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불나방이의 달리기
’너도 달리기를 하러 나온 거야?‘
반딧불이의 물음에 달리는 엉뚱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엔 술먹었냐고 묻더니 이제는 달리기를 하러 나왔냐니. 달리는 반딧불이가 참 황당한 밤벌레라고 생각했다.
’술 냄새가 나지는 않고.. 가만보니 행색이 장거리를 달린 것 같은데 길을 잃어버렸었구나?‘
’나는 그냥 거기 있었어.‘
’왜?‘
’몰라.‘
’그래. 달리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아니 달린 게 아니라고.‘
’부끄러워 하지마. 누구나 달리다가 길을 잃곤 한단다.‘
황당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반딧불이에게 달리는 답하기가 지쳐 입을 다물었다. 급한 걸음으로 꽤나 걸었더니 갈증이 밀려왔다.
’목마르지? 저기에 급수대가 있어.‘
어느덧 파랗게 물든 숲의 저 멀리에 반딧불이의 말처럼 수돗가가 보였다. 터덜걸음을 걷던 달리는 물을 찾아 빠른 걸음으로 향했다. 로봇이라 물이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방수 로봇인지 갈증이 심했던 것인지 달리는 수돗가에 닿자마자 물을 틀고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 달리고 나면 수분 보충은 충분히 해줘야지. 꽤나 장거리를 뛴 모양이구나?‘
’달린 거 아니라고.‘
’넌 이름이 뭐야?‘
’...달리.‘
’달린 거 맞네.‘
’그래 이름은 달리야. 그런데 달린 건 아니라고.‘
’그래. 그렇다고 쳐.‘
’아휴. 넌 이름이 뭐야?
‘난 불나방이야.’
‘넌 반딧불이인데?’
‘응. 난 반딧불이야. 그런데 이름은 불나방이야.’
‘불나방을 좋아해?’
‘글세. 나는 불나방엔 별로 관심이 없고 달리기를 좋아해.’
‘그치만..’
‘응?’
‘넌 날고 있잖아. 달릴 수 없는 거 아냐?’
‘아니야 나는 달리고 있어.’
‘뭐라는 거야?’
‘땅바닥에 다리를 튕기는 것만 달리는 게 아니야. 땅 위에서 날개를 튕기는 것도 달리기라구. 이건 물속에서 지느러미를 튕기는 것도 마찬가지야. 뭐든 자기가 달릴 수 있는 곳에서 달리면 달리기지.’
‘넌 참 엉뚱하구나.’
‘긍정적이라고 해줘. 달리기를 하면 너처럼 무례한 로봇을 만나도 화가 나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게 된단다. 마침 너 이름도 마음이 들고 말야.’
‘무례했다면 미안해.’
‘급수도 했으니 가볍게 5km만 뛰어볼까?’
‘난 지쳤어.’
불나방이는 천천히 어딘가로 뛰기 시작했다. 달리는 지쳐서 못 뛸 것 같았지만 왠지 불나방이를 따라가고 싶었다. 왠지 불나방이를 놓치고 싶지 않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