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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현석 Sep 23. 2018

내 안의 내진설계

자타공인(自他共認)


    나는 딱히 잘하는 것이 없다. 자기소개서 특기란에 매번 무얼 써야 할지 고심하다 좋아하는 것을 쓰곤 했다. 남들과 비교해서 특출 난 재능이나 능력이 있어 자신감이 넘치는 분야도 거의 없다.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고 유창하게 할 줄 아는 외국어도 없다. 외모도 내세울 만한 것이 못되고 패션 감각마저 떨어진다. 자기비하가 아니라 그게 나의 현실이다. 이런 보잘것없는 나에게도 다행스러운 게 있다면 나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과 나의 다름을 알고 인정함으로써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남보다 가진 것이 없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마음 상하지 않는다. 물론 나보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긴 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친다. 질투심이나 시기심을 가지진 않는다. 누가 악기를 잘 다루거나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을 보면 부럽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성취한 것이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나도 외국어를 잘하고 싶다면 그처럼 노력하면 된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일 정도로 필요를 느끼지 않으며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 즉 자기 객관화하는 것이 요즘 한창 대두되는 자존감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선 글에서 자신감에 관해 썼다. 자존감과 자신감은 비슷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자신감은 남들보다 더 뛰어난 지식이나 능력이 있다고 믿는 감정이다.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비교 대상보다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우위에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존감은 어떨까? 자존감은 비교 대상도, 기준도 없다. 철저하게 내가 나에게 내리는 절대평가다.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자기가 가치 있다고 믿고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이다. 존중에 대한 이유는 스스로 만들면 된다. 단순히 ‘이 세상에는 가치 없고 존중할 필요도 없는 사람은 없다. 사회적인 능력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존중해야 할 가치가 있는 존재다.’ 이런 기본적 인권의 논리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남에게 존중받고 싶으면 나부터 남을 존중해야 하지만 가장 먼저 자기 스스로를 존중해야 한다. 자존감이 높으면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남의 비난에도 상처받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남이 뭐라든 나에 대해선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이해할 만한 비판이라면 인정할 것이고, 이유 없는 모독이라면 무시할 것이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으면 애인에게 집착하거나 술에 의존하거나 게임에 중독되는 등 다른 사람, 또는 다른 어떤 것에 의지하게 된다. 심하면 자기비하와 자학까지도 하게 된다. 자존감은 모든 감정의 기반이자 타인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게 하는 기둥이며, 나를 나답게 살게 하는 나침반인 동시에 자아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호막인 셈이다.


    자존감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그동안 읽은 서적과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 여기저기서 귀동냥으로 얻은 정보, 그리고 스스로 느끼고 깨달은 경험을 섞어 풀어보겠다. 이것은 전문가가 아닌 나의 주관적인 소견이기 때문에 100%로 신뢰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먼저 자존감을 얻으려면 우선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내가 나를 왜 몰라? 하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확신하지만 실상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대충 혹은 일부분만 아는 경우가 많다. 인생은 평생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어딘가로 가려면 먼저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하듯 내가 현재보다 발전하고 나아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유년기, 청소년기에 확립되어야 할 자아정체성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다면 나를 알아가는 단계는 꼭 필요하다.


    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제는 남의 시선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해야 할 때다. 그동안 밖으로만 나돌던 관심의 포커스를 안으로 옮겨 나 자신을 살펴보자.


    1.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자

    드라마나 영화, 소설 속의 장면에 나를 대입해보는 것이다. 나였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어떤 기분일까? 스스로 묻고 답해보자. 자문자답 형식이지만 말로 하면 미친 사람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 이왕이면 노트를 펴놓고 적는 것이 좋겠다. 실제로 경험과 상황에 대한 나의 반응과 감정을 알기에는 일기만한 게 없다. 꾸밈이나 가감없이 솔직하게 적으면 된다.


    2. 한때 다이어리 포맷으로 유행했던 100문 100답과 같은 질의응답을 작성해보자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귀찮아하는 것, 무서워하는 것 등 감정에 대한 답을 내리고 이유를 찾는 것이다. 대개의 이유는 과거의 경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의 아버지는 해산물과 양갱을 좋아하신다. 그 이유를 여쭤보면 어릴 적 넉넉하지 못한 환경으로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였기 때문에 한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또 나는 벌을 무서워하는데 그 이유는 초등학교 때 조회 시간에 벌을 가지고 장난치다가 제대로 쏘여서 며칠 동안 고생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3. 옛 기억을 적으며 내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생각해 보자

    제일 행복했던 기억, 너무 화가 났던 기억, 생각도 하기 싫은 기억, 정말 창피했던 기억 등 뇌리에 박힌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그 기억에 관한 나의 감정이 좋다 나쁘다 평가를 내릴 필요는 없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기만 하면 된다. 대학교 아동심리학 수업 시간에 이 방법을 배웠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 나의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내면의 아이란 유년기에 불행한 기억을 안고 있는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다. 잊고 싶었던, 아니 잊었다고 믿고 있었던 유년기의 괴로운 기억과 마주하고 그때의 상처와 감정을 보듬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으며 소심했던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4. 아무 때나 생각나는 것을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자

    일기처럼 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쓰는 것도 좋겠지만 아무 때나 생각나는 대로 적는 것을 더 권하고 싶다. 감정은 예고 없이 불현듯이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침 일찍 출근하는데 은은하게 비추는 햇살과 지저귀는 새소리에 기분이 좋아졌으면 그걸 쓰면 된다. 자기 전에 이불을 덮는데 깨끗하게 빨린 이불 냄새가 좋았으면 잠깐 일어나 그 기분을 적는다. 반대로 냄새나는 노숙자가 다가와서 기분이 나빴다가 그 감정에 약간 죄책감이 들었으면 감정 그대로를 옮긴다. 남에게 보이기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감정도 다 자신의 감정이니 감추지 말고 솔직하게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일과시간에 따라 적으면 생활 방식과 시간별, 위치별 감정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5. 나를 잘 파악하고 있을 만한 주변인에게 물어보자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를 오랫동안 봐온 가족이나 친구도 좋고, 안 지 얼마 안 된 동료나 선, 후배에게 묻는 것도 좋다. 모르는 사람에 대해 취재하듯 최대한 직설적이며 솔직한 답변을 들어야 한다. 단, 좋지 않은 평가가 나와도 화내거나 삐치지 않기.

    이런 식으로 나에 대한 직·간접적, 주·객관적 데이터가 쌓이면 읽어보고 나와 얼마나 맞는지 일체화시켜본다. 남에게 보이고 싶은 내가 아니라 실제의 나를 솔직하게 대면하는 것이다. 축적된 데이터를 살펴보면 아아, 내가 그랬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스스로 놀라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아니라고 부정하기보다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편이 좋다. 한번 부정하기 시작하면 객관화 작업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새롭게 알게 된 나를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부끄러운 점도 있을 수 있고 자랑스러운 점도 있을 수 있다. 나의 단점도 나고 장점도 나다. 단점은 고치면 되고 장점은 키우면 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딱 이 꼴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객관화한 나를 볼 때 자기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어떤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다양한 감정이 생길 것이다.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어떤 면에서는 기특하고 이 부분은 창피하고 저 부분은 애틋하고 이건 참 못났고 저건 참 부럽고 하는 감정들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애가 생긴다. 너무 과하면 나르시시즘으로 변형될 수 있으나 우리는 자기의 좋은 면뿐만 아니라 나쁜 면도 직시했으니 스스로에게 반하진 않을 것이라 사료된다.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면 좋지않은 행동은 삼가게 되고 스스로를 아낄 수 있다. 어떤 실수를 해도 자책하지 않고 스스로 격려하고 위로해줄 수 있으며 작은 성과에도 칭찬하고 보상을 해주게 된다. 그렇게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로서 자기를 존중할 수 있다. 이 프로세스로 나는 자존감을 회복했으나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경험자로서 일종의 리뷰를 하는 셈이다.


    이렇게 회복된 자존감 덕분에 난 내세울 거 하나 없어도 남 눈치 안보고 당당하게 살고 있다. 나는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럽긴 하되 주눅 들지 않는다. 못한다고 못난 사람 아니고 잘한다고 잘난 사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잘하면 자신감이 생기겠지만 그 자신감이 자존감까지 채워주진 않는다. 못하면 자신감이 떨어지겠지만 그 떨어진 자신감이 자존감까지 상처 주지는 못한다. 잘하는지 못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라는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가 제일 중요한 것이다. 자신감 없는 주인공은 있어도 주인공 없는 영화는 없듯이.

 





자타공인 - 존감의 시작은 인을 조연, 자신을 주인으로 정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인정하면 더 이상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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