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8 D-20 _ 마음가짐 (2)
참으로 어리석었던 것이다. 장거리를 달리러 나가면서 발톱 살필 생각도 안 했다니. 당시에 내 발톱은 꽤 길어진 상태였고 평소 달리던 거리 정도면 괜찮았었겠지만 20km이상을 계속 운동화 내부와 맞닿으며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15km정도까진 조금 불편할 정도였지만 20km이상을 달리며 버텨야 하는 수준으로 고통의 정도가 높아졌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문제가 있던 발톱쪽은 왼쪽 발이었는데 왼쪽 발이 불편해짐에 따라 왼쪽 다리에 부담이 생겨 오른 쪽 다리에 더 부담을 주게 되었다. 즉 양다리에 발란스가 깨진 것이다. 원래의 목표는 30km. 하지만 25km를 거의 다 달리게 되었을 때는 평소 느껴지지 않던 오른쪽 장경인데의 통증이 느껴졌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한달여간 머무르다 떠난 그 통증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허벅지 근육의 상태만을 신경쓰고 있었는데 정작 3cm도 안되는 발톱이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장거리를 달리면서 격양된 신체의 상태였기 때문에 앞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라는 정도의 고통 수준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리석게 목표했던 30km를 다 달려낼 수도 있었겠지만 오른쪽 장경인대의 통증이 명확화되기 시작한 23km지점 쯤에서 25km만 달려내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나마 잘한 선택이었다. 만약 이날 30km를 달렸으면 아마 지금쯤 11월 6일의 대회를 기다리고 있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달리기의 성과는 여러모로 있었다. 이날 달리기를 하며 얻는 것은 하프거리 PB 달성 말고도 내 기준 최장거리를 뛰며 느낀 보완점들과 팁들이었다.
1. 잠이 보약이다.
2. 기록이 목표가 아니니 급수대에서 충분히 쉬어주고 달리자.
3. 발톱상태를 꼭 확인하자.
이렇게 크게 세 가지 깨달음을 얻고 나는 이날의 LSD를 마쳤다. 더불어 아득했던 42km의 절반 이상을 달리며 얻은 자신감과 이 정도 거리에서 다리가 잠길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은 나에게 심리적으로 꽤나 도움이 된 부분이었다. 11월 6일 풀코스 대회에 주어진 시간은 5시간. 이날 나는 25km를 2시간 37분 동안 달렸고 남은 17km정도를 2시간 23분 안에 못 달리진 않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기대도 스스로 하게 되었다. 물론 앞날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나들목 밖에 묶어 놓은 자전거를 찾으며 허벅지에 쥐가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25km 이후에 다리가 잠긴다면 앞에서 내가 한 계산이 의미가 없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고, 어느 정도 마사지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왔을 때 본격적으로 느껴진 오른쪽 장경인대의 통증은 대회의 달리기가 만만치 않겠다는 두려움을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이날은 이사 갈 집에 계약과 영화제의 개막식이 있어서 빠듯한 일정이었는데 워낙에 걸음이 빠른 나는 바쁜 일정에 맞춰 더욱 빠른 걸음으로 움직여야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오른쪽 무릎의 통증이 생각보다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하프마라톤을 뛰고 나서 느꼈던 다리의 경직이나 지친 느낌이 아니었다. 뭔가 어딘가 고장이 난 느낌. 어느정도였냐면 영화제에서 만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회 못 나가면 어떡하지?’
이번 LSD 연습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마음가짐은 사람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에 따라 사람의 목표를 달성시키게 되기도 하고 실패시키게 되기도 한다. 무작정 버틴다가 올바른 마음가짐이 아닌 현실적인 마음가짐을 가져야 앞으로의 더 긴 장거리를 달릴 수 있겠다라는 깨달음과 함께 오른쪽 무릎의 통증을 함께 얻었다. 이제는 대회 전까지 이 통증을 잘 달래어 사라지게 해야하는 과제가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