가피하게 반영하므로 작가의 이야기와 동화의 이야기는 어떠한 접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 할 이야기가 거창하고 위대한 이야기보다는 편안하고 다정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로봇이 된 인간은 달리면서 땀이 눈에 맺힌 순간 그걸 눈물이라고 치기로 했다. 어차피 눈물이나 땀이나 모두 짜다. 로봇이 된 인간은 그렇게 생각하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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