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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안녕 May 08. 2020

길에 사는 고양이, 입양 가다

따뜻한 사람이 많아요. 감사합니다.

작년 8월, 단지에 삼색이 고양이가 나타났다.

우리 단지는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곳도 없어서 먹을 거 하나 없을 텐데 어디서 나타난 건지, 뭘 먹고 다니는 건지 보자마자 생각이 많아졌다.

게다가 길냥이의 가장 중요한 소임은 사람을 조심하는 건데, 사람이 옆을 지나가든지 말든지 평온하게 배를 까고 잠을 자고 사람이 부르면 옆에 다가와서 고롱고롱 노래를 불러준다.

어서 오너라


걱정되는 마음에 아랑이 사료와 물을 가끔씩 챙겨주다 보니 어느새 얼굴을 알게 된 건지 아예 1층 공용 현관문 안까지도 따라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혹시나 누가 볼까 싶어서 두리번두리번. 밥 준다는 욕이라도 먹을까 싶어서 애가 알아들을 리도 없는데 입모양으로만 "어서 나가봐"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면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한테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을 텐데 싶어서 정을 안 주려고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비가 오는 날이면 걱정이 돼서 밖을 내다보게 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바람 피할 곳이 있나 싶어서 내다보게 된다. 따뜻한 집에서 캔을 줘도 남기면서 먹는 아랑이랑 반대로 뭘 주든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녀석을 보니 왜 길에 태어나서 이렇게 힘들게 살게 됐나 싶어 짠하기도 하다.



그런데 내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앞에 말한 것보다 더 큰 부분이었다.

밥이 먹고 싶은 건지 데리고 들어가라는 건지 자꾸만 밖에서 큰소리로 부르는 고양이. 큰소리로 계속 "냐아-" 하고 외치니 창문을 다 닫아놔도 3층인 우리 집까지 그 소리가 들린다. 

저렇게 큰소리를 내면 이웃집들이 싫어할 텐데, 울지 않아야 하는데 싶어서 뛰어나가기 일쑤. 


그렇게 반년을 밖에 살던 고양이는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집에 데리고 왔었더라면, 유기보호센터에 연락이라도 했었더라면 애가 이렇게 사라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싶었다. 길에 가끔 큰 들개들이 다니던데 들개한테 물리기라도 한 건 아닐까, 여긴 가로등도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데 차에 치인 건 아닐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미안함, 죄책감, 아쉬움 여러 가지 생각이 공존하면서 녀석한테 이미 정이 들어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걱정이 끝을 달려 결국 단지 사람들은 혹시나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단지 밴드에 고양이 소식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올렸다. 이런 커뮤니티에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인데 혹시나 당신이 고양이 밥 준 사람이냐는 욕이라도 먹을까 싶어서 "그냥 궁금해서요."라는 멘트도 잊지 않고 남겼다.


그런데 이게 웬일.

1층 집에서 입양을 했다고 한다. 1층 거실 창이 낮게 있다 보니 고양이가 자주 창 앞에 앉아있더니 정이 들어서 집에서 키우기로 했다는 이야기. 이름도 생겼고 병원도 다녀왔다는 답변이 올라오고 하나같이 집에 주고 있던 사료가 남았는데 가져다주겠다는 댓글이 달린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인사도 서로 하지 않던 이웃들이었는데 갑자기 화기애애하다. 

어느 날 단지에 나타난 고양이 한 마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한다, 사람들을. 



그리고 얼마 전 새하얀 누가 봐도 집고양이로 보이는 고양이가 또 단지를 돌아다닌다.


왜 이리 또 경계심이 없는 것이더냐
목에 선명하게 보이는 깔때기의 흔적


단지 아주머니 말씀에 의하면 얼마 전에는 목에 깔때기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내 옆에서 신나게 뒹굴뒹굴 뒤집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배 부분을 밀었던 흔적도 있고, 꿰맨 자국도 있는 걸 봐서 중성화 수술까지 마친 녀석이다.

목에 깔때기를 어떻게 뺄 수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하고 다녔는지 목에는 선명하게 자국이 나있었는데 그 깔때기로 얼마나 길에서 더 곤란하고 힘들었을지 상상이 가서 더 안타까웠다.


집 나온 아이가 확실하다면 분명 찾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근 마켓, 동네 맘 카페, 유기보호센터, 포인 핸드에 아이 사진을 등록했다.

집 나온 아이라면 길에서 오래 살 수 없다. 차가 얼마나 위험한지, 어느 정도로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는지, 동네 고양이들의 영역싸움에서도 절대 이길 수 없다. 급한 대로 또 아랑이 사료와 물을 떠다 주고 나는 우리 집 창고방을 청소했다. 어쩌면 내가 임보를 해야 할지도 몰라.라는 생각으로.

작년에 동네 고양이가 안 보였을 때 내가 느꼈던 그 참담한 심정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 이번엔 망설임 없이 서둘렀다.


나를 데려가거라 닝겐


심지어 이 녀석은 내가 차에 타면 겁도 없이 내 차에도 올라탔다. 


그러다 내가 올린 카페 글을 보고 집고양이가 길에서 오래 못 살 거라며 임보가 가능하고, 혹시나 주인이 안 나타나게 되면 본인이 입양을 하겠다는 분이 나타났다. 집에 키우는 고양이는 없지만 한 번 임보 경험이 존재했고 강아지를 키웠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나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더욱 조심했고, 더욱 안타까워했던 게 컸다. 


물론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좋은 사람이 많은 사회다.

서로가 집을 찾아주려고 나서는 것도 남들 눈 피해서 조용히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많은 것도 고맙고 따뜻하다.


오늘도 길에 사는 많은 고양이들이 있지만 그만큼 많은 좋은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점점 더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믿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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