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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수집가 May 23. 2024

익숙하지만 더 자주 하리라 결심한 말

제주살이 초반, 운전을 하지 못해 버스를 타고 다녔다. 할머니들은 버스에 오르기 전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했고,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면 버스에 올랐다. 제주만의 버스 문화인가 싶어 처음에는 딸에게 목적지를 말하게 했는데, 목적지를 말하는 사람은 할머니들 뿐이었다. 그때부터 우리 모녀는 목적지를 말하는 대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고개라도 끄덕이면 다행. 인사를 받아주는 기사는 거의 없었지만 나 혼자가 아닌 딸이 함께였기에 인사를 멈추지는 않았다. 왜 인사에 답이 없는지를 궁금해하는 딸에게는 분명 기사가 들었을 텐데 안전에 신경 쓰느라 미처 답을 하지 못하는 거라 설명했다. 답이 없어도 우리의 인사는 분명 지친 기사에게 힘을 건넬 거라고도 말했다.      


서울로 와서는 주로 지하철을 타다 보니 인사가 필요치 않았는데, 며칠 전 오랜만에 버스를 탔다. 의식 없이 습관적으로 인사를 했다. 사실 인사를 하는지도 몰랐다. 내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내가 인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안”은 힘차게 튀어나왔는데 “녕하세요.”가 이어지며 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고개도 점점 내려갔다. 인사의 마침과 동시에 버스 카드가 찍혔고, 다른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안녕하세요!” 기사의 답인사였다.      


내 인사는 매가리가 없었는데 기사는 내가 빠뜨린 힘까지 채워 인사를 돌려줬다. 고개는 퍼뜩 올라가 기사의 뒤통수에 시선이 닿았다. 핸들 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기사의 단정한 머리카락에서 살랑이는 웃음이 느껴졌다.      


복잡한 버스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서 내 자리를 사수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건만 내 입꼬리는 올라갔다. 가다 서다 밀리는 도로 위도 짜증 대신 괜찮다는 마음으로 채워졌다. 기사님이 돌려준 ‘안녕’이 나를 여유롭게 했다. 별것 아닌 ‘안녕하세요’의 힘이었다.   

   

‘안녕하세요’는 너무 익숙한 인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인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말의 힘은 생각보다 컸다. 상대가 아무 탈 없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겼기에 좋은 에너지를 담고 상대에게 닿았다. 상대가 바랐으니 바람을 따르고자 나도 편안을 향하게 됐다. 1.2배속에서 2배속까지 혹은 더 바쁘게 움직이는 서울에서 0.9, 0.8의 감속까지는 아니더라도 제 속도대로 살게 하는 힘이 어쩌면 오고 가는 ‘안녕하세요’에 있을지도 몰랐다. 편안을 바라는 속도가 배속일 수는 없기에.      


다음부터는 버스를 탈 때 무시되더라도 인사를 할 거다. 의식 없이 습관적인 인사가 아니라 선명하게 모두의 탈 없는 편안함을 담아서. 설령 내 마음이 기사에게 닿지 않더라도 선한 의도는 내게 남아 여유를 키워주리라 믿는다. 꼭 버스 탈 때만이 아니라 경비원, 청소원, 점원 등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게 도움을 주는 분들에게 인사를 건넬 거다. 서로의 안녕을 묻는 조금은 더 다정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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