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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암사자 Apr 14. 2023

 출근 지옥에서 벗어나는 부적

초단편 소설 #3 금요일

오전 9시 5분을 넘긴 시간. 신영은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옆자리를 살폈다. 지각을 해 비워져 있는 사람의 자리는, 마치 수십 년 간 사람이 찾지 않은 폐가 같은 쓸쓸함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위태로움이 느껴지곤 했다. 신영은 의자 끄는 소리를 최대한 줄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혜진의 컴퓨터를 대신 켜주고, 신영 본인이 오늘 입고 왔던 카디건을 그녀의 의자에 걸어주었다. 아직 김이 폴폴 나는 일회용 커피잔에 든 아메리카노도 올려두었다. 한 사람이 지각을 할 것 같으면, 출근 뒤 잠깐 자리를 비운 사람처럼 보이게 하기. 신영과 혜진의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 세팅 완료! 소화전에 핸드백 넣는 거 잊지 말고.


신영은 혜진에게 간단히 메시지를 남겨두고, 보초를 서는 미어캣처럼 사무실을 두리번거렸다. 신영은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새벽같이 출근했을 염 부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고, 그 덕에 오전부터 사무실 전체엔 무거운 공기가 깔려 있었다. 명분은 업무가 되겠지만, 누구 하나쯤 염 부장 분풀이의 희생양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신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혜진의 지각으로 불똥이 이쪽으로 튀면, 신영도 화를 피하지 못할 것이었다. 신영은 혜진에게 메시지 하나를 더 남겼다.


- 어디쯤이야? 오늘 분위기 안 좋음. 주의요망.


시계는 9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혜진의 답장은 없었다. 신영은 직감했다. 이 시간까지 도착하지 않았다면 혜진은 대대적인 지각을 할 것이 분명했다. 회사는 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고, 신영과 혜진은 그 중심으로부터 각각 동쪽과 서쪽으로 대중교통으로 1시간은 걸리는 곳에 살고 있었다. 순수하게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거리만 1시간이지, 집 문에서 회사 입구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출근 시간으로 1시간 30분은 써야 했다. 마을버스에서 지하철, 지하철에서 다시 회사 입구까지 오는 버스를 환승하는 모든 과정들 사이에 변수가 생기면 이는 곧 어마어마한 지각으로 이어지곤 했다. 신영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조금씩 나눠 뱉었다. 미적지근하게 데워진 공기 속에, 사람들이 출근 전 자신의 몸에 덧입혔을 향수나 핸드크림 냄새들이 묻어 있었다.


혜진은 9시 40분이 다 되어서야 회사에 도착했다. 옆 자리에 앉아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녀에게서 진한 땀냄새가 났다. 신영은 본인도 지각을 해, 다급히 뛰어 왔을 때 이런 불쾌한 냄새를 풍겼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영업팀 대리가 신혼여행을 다녀오며, 사무실 모든 사람에게 나눠준 기념품인 하와이표 수제 비누를 서랍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이국적인 냄새 덕분에 혜진의 땀 냄새가 묻히는 듯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내내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염 부장은 혜진이 지각한 사실을 알지 못한 듯했다. 그는 혜진이 도착하고 1분도 되지 않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까만 머리들이 부표처럼 떠 있는 것 같은 사무실을 잔뜩 성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그러더니 얼마 전 경력직으로 입사한 과장 하나를 불러내 회의실로 끌고 들어갔다. 들어간 건 둘인데, 한 명의 큰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불려지지 않은 사람들은 그 목소리가 자신을 향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누군가는 옅은 미소까지 지으며,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회의실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란을 틈타, 혜진이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역한 냄새가 풍겨져 나오는 것 같아 신영은 비누를 몸 가까이로 바짝 가져다 놓았다. 한껏 목소리를 낮춘 것과는 상반되게 혜진은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신영에게 아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은 평소보다 집에서 일찍 나섰단 말이야. 그때까진 괜찮았어. 오랜만에 여유 있게 출발하니까 기분이 좋아서, 출근송을 들어볼까 했지. 가방에서 무선 이어폰을 꺼내서 한쪽을 빼냈는데 그게 글쎄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한 거야.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뛰어가던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가 나를 밀쳤네? 그 덕에 나도 치맛바람으로 바닥에 떨어진 무선 이어폰처럼 아스팔트 바닥을 구른 거야. 이거 봐, 신영. 새로 산 스타킹 완전히 다 찢긴 거. 피도 났어. 근데 눈앞에 마을버스가 멈춰서 있으니까, 사람이 글쎄 본능적으로 막 뛰게 되더라. 집에 돌아가서 갈아입을 수 있는 건 그때뿐이었는데 말이지. 절뚝거리면서도 막 뛰었어. 근데 글쎄, 그렇게 잡아 탄 마을버스는 만원인 거야, 그 시간에. 무슨 학교 행사가 있는지 학생들로 꽉 차서는... 요란하게 떠드는 소리에 파묻혀 정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더라니까. 까진 무릎은 쓰라려 오고. 무엇보다 그 몰골로 1시간 넘는 출근길을 버텨야 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거야."


