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특별해진 육아

평범한 일상이 특별해지는 방법

by 김유진


거실에 비친 햇살이 젖을 먹다 품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감싸던 날, 행복했다. 나에게 날아든 행복을 어떻게든 남겨 두고 싶은 마음 한편엔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두고 엄마처럼 일찍 죽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행복과 두려움의 느낌을 적었다. 순간의 느낌을 꾸준히 기록하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아이가 자라는 속도로 서서히 걷혔다.


조리원에선 몇 시간마다 수유를 몇 분씩 하는지, 실험정신을 발동하여 기록했다. 이유기에는 공들여 만든 이유식을 날름 받아먹으면 기분이 날아갈 듯하고, 숟가락을 혀로 밀어내면 거절당한 것처럼 기분이 나빠서 분노가 치솟는다고 일기에 썼다. 변기에 앉아 처음으로 응가 한 날 아이가 최초의 예술 작품을 창조했다며 사진으로 찍어 남편에게 전송하고 일기장에 남겼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아이 때문에 약속 시각에 늦었다며 다그친 날은 시간은 칼같이 지켜야 하는 나의 융통성 없음을 반성했다.


육아기엔 전쟁터처럼 바쁜 날들을 보내지만 헛헛함이 몰려올 때도 많다. 하지만 기록하며 관찰하니 아이와 함께 한 날은 지루한 틈이 없다. 일기에 넣을 사진을 찍고 그 날 있었던 일을 기록하니 저절로 추억이 쌓인다. 평범한 일상이 특별해졌다.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니 일상과 육아가 다채롭고 훨씬 즐겁다. 오늘은 어떤 추억을 남길까 자동으로 궁리한다. 하룻밤 자고 나면 훌쩍 자라는 아이 모습을 남기는 일은 덤이다. 기록으로 남긴 하루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역사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에서 구본형은 이렇게 말했다.


"기록된 하루는 조금씩 다르지만 기록되지 않은 하루는 모두 같아 구별되지 않는다. 복제되어 반복되는 하루밖에 갖지 못하는 사람은 신화 속 인물 시시포스와 같다. 기록하라. 날마다 그 독특한 맛을 찾아 적어두어라. 그것이 개인의 역사다"



백일 간 매일 쓰면 근사한 책 한 권으로 출판해주는 곳에서 무료로 출판한 일기가 꽤 된다. “엄마, 똥꼬에 마늘이 낀 것 같아요” “새들은 왜 신발을 안 신고 다녀요?” 아이는 모두 시인이라더니 입에서 매일 뚝뚝 떨어지는 보석 같은 말을 주워 담았다. 물론 너무 많아서 다 담지 못했지만 한 권의 책으로 묶고 사진을 곁들인 일기장은 훌륭했다. 성찰하며 쓴 글은 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어린 시절은 근사한 일기장으로 남겨졌다.


엄마의 자격과 그날의 반성을 꼼꼼하게 적었다. 사람이 변하기는 쉽지 않지만, 아이와 함께 지내며 관계를 통해 나의 모난 부분이 잘 보였다. 속살을 보이는 관계에서 쉽게 화내는 원인과 힘든 이유가 무엇인지 인식했다. 인식한 만큼 변하는 건 아니지만 반복적으로 인식하면 변하지 않기도 힘들다. 배우고 성찰한 만큼 서서히 변하는 나도 만났다. 일기장은 먼 훗날 아이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나를 성장시킨 흔적이다. 나는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 더 열심히 잘한다. 육아처럼 중요하지만 멀리 보고 가야 하는 일은 자신의 특성을 잘 파악해서 신발 끈을 단단히 묶으면서 쉬엄쉬엄 가야 한다. 쓰기는 그런 역할을 해주었다. 일상 기록하기는 삶에 활력이 되고 몰입하게 했다. 글쓰기는 육아기의 긴 터널을 무사히 지나게 해 주었다. 고단한 하루가 기록으로 특별해지고 덩달아 육아는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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