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걸로 먹이고 싶다만 애가 저렴이 입맛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너는 몸이 좋지 않은 것만 먹냐며 잔소리를 하시곤 했다. 사실 그건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인데 매운 음식, 노상 곱창, 길거리에서 파는 다양한 꼬치류 등 부모님의 잔소리를 불러일으키는 음식들에 나는 환장하곤 했다. 먹은 다음날이면 무조건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거나 속이 쓰라려서 위염약을 연신 먹었지만 끊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제발 몸이 안 좋은 거 먹지 말고 좋은 것 좀 먹어라고 말하시곤 했다.
이게 그런 경우인 걸까.
아랑이는 저렴한 간식은 흔들기만 해도 신나서 꼬리까지 부르르 떨면서 고민해서 산 좋은 성분의 간식, 사료에는 아주 냉담하다.
고양이, 강아지가 먹는 캔은 참치캔이라고 해도 우리가 평소에 먹던 참치캔과 다르게 색이 거뭇한 편인데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참치를 가지고 조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먹지 못하는 재료는 아랑이에게도 먹이고 싶지 않기도 했고 성분이 무엇인지 명확했으면 하는 생각에 건더기가 잘 보이는 습식 캔을 샀다.
참치, 닭가슴살도 그대로 보이고 거기에 예쁜 당근도 같이 네모나게 보이는. 나에게는 흡족스러운 캔이었다. 흡족한 만큼 가격도 비쌌지만 말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
냄새만 맡아보고 그대로 입도 대지 않아서 나중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습식 캔. 비싼 캔을 세 번 정도 따서 그때마다 딱딱하게 굳어나갈 때까지 뒀다가 버리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나는 남아 있는 습식 캔들을 다른 집에 나눔 했다.
그다음으로는 사촌이 제주에 오면서 사 온 수제 간식. 황태를 저염으로 고양이, 강아지가 먹을 수 있게 말렸고, 100프로 고양이가 먹을 수 있는 치즈볼은 꼬릿 하게 냄새가 나는 게 무조건 좋아할 것 같았다.
이번에도 결과는 참패.
사료에 섞어서 넣어준 치즈볼은 색이 변해 먹을 수 없는 형태가 될 때까지 아랑이는 먹어주지 않았고 황태는 발로 툭툭 치면서 놀기만 할 뿐 먹지 않았다. 비슷하게 나도 못 먹는 캐나다산 열빙어, 고양이를 위한 비싼 육포, 몇 시간 동안 고양이 우유에 절여놨다가 삶아준 닭가슴살도 모두 차디차게 버려졌다.
얼마 전에는 아랑이 변이 조금 무르게 나오는 것처럼 보이고 또래 고양이들에 비해 작고 마른 아랑이를 생각해서 황금 끙아를 만들어낸다는 성분 좋은 사료를 무려 7kg나 되는 걸로 구매했다. 왜 나는 잊었을까. 아랑이가 먹어줄지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존 사료와 섞어서 주니 아랑이는 놀라 올 정도로 기존 사료만 손으로 골라내서 먹고 새로운 사료는 안 먹었는데 나중엔 손으로 잘 골라지지 않으니 싫어하는 사료는 뱉어내고 먹고 싶은 사료만 먹기 시작했다. 섞어놓은 사료에서 기존 사료는 다 사라지고 새로 산 사료만 남았을 때부터 아랑이는 단식을 시작했다. 그게 어제저녁인데, 보통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아랑이는 우다다 시간을 가지고 보상으로 간식을 받아먹는다. 하지만 사료는 입에도 대지 않고 간식을 주면 습관이 될까 싶어서 칭얼거리는 애를 두고 그대로 잤다. 새벽에 배가 고픈 아랑이는 밤새 내 근처에서 칭얼칭얼 거리고, 평소 울음소리와 조금 다른 낮고 웅웅 거리는 소리로 울고 짧고 앙칼지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시위를 했다.
지금 못 이겨서 일어나서 간식을 주면 습관이 될 테니 꾹 참고 누워서 견뎠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내 눈 아래 다크서클이 평소의 3배 정도로 짙어져 있었다.
아직까지 차마 포기하지 못하고 새 사료를 섞어놓은 상태다.
좋은 것만 먹이고 싶고, 몸에도 건강한 재료로 만들어진 것들로 먹이고 싶은데 아랑이는 내 마음을 모른다. 부모님이 하시던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제발 건강한 맛 한 입만 먹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