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끼니는 스스로
도쿄에 온 이후로, 아이가 유치원에 가는 날은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도시락을 쌌다. 둘째까지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는 도시락 두 개, 간식 통 두 개를 싸는 것은 나의 매일 아침 일과가 되었다.
내가 도시락을 싸는 일상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원인이 된다.
1. 퍼스널라이즈 된 벤토(도시락)의 선호도
2. 워낙에 전통적으로 자기 먹을 건 스스로 준비해서 다니는 관습
3. 사립, 좋은 학교일수록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 일본의 문화
4. 그에 딱히 반감이 없는 인터내셔널 스쿨들
사실 나의 첫째 아이는 심한 음식 알러지가 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인터내셔널 스쿨들은 nut free (견과류 금지)가 교칙이고 케이터링 업체도 그를 준수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한창 자라나는 유아기의 아이들에게 케이터링 업체에서 제공하는 음식의 수준은 그냥 그렇다. 처음엔 급식을 신청할까도 했지만 반에서 몇 명 빼고 거의 신청하지 않는 분위기어서 어쩌다 보니 몇 년째 도시락을 계속 싸고 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국가에 있는 인터내셔널 스쿨은 아무리 국제학교라 해도 물리적으로 속해있는 그 지역의 문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도쿄의 인터내셔널 스쿨들로 말하자면, 스쿨버스가 없는 학교들이 많은 점 (있는 경우에는 스쿨버스비가 엄청 비쌈), 학비에 별도로 입회비를 받는 점 (학생 한 명당 입학할 때 한국 돈으로 천만 원 정도 내야 한다 - 하루 다니고 옮기더라도 환불이란 없다), 그리고 급식이 있더라도 도시락을 싸오는 아이들이 많은 점.... 다른 여러 가지 일본 문화 중에서 특히 이 세 개의 특징이 학교의 종류를 막론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일본 문화를 핑계로 학교들은 참 운영하기 쉬울 것 같다.
좋은 에스컬레이터식 일본 사립 소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를 둔 엄마들은 앞으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계속 도시락을 싸야 한다고 한다. 유명하고 좋고 비싼 사립일수록, 그 아이 하나를 위해 도시락을 비롯한 모든 뒤치다꺼리를 전담하고 있는 보호자 (당연히 일본에서는 그건 아빠나 도우미가 아닌 엄마)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일본에서의 도시락은 도시락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 같다.
반대로 호이쿠엔(우리나라 어린이집처럼 주로 워킹맘이 보육을 위해 보내는 데이케어)이나 공립학교들은 급식이 제공된다. 그래서 급식=평범, 공립 vs 도시락 = 케어를 받는 사립 학생이라는 공식이 은연중에 있는 것 같다.
사립이나 인터내셔널 중에서 급식제도를 도입한 학교들이 있는데, 이들도 이런 일본의 도시락 사랑 문화 때문에 100% 급식제가 아니다. 주로 도시락 또는 급식 중에 선택을 하거나 (의외로 도시락을 선택하는 부모들이 더 많다) “주 2회/3회 급식, 나머지는 도시락” 이런 식으로 운영한다. 이처럼 도시락은 일본 학부모가 포기하기 어려운 전통 중 하나이다. 급식은 마치 여건이 안되거나 정말 정말 시간을 짬 내기 어려운 경우 선택하는 백업 옵션 정도 된다.
또한 일본 문화에는 워낙에 예전부터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것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습관에 배어있는데, 이것은 일본인의 “자기 일은 스스로” 정신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서로 폐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 퍼스널라이즈 된 한 끼를 해결하는 것. 얼마나 일본인스러운가?
다만 학생에게는 본인의 노력보다는 얼마나 부모가 정성을 기울여 케어하느냐가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게 매일 싸는 도시락이다. 나도 몇 년간 은연중에 이런 인식에 익숙해졌는지, 언젠가 나의 아이들이 급식을 먹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가뿐한 느낌보다 서운한 감정이 들 거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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