회의실 쪽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이내 종이 따위가 날려 이리저리 흩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염 부장은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혜진은 뭐가 그리 웃기는지 실실거리고 있었다. 염 부장만 없는 단체 대화방에 메시지가 가득 쌓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번에 엎어진 계약을 정 과장의 전 직장에서 가져가게 된 사실을 놓고, 정 과장이 스파이짓을 한 것이 아니냐고 염 부장 편을 들었다. 또 누군가는 염 부장의 이혼을 놓고, 별 일 아닌 일로 사람 하나를 잡는다고 정 과장을 두둔했다. 신영은 쌓이는 메시지들 중 자신의 상사들이 보낸 것에만 성실히 맞장구를 쳤다. 신영이 혜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심지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데도, 혜진은 멈추지 않고 자신의 아침 출근길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더 태울 수 없을 정도로 만원 버스라고 생각했는데, 다음 정류장, 그리고 그다음 정류장에서도 기어이 사람을 태우는 거야. 나 바로 옆에 서 있던 학생 하나는 덩치가 꽤 컸는데, 내 어깨에 뚝뚝 떨어질 정도로 땀을 흘렸다니까. 여기저기서 에어컨 좀 틀어주세요, 하고 외치는데 버스 기사는 들은 체 하지도 않았지. 기온이 높은 게 아니지만, 너도 잘 알잖아. 사람끼리 밀착되어 있는 게 얼마나 찜찜하고 더운지. 사람들이 끙끙 앓는 소리, 이리저리 부딪히다가, 불쾌하게 서로를 만지게 되는 그런 상황들. 나도 핸드폰 꺼내서 시계 보려다가, 손이 그대로 끼어버려서 내 앞에 있는 아저씨 엉덩이에 어정쩡하게 손을 갖다 대고서... 아무튼 마을버스 탄 그 10분도 끔찍했지."


신영은 혜진의 이야기가 마을버스에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혜진은 여전히 말똥거리는 눈으로 신영을 바라보고 있었고, 신영은 이쯤 되면 대꾸를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잠시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그녀를 쳐다봤다. 앞머리가 땀 때문에 이마에 착 달라붙어, 몰골이 말이 아닌 혜진의 얼굴을 보며 신영은 기왕 이토록 늦을 거 화장실에서 매무새를 좀 가다듬고 오는 편이 낫지 않았나 싶은 생각을 했다. 당연히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신영은 억지 미소를 지어가며, 회의실 쪽을 한 번 바라본 뒤 대답했다. 


"오늘 진짜 고생 많았네. 스타킹 여분은 있어? 염 부장 난리 칠 때 잠깐 편의점이라도 다녀오는 게 어때."

"괜찮아. 점심시간에 다녀오면 돼."

"... 보기에 좀 그렇지 않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신영아. 잘 들어봐 봐. 내 얘기 안 끝났어."


회의실에서 또다시 쿵, 하는 큰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억, 하는 신음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혜진을 제외한 사무실 사람들 모두 회의실 쪽으로 모든 신경이 집중돼 있는 상황이었다. 회의실 쪽을 바라보고 있던 신영의 어깨를 붙잡고, 자신 쪽으로 방향을 고치게 만든 혜진이 신영의 무릎 위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신용카드 크기의 작은 부적 같은 무언가였다. 그것을 부적 비슷한 것이라 생각한 것은, 노란 바탕에 붉은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인데, 부적이 아닌 '비슷한 것'이라고 여긴 건 그 위에 그려진 그림이 무척 조악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뭔데?"

"출근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부적이래."


