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며 우리 가족은 캠핑을 떠났다. 4년의 제주살이 후 서울로 돌아와 가족이 함께 떠난 캠핑은 처음이었다. 제주에서는 캠핑장 예약이 쉽고 서울에서는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중학생이 된 딸의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였다.
서울에 와서 아이는 늦었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 공부도 음악도 늦었으니 빨리 따라가야 한다고 다들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엄마인 내가 불안해서 아이를 내버려 두지 못했다. 너는 그동안 제주에서 많이 놀았으니 지금 더 노력해야 한다며 아이를 채근했다.
다시 시작된 서울 생활이 6개월이 지난 지금. 처음의 불안은 많이 옅어졌다. 물론 지금도 자주 불안하지만 불안에 휩쓸리기보다 하지 않아도 될 불안임을 인지한다. 아이는 제주에서 많이 놀다 온 게 아니고 자연 감수성을 키우며 행복 민감도를 높여 왔다. 선생님은 항상 행복하기만 해서 어쩌냐며 걱정하시지만, 그게 오기 없음과 치열함 없음의 다른 표현임도 알고 있지만 작은 일에도 행복을 발견하는 힘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아이의 장점으로 여긴다.
하교 시간 교문에서 아이를 기다려 차에 태운 뒤 바로 캠핑장으로 출발했다. 차에 타는 아이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환했다. 조금 더 빨리 오지 못해 미안하다며 단 몇 분 줄어든 캠핑 시간을 아까워했다. 먼저 묻지 않아도 아이는 재잘재잘 학교생활을 이야기했다. 과거에 있었던 일까지 들려줬다. 친구들의 TMI까지 듣게 됐고. 모두 캠핑하러 가는 들뜸 덕분이었다.
공기부터 다른 캠핑장에서 나무로 둘러싼 공간을 내 것처럼 껴안고 자연 속 일부가 되는 경험은 언제 누려도 행복했다. 상쾌한 공기에 자꾸만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가슴을 활짝 펴니 연결된 마음까지 활짝 열렸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어서 남편과도 아이와도 일상에서는 하지 못했던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하루하루 사는데 급급한 이야기가 아닌 멀리 바라보는 이야기, 내가 선 자리를 가늠하는 이야기, 우리의 행복을 살피는 이야기였다. 여기에는 엄마의 불안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도 포함됐다.
“엄마가 자꾸 불안해서 그랬어. 너를 믿으면 되는 일인데.”
“내가 더 믿음직스럽게 행동할게. 우리 서로 믿어주며 잘 지내보자.”
평소에는 잔소리가 되던 말도 자연 곁에서는 유순해졌다. 가는 말이 유순하니 오는 말도 유순했고. 아이가 매일 해야 하는 하루치의 공부와 악기 연습이 캠핑을 망설이게 했는데 오고 나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단한 마음 위에서 할 일을 해야 그 할 일도 더 의미가 있는 법이니까. 이 캠핑은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시간이고.
밤이 깊어지고 고개를 꺾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반짝이는 별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보는 별이었다. 아이도 옆에서 고개를 꺾더니 함께 오래 별을 바라봤다. 별다른 말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분명 아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였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순간이 너무 평화롭다고. 이 예쁜 장면을 잘 담아가야겠다고. 그리고 지금 우리는 너무 행복하다고.
행복이 짙어지니 불안은 옅어졌다. 행복하겠노라며 하루치의 할 일을 매일 미룰 수는 없는 법이지만 작은 행복이라도 꼬박꼬박 챙기려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특히 아이의 행복을 느긋하게 바라봐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기로 별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옆모습을 보며 다짐했다.
요즘 나의 목표는 서울에서 제주처럼 살기다. 여유를 잃지 않는 삶. 특히 아이의 여유도 살피는 삶이다. 서울에서 와서 제일 적응이 안 되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아이 교육 문제다. 다들 제 몫 잘 챙기며 빠르게 달려가는 레이스에서 아이만 뒤처진 것 같고 아이만 야물지 못한 것 같다. 그런 아이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이 내게 주어진 요즘 제일 큰 숙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가 불안에 휩쓸리지 않아야 하는 데 그게 참 어렵다. 이 말을 들으면 이렇게 흔들리고 저 말을 들으면 저렇게 흔들린다. 적절하게 가려듣고 아이에게 맞게 이끌어 명랑한 아이가 계속 명랑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살펴주는 것. 그런 엄마로 살기 위해 오늘도 나는 여유를 우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