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유수집가 May 09. 2024

최첨단 서울을 느리게 걷게 하는 우연

걷기를 좋아한다. 작년에 출간한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에 걷기가 좋은 이유를 쓰기도 했다.


머리카락은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고 정수리는 햇빛의 열기를 가늠하고 피부는 공기의 물기를 가늠한다. 앞뒤 좌우 보고 싶은 곳을 바라보며, 팔은 바람을 가르고, 발은 땅의 굴곡을 느끼고, 다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지금 나는 걷고 있다. 내 몸의 모든 감각이 열리는 생동감을 느끼며, 내가 움직인 만큼 나아가는 정직함을 느낀다. 편한 신발 한 켤레만 있으면 되는 소박함도 좋아 나는 걷기가 좋다.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 p.171


여행이 시작이었다. 스물한 살, 한 달 동안 유럽을 여행하며 알아차린 걷기의 즐거움은 나를 용감하게 했다. 목적지 없이 지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무작정 걷기를 즐겼는데, 동행을 고려하기보다 내 마음을 온전하게 따르고자 혼자 떠나게 됐다.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은 혼자 다니는 것을 걱정했지만 두 발과 시선이 누리는 자유를 포기할 수 없었다. 마음이 닿는 대로 걸었고, 마음을 부르는 곳에서는 속도를 늦췄다. 나 혼자만 챙기면 되는 자유가 가뿐했다.


여행은 짧고 일상은 길기에 일상에 걷기를 들였다. 충정로에서 근무하던 시절, 집은 신촌이었다. 사무실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50분.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는 날씨만 아니라면 운동화를 신고 걸어서 퇴근했다. 이때부터 사무실 책상 아래에는 네 켤레의 신발이 놓였다. 자주 신는 단화, 프레젠테이션 등 남들 앞에 설 때 신는 하이힐, 출퇴근용 운동화,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신는 슬리퍼였다.


운동을 위한 걷기가 아닌, 걷기 그 자체가 좋아서 걸었기에 속도는 느렸다. 보폭은 넓게 팔은 거침없이 흔드는 파워 워킹 대신 주변을 살피며 길에 이야기를 더하는 슬로우 워킹이었다. 나와 다른 형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살피며 여러 이야기가 솟았다. 회사에 다니며 글을 놓지 않았던 건 쓰고 싶은 글감이 넘쳐서이기도 했는데 이 글감은 어쩌면 길 위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니 슬로우 워킹은 사치였다. 아이는 늘 나를 기다리고 회사는 늘 일이 많으니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그럼에도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으로 가지고 갈 수는 없어서 퇴근길 한 정거장 전에 내려걸었다. 집에서 기다릴 아이가 마음에 걸려 주변은 살펴지지 않았다. 앞을 보고 성큼성큼 걸었다. 파워 워킹보다 더 급하고 거친 워킹이었다. 내가 사랑하던 슬로우 워킹은 아니었지만 평소 무심했던 발바닥에 신경을 집중하며 걸으니 그건 그대로 또 좋았다. 좋아하는 걷기를 외면하지 않으며 산다는 것 또한 일상에 활력이 됐다.


퇴사하고 제주에 오니 슬로우 워킹 천국이었다. 아이를 등교시킨 뒤 산책은 루틴이 됐다. 나와 다른 형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를 여유로 이끄는 자연이 보였다. 목적지 없이 지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걷는 무작정 걷기의 진수가 펼쳐졌다. 누군가는 매일 비슷한 풍경을 보며 걷는데 지겹지 않냐고 물었지만 그건 걸어보지 않아서 그렇다. 자연의 느린 속도를 알아차리며 걷는 산책은 매일 비슷한 코스여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만큼 더 피어난 꽃, 이만큼 더 짙어진 잎사귀, 이 속도의 바람에는 이렇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며 자연과 가까워진 나를 확인하는 건 뿌듯했다.


일중독이라고 해도 반박할 말이 없었던 내가 지금은 산책에 중독됐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자연스레 산책한다. 산책 코스는 계절마다 다른데 처서가 막 지난 요즘은 진분홍 꽃 잔뜩 핀 배롱나무 사이를 걷는다. 최단 거리, 물 흐르듯 매끄럽게 연결되는 동선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왔던 길을 거슬러 돌아 걷는 일도 잦다. 시간 낭비 없이 착착 전개되는 일상보다 내 눈에 담는 아름다움과 내 마음의 두근거림을 따른다. 덕지덕지 달라붙은 피곤을 떼어 놓기 위한 커피도 필요치 않다. 각성제는 이제 커피가 아닌 자연이다. 피부를 간질이는 바람, 코끝을 건드리는 향기, 귀를 흔드는 새소리, 발바닥을 자극하는 돌길과 흙길, 눈에 담아도 담아도 또 담고 싶은 나무, 꽃, 하늘, 구름. 저절로 걷는 속도는 느려지고 몸과 마음은 활짝 열린다.
-「여유가 두려운 당신에게」, p.10


4년 동안 제주에서 슬로우 워킹이 몸에 밴 채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서도 슬로우 워킹을 즐기려고 하지만 쉽지 않았다. 4년 동안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자연이었기에 높은 빌딩 사이를 걷는 것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분명 제주에 가기 전에는 도심을 곧잘 걸었으면서도 그랬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를 탐내는 욕심처럼 산책도 자연이라는 최상위 환경을 누리고 나니 그 아랫 단계는 눈에 차지 않는 것일까.


신간을 보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다. 버스를 탔고 창가에 앉았다. 저상 버스의 넓은 창은 닫혔어도 창밖과 나를 갈라놓지 않았다. 건물, 건물 또 건물을 지나가다 갑자기 다른 형태의 건물이 덮쳤다. 창경궁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위치였지만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붙들린 시선은 감탄을 담고 크기를 키웠다. 버스의 전진에 따라 멀어지는 창경궁을 고개를 돌려가며 끝까지 눈에 담았다. 최첨단 도시에서 순식간에 과거를 만나게 되는 서울. 이건 분명 서울만의 매력이다. 


교보문고에서 책 사이를 누비다 카페로 가는 길, 청계천을 만났다.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조선시대를 복원하려 애썼으니 이 역시 과거와의 만남이 아닐까. 조선시대 다리가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도 하고. 자연을 볼 수 없다고 슬로우 워킹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몇 백 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우연성을 기대하며 서울을  걸어야겠다. 그렇게 걷다 보면 자연을 걸을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겠지.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대신 급격한 역사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감각이 발달할지도 모를 일이다. 석가탄신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 주에는 조계사 인근을 느리게 걸어야겠다. 


이전 16화 음표 가득한 서울에서 만난 쉼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