혜진은 대단한 비밀이라도 얘기하려는 듯 주변을 살핀 뒤 신영에게 소곤거렸다.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지하철 타려고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출근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드려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지하철 근처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 나만 그 소리를 들은 것처럼 뒤를 돌았지. 길가에 고작해야 열 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어린애 하나가 돗자리를 펴고 앉아 외치는 소리였어.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출근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드려요' 또 말하는 거지. 홀린 듯이 가서 한 장에 만원 주고 샀지."

"그래서 지옥에서 벗어났어?"

"나도 설마설마 했는데, 보시다시피. 내가 지각해서 제일 두려운게 염 부장이니까. 염 부장만 아니면 사실, 지각 가지고 뭐라 할 사람도 없고."


혜진은 사무실에서는 본 적 없던 싱그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이내 업무에 집중하는 듯 보였다. 유독 고되었던 출근길과, 압박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상사... 그것만으로도 혜진이 정신줄을 놓기엔 충분하다고 신영은 생각했다. 돈벌이의 설움 따위 알리가 없을 초등학생이 만든 부적 따위를 한 장에 만 원씩이나 주고 산 일이 위로가 된다면, 나쁘지 않은 거래란 생각이었다. 


다음날도 혜진은 9시가 넘도록 사무실에 도착하지 않았다. 신영은 혜진의 컴퓨터를 대신 켜주고, 입고 왔던 겉옷을 그녀의 의자에 걸어두었다. 혜진은 10시가 다 된 시각이 되어서야 사무실에 들어섰지만, 혜진이 지각을 했다는 사실은 신영 외엔 아무도 모르는 듯 했다. 심지어 염 부장이 외부 미팅으로 오후에 사무실로 복귀한다는 단체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혜진은 사무실에 들어오기 직전 화장까지 고치고 왔는지, 보송한 얼굴을 한 채였다. 신영은 1시간이나 지각을 하면서 여유롭기까지 한 혜진이 낯설게 느껴졌다. 땀 냄새는커녕 은은한 섬유린스 냄새가 나는 혜진에게 신영은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혜진은 대답대신 카드지갑에서 노란 부적을 꺼내 흔들었다. 


혜진에게 찾아온 이틀 정도의 운은, 신영도 그리 신경 쓰일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의 다음날, 다음날의 다음날의 다음날에도 혜진은 지각을 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었다. 엄밀히 따지면, 염 부장의 눈에 들지 않은 것이었다. 혜진과 염 부장은 신기할 정도로 동선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염 부장은 유독 이른 아침부터 외부 미팅이 많았고, 외부 미팅이 없는 날엔 출근 하자마자 누군가를 잡아들여 회의실에 가둔 뒤, 산산히 부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혜진의 지각은 점점 과감해졌다. 심지어는 신영의 배려이자 지각 동맹의 상징인 카디건이 자신의 의자에 걸려 있는 사실 자체를 귀찮아하기까지 했다. 신영도 기분이 팍 상해, 그 날로 혜진을 돕는 일을 당장에 그만두었다.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혜진의 컴퓨터가 꺼져 있고, 김이 나는 커피 잔이 올려져 있지 않고, 겉옷이 걸려 있지 않은데 누구도 그녀의 지각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정오가 거의 다 되어서야 느긋하게 도착한 혜진의 첫 업무는 점심 식사가 되었다. 


"출근길이 이젠 소풍이나 여행 가는 기분이라니까. 여유로운 좌석, 뻥뚫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침 풍경들. 만원버스, 지옥철 없는 삶이 바로 복지야. 회사는 뭐하는지 몰라. 쓸데 없는 복지 만들지 말고, 러시아워 피해서 출근 시간 조정해주면 좀 좋나."


늘 바쁘게 오느라 색깔이 다른 덧신을 짝짝이로 신거나, 다리지 않아 쭈굴쭈굴한 셔츠를 그대로 입고 출근하는 일이 잦았던 혜진은 뻔뻔한 지각을 하는 날이 늘어갈수록 점점 더 반듯해져가는 듯 했다. 업무 성과도 좋아져, 오히려 칭찬을 듣는 날도 많아졌다. 신영은 혜진이 정말 조악한 부적 하나 때문에 이런 호사를 누리는지 궁금해졌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혜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신영은 혜진의 지갑에서 몰래 부적을 빼내어 자신의 핸드백에 숨겨두었다.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고, 30분 늦은 잠을 자버린 신영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세수를 하면서 앞머리에만 대충 물을 끼얹어 뻗친 것을 가라앉히고, 옷걸이에 걸린 옷 중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꺼내어 몸에 걸쳤다. 충전기에 꽂아둔 핸드폰을 급히 빼내어