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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둘 중 하나다. 몸을 쓰던지, 머리를 쓰던지

둘 다 경험한 사람으로서

by 루나리

나의 첫 직장은 아픈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수많은 환자들이 침대와 침대를 오갔다. 그 사이에 내 손목과 허리는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병실로 들어온 나를 보며 보호자는 소리쳤다.


“저렇게 키 작은 X이 어떻게 우리 할아버지를 들어?

어휴, 저런 것 말고 제대로 된 X오라고 해 “


깡마른 할아버지의 다리가 이불 밖으로 나와 있었다. 허옇고 빼빼 마른 다리 사이로는 대변 냄새가 났다. 내가 다시 돌아간다 한들 남은 건 타박뿐이었기에, 어떻게든 내 선에서 해결해야 했다. 울컥하는 마음을 감추고 할아버지를 들었다.


“하나, 둘, 셋”

‘뚝…’


내 허리에서 뚝 소리가 났다.

28살의 내 허리는 그렇게 고장이 났다.




고장 난 허리를 가지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했다.

서서 일하는 직업, 무거운 것을 들어야 하는 직업은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학교를 갔다.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건 불안했다. 평생을 공부했고 앞으로 남은 길도 공부뿐이라 생각했다. 나는 남들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은 취직이었다. 학위를 따면 그래도 나아질 거라 생각했기에 학비를 내고 학교를 갔다.


결과는 처참했다. 면접을 하나 둘 거치면서 실력이 들통났다. 서류, 인성, 인적성을 뚫고 겨우 면접장까지 갔지만 질문 몇 개에 내 모든 것은 바닥에 내리 꽂혔다. 최종에서 떨어질 때는 멘털 회복이 잘 안 됐다. 방법은 없었다. 꾸준히 하는 것 밖에.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내 책상 하나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결국 취직을 하긴 했다. 내가 원하는 직무, 내가 원하는 장소. 취직을 했으니 이제 이 길만 걸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크나큰 오산이었다.


취직을 하고 보니 어느새 30대 중반이 되어 있었다. 딩크로 살 자신은 없었기에 부랴부랴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았다. 낳고 보니 너무 예뻤다. 육아는 적성에 썩 잘 맞아 어쩌다 보니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그렇게 나는 휴직을 오래 한, 어미가 되어 있었다.




다시 돌아간 회사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사람들이 바뀌었고, 경영방침이 바뀌었고, 업무도 바뀌었다. 월급쟁이는 별 수 없다. 싫으면 중이 나가는 것이다. 나갈 자신은 없으니 어떻게든 적응해야 했다.


말하는 것부터 생각하는 것까지 모조리 바꿔야 했다. 모든 것에는 근거가 필요했다. 내 생각을 뒷받침해야 하는 근거를 찾는 게 일상이 됐다. 끊임없는 질문은 나를 당황케 했다. 이건 왜? 왜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 근거가 뭐야? 네 생각 말고 생각의 근거.


그놈의 근거

그놈의 근거

그놈의 근거


글쟁이와, 말쟁이가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배반이었다. 누구보다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에는 더 이상 대답할 수가 없었다. 사고의 확장이 안 되었던 탓이다. 답을 찾아가는 것 만으로는 윗분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다음 단계, 그다음 단계를 찾아서 제시해야 했고 그 모든 것에는 나의 생각이 아닌 근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근거는 모두 출처가 확인되는 객관적인 것이어야만 했다.


가장 힘든 건 문서 작성이다. 모든 것을 문서화해야 하는 것. 증거로 남기는 일. 지방을 쫙 뺀, 뼈다귀만 남은 글을 쓰는 게 가장 어렵다. 양치기도 안된다. 간단하게 쓴 보고서에 모든 걸 담는 게 핵심 역량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나를 숨기고, 근거를 찾고, 증거를 남기며 하루를 보낸다. 나는 없다. 근거와 문서만이 남을 뿐.


나의 유튜브 목록에는 ‘구조화 생각법’, ‘보고서 잘 쓰는 법’, ‘기획서 잘 쓰는 법’ 온갖 회사와 관련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유식 만드는 법’, ‘아이와 갈만한 여행지’ 이런 내용은 더 이상 없다.


입사가 끝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돈을 번다는 게 이토록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복직 후 다시 깨달았다. 고통을 수반하는 돈 버는 작업. 하지만 숭고하고 중요한 것.


아이들에게 쓸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다. 회사에서 모든 것을 쏟고 오기 때문이다.

‘회사 일을 잘하려 하지 마세요’, ’모든 것을 쏟지 마세요 ‘라는 것은 인터넷에 떠도는 말일뿐이다. 나는 당장 근거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꼬리를 잇는 질문에 답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내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슬픈 것은, 고통에 비해 일의 진행 속도는 매우 더디다는 거다. 나는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시사점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저 깜깜한 곳에서 걸어갈 뿐이다. 멈출 수는 없으니.




서울역 워킹맘.


오랫동안 꿈꿔왔던 이 타이틀. 꿈은 크지 않았다. 무거운 것을 들지 않고, 서서 일하는 직업이 아니면 됐다. 20대에 망가진 허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달렸고 도달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또 다른 시작이었을 뿐이다.

남산에 오르며, 저기 저 빌딩 숲 속 어딘가에 내 자리는 있겠지.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던 때가 있었다. 어디라도 입사만 시켜준다면 다 할 거라고, 정말 열심히 할 거라고 스스로 되뇌고 또 되뇌었다. 하지만 결과는 근거를 찾아 헤매는 직장인 1인.


노동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머리가 아프던지, 몸이 아프던지 둘 중 하나다. 실제 겪지 않으면 알 수 없기에 서로의 환경에 대해 부러워하고 궁금해한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입사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주말인 오늘, 나는 오늘도 찾아 헤맸다. 문서를 읽었고, 단어를 찾았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다음 주의 나도 저번주와 별반 다를 바 없을 거라는 걸. 이런 능력은 단기간에 올릴 수 없기에. 하지만 방법이 없다. 하던 대로 묵묵히 하는 수밖에.


서울역 워킹맘은 오늘도 근거를 찾는다. 먹먹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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