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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안녕 Jan 12. 2021

고양이처럼 연애하라던 부모님

그 작은 아이 눈에 들어오고 싶어서 인간 넷이 쩔쩔매던 시절

본가에서 함께 살던 반려묘는 셋이나 되었는데 그중 제일 먼저 함께 살게 된 고양이 이름이 치즈였다. 치즈 태비 고양이였는데 어미가 임신했을 때 영양분이 충분하지 않았는지 꼬리가 아주 짧아서 토끼 꼬리 같았고 노란 무늬보다는 하얀 무늬가 많아서 솜털 같은 아이였다.

맨 앞에서 시계방향으로 치즈 미오 치타

치즈는 우는 소리를 내지 않았고 발걸음을 들을 수 없게 가볍게 통통거리면서 걸어 다녔는데 절대 맨바닥에 앉는 법이 없었다. 바닥에 방석이 깔려있으면 방석에 앉았고 방석이 없으면 책 위에라도 앉았다. 차가운 맨바닥은 감히 치즈에게 앉으라고 들이댈 수 없는 곳이었다. 


이 귀한 고양이는 분명 빨간색을 볼 수 없을 텐데 이상하리만큼 빨간 물건을 좋아했다. 딸기모양의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사용하는 빨간 손난로가 있었는데 치즈는 그걸 소중하게 안고 있거나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다. 현란한 고양이 장난감의 색감보다는 단색 빨간색을 선호했고 잘 때 소중하게 품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은 치즈를 위한 빨간 물건을 많아 마련했었는데, 심지어 어머니 차에는 사람을 위한 방석은 없지만 치즈를 위한 빨간 방석 하나만은 항상 있었을 정도다. 치즈는 스스로를 귀하게 만들 줄 아는 고양이였다.


치즈는 부른다고 쉽게 와주지 않았고 안는다고 안겨있는 고양이가 아녔는데 또 가만있으면 어느 순간 조용히 다가와서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가기 명수였다. 깜짝깜짝 잘 놀라기도 하고 겁이 많은 성격이라 목소리도 최대한 나긋나긋하게 부르면서 다가가야 했고 행동도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손은 너무 차갑지 않은 온도로. 까다로운 고양이였다. 또 분명 살집은 아닌데 묘하게 통통한 느낌이면서 안으면 한없이 가볍고 부드러워서 놓고 싶지 않은 몸매를 가졌는데 가족끼리 치즈를 두고 '귀족 고양이', '고급진 고양이'라고 부르면서 홀림을 당하곤 했다. 학교에 다녀와서 치즈에게 관심이 없는 척하고 있으면서 치즈가 다가와주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치즈는 밀땅을 아는 고양이였다.


깔끔은 또 얼마나 떠는 고양이인지 간식도 예쁘게 줘야 했는데 그러다보니 간식을 줄 때가 되면 치즈가 먹을 간식 그릇은 우리 집에서 제일 예쁜 그릇, 작고 무늬가 귀여운 것으로 좋아할 만한 그릇을 골라서 주게 되었다. 또 치즈는 사료그릇에서 떨어진 사료나 간식은 먹지도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사료까지 깔끔하게 먹어치우던 치타와 미오와는 달랐다. 그루밍도 깔끔하게 하는 우리 치즈는 새하얀 털이 항상 정말 새하얀 색이었는데 언제나 그루밍을 못해서 털에 뭔가가 많이 묻어있던 치타는 항상 치즈에게 구박을 받으면서 챙김 받았다.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화장실을 가지 않았고 다른 고양이가 더러운 상태면 털을 세우면서 짜증을 냈다. '이렇게 까탈스러운 고양이가 있냐'하고 다들 말했지만 치즈는 깨끗한 화장실을 좋아하지 하면서 화장실을 자주 치웠다. 치즈는 주변을 움직이게 만드는 고양이였다.


부모님은 치즈를 보면서 가끔 자식들에게 농담 삼아 말하곤 하시던 이야기가 있다. 

'치즈처럼만 연애해라.' 

우리 치즈는 무시할 수도 없지만 너무 사랑스럽고 그렇다고 쉽게 다가갈 수도 없으면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고양이였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치즈처럼 우아해질 수도 저렇게 사랑스럽고 주변을 미치게 만들 수도 없을게다. 치즈는 내가 본 가장 우아한 영혼이었고 가장 고귀해 보이는 생명이었다. 


오늘 장을 보고 오던 중에 우연히 치즈 태비 고양이를 마주쳤는데 문득 우리 치즈 생각이 나서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생각을 담는다. 고양이 별에서 맛있는 캔 식사를 고급스럽게 썰어 먹고 있을 것 같은 우리 치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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