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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유 Oct 30. 2022

달리면서 울어 _ 4. 불나방이의 달리기

4. 불나방이의 달리기

’너도 달리기를 하러 나온 거야?‘     


 반딧불이의 물음에 달리는 엉뚱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엔 술먹었냐고 묻더니 이제는 달리기를 하러 나왔냐니. 달리는 반딧불이가 참 황당한 밤벌레라고 생각했다.    

  

’술 냄새가 나지는 않고.. 가만보니 행색이 장거리를 달린 것 같은데 길을 잃어버렸었구나?‘     

 

’나는 그냥 거기 있었어.‘      


’왜?‘      


’몰라.‘     


’그래. 달리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아니 달린 게 아니라고.‘     


’부끄러워 하지마. 누구나 달리다가 길을 잃곤 한단다.‘     


 황당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반딧불이에게 달리는 답하기가 지쳐 입을 다물었다. 급한 걸음으로 꽤나 걸었더니 갈증이 밀려왔다.     


’목마르지? 저기에 급수대가 있어.‘     


 어느덧 파랗게 물든 숲의 저 멀리에 반딧불이의 말처럼 수돗가가 보였다. 터덜걸음을 걷던 달리는 물을 찾아 빠른 걸음으로 향했다. 로봇이라 물이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방수 로봇인지 갈증이 심했던 것인지 달리는 수돗가에 닿자마자 물을 틀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 달리고 나면 수분 보충은 충분히 해줘야지. 꽤나 장거리를 뛴 모양이구나?‘     


’달린 거 아니라고.‘     


’넌 이름이 뭐야?‘    

  

’...달리.‘      


’달린 거 맞네.‘     


’그래 이름은 달리야. 그런데 달린 건 아니라고.‘ 


’그래. 그렇다고 쳐.‘     


’아휴. 넌 이름이 뭐야?     


‘난 불나방이야.’     


‘넌 반딧불이인데?’     


‘응. 난 반딧불이야. 그런데 이름은 불나방이야.’     


‘불나방을 좋아해?’     


‘글세. 나는 불나방엔 별로 관심이 없고 달리기를 좋아해.’    

 

‘그치만..’     


‘응?’     


‘넌 날고 있잖아. 달릴 수 없는 거 아냐?’     


‘아니야 나는 달리고 있어.’     


‘뭐라는 거야?’     


‘땅바닥에 다리를 튕기는 것만 달리는 게 아니야. 땅 위에서 날개를 튕기는 것도 달리기라구. 이건 물속에서 지느러미를 튕기는 것도 마찬가지야. 뭐든 자기가 달릴 수 있는 곳에서 달리면 달리기지.’      


‘넌 참 엉뚱하구나.’     


‘긍정적이라고 해줘. 달리기를 하면 너처럼 무례한 로봇을 만나도 화가 나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게 된단다. 마침 너 이름도 마음이 들고 말야.’       


‘무례했다면 미안해.’      


‘급수도 했으니 가볍게 5km만 뛰어볼까?’     


‘난 지쳤어.’     


 불나방이는 천천히 어딘가로 뛰기 시작했다. 달리는 지쳐서 못 뛸 것 같았지만 왠지 불나방이를 따라가고 싶었다. 왠지 불나방이를 놓치고 싶지 않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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