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의 무소불위한 권력을 잘 보여준다. 1961년 5월 15일에 일어난 군사쿠데타는 사회안정과 경제성장의 명분 아래 여러 지역과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하는 국민적 염원은 군사정권을 지탱했고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인권 탄압은 정당화될 수 있었다. 과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든 간에 경제성장의 촉발제가 되었던 박정희 정권의 역사적 비중은 무시할 수 없다.
1960년 이래 대한민국은 소위 말하는 '산업화'를 이뤄냈다. 산업화 또는 공업화란 증기, 전기, 열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활용해 더 큰 경제적 가치가 있는 2차 제품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런 한국 경제구조가 흔들리지 않고 운영되기 위해서는 해외시장 개척과 기술 R&D 투자도 수반되어야 하지만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필수적이었다. 또한 한국전력과 발전공기업을 중심으로 에너지를 저렴하게 공급되는 산업 생태계는 상당히 효율적이었다. 수출기업은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전력을 소비하며 생산공정 효율화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정부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비용 효과적인 에너지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에너지의 비용은 왜곡되어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대부분은 무엇인가를 태워서 얻는다. 석탄을 태워 발전소 터빈을 돌리고 휘발유 연소를 통해 자동차를 운행한다. 그리고 모든 연소 과정에서는 이산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 질소 등이 발생한다. 즉, 현대의 삶은 끊임없이 온실가스 배출과 연결되어 있다. 만약 온실가스가 단순히 화학적 부산물이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온실가스는 지구의 온도를 지속적으로 상승시키는 기후변화의 주범이며 누적된 대가는 고스란히 미래세대의 몫이 될 것이다.
이미 1.5도 특별보고서(2018), UNEP 배출 갭 보고서(UENP emission gap report) (2019) 등 여러 국제기관에서는 이미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씨 이상 상승해서는 안 되며 이를 위해서는 매년 온실가스를 7.6% 감축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 이슈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추구해온 지향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1962년부터 1996년까지 총 7차례 진행된 경제성장 5개년 계획은 국민에게 ‘과정’에 대한 설득이 필요했을 뿐이었지 당위성 자체는 모두가 공감하는 풍요로운 삶이었다. 어제보다 더 비싼 물건을 소유하고 성공한 삶을 만들어보자는 메시지 자체를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한국을 비롯한 중국, 미국 등 모든 국가가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경제개발을 지향한 결과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재앙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무분별하게 저렴한 화석연료를 사용한 결과, 우리는 향후 20년, 30년 그리고 100년 뒤에 무책임한 물리적 피해를 후손에게 넘겨줄 수 있다는 뜻이다.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당위성이 현재 내 일자리를 책임지는 경제구조에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가장 먼저 지금의 편리하고 저렴한 전기가격은 미래와 절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비싼 재생에너지가 왜 이토록 글로벌 사회에서 강조되는지, 한국은 2030년 온실가스 로드맵과 2050 저탄소사회 비전포럼을 통해 어떤 정책 방향성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토론해야 한다.
경제성장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닌 것처럼 온실가스 감축 또한 당위성과 과정에 대해 국민이 이해할 때, 그리고 오늘 나의 탄소발자국에 관심을 가질 때, 집 앞에 태양광 에너지를 설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잘 살아보세’라는 과거의 무책임한 구호에서 ‘잘 줄여보세’라는 후손들에게 떳떳한 삶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