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만 아이는 내가 아끼는 유리잔 하나 도자기 그릇 하나를 그러니까 두 개를 해먹었다. 영영 그들과 헤어지게 만들었다. 예고도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없이. 유리잔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집에 있던 것을 내가 가져온 것이라 그 오랜 시간의 더께마저 날아가버렸다. 도자기 그릇은 고양이 모양으로 동그란 접시 한쪽이 뾰족, 고양이 귀로 나와있는 것에다 듬성한 붓터치로 고양이가 그러져 있었다. 내가 혼자 살 오피스텔을 마련하고 집들이를 했을 때 아는 동생들이 사준 것이었는데 엄마아빠 집에서는 그 내력이나 숨겨진 이야기를 모르고 그냥 날 때부터 써왔던 그릇들이 대부분이었다면 내 살림에서는 많은 것이 나와 함께 시작한 것들이니 각별할 수밖에 없다. 그 아이들의 다정한 마음과 그 그릇을 받았을 때 내 마음 같은 것이 함께 날아갔다.
유리잔과 도자기 그릇이 깨지기 직전, 저러다 깨질 텐데 하며 그들의 운명을 예감했던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둘 다 아주 낮은 높이에서 아이가 놓쳤는데 바닥과 손발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평소에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그냥 떨어지고 말 수도 있었을 건데 하필 그 두 번 모두 날카로운 타이밍을 피하지 못했다.
깨지자마자 놀란 마음 화나는 마음 그러게 그러지 말랬지 하는 마음이 섞여 얏! 이놈 자식아! 큰 소리부터 나갔다. 아이들은 고막을 날카롭게 자극하는 소리, 뭔가 깨지는 소리나 테이프를 뜯는 소리 같은 걸 무서워한다고 한다. 당연히 아이는 소리와 물건이 깨진 그 광경에 자체에 놀랬고 내 소리와 표정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에 마음이 더해졌는지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치우겠다고 달라드는 걸 그사이 정신이 버쩍 들어서 이깟 컵이 접시가 뭐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단 아이를 사건 현장에서 멀리 보내려고 안아 들며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렸다. 미안해, 엄마가 잠깐 돌았나 봐. 컵보다 우리 아들이 훨씬 소중하다굿! 헿헤헤헤. 일관성 없는 주 양육자의 태도가 아주 나쁜 태도 중 하나라고 들었는데 그런 면에서 난 정말 나쁜 양육자일지 모르겠다.
아이를 멀리 데려다 놓고 얼른 청소기로 현장 바닥을 밀고 걸레질을 하고 모아두었던 뽁뽁이를 꺼내 파편을 수습했다. 수습하면서 컵과 도자기 그릇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주 좋아하지만 깨져버린 것을 계속 들고 살 수는 없다. 쓸모나 가치를 떠나 존재 자체가 내게 너무 위험하니까. 소유가 의미를 갖는 것은 깨지는 순간 끝났다. 내게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게 슬플 뿐. 눈에서 멀어질 테니 이제 기억에서도 멀어지겠지. 언젠가 비슷한 모양의 컵이나 그릇을 보거나 아이와 도자기 그릇과 유리컵을 떠올릴 상황에 함께 있다면 한 번쯤 웃으며 이야기하는 게 이제 떠난 그들의 의미가 되어버렸다.
소중한 것과 함께 있는 것, 좋아하는 마음이 이어지는 것과 좋아하는 정도는 늘 함께할 수 없어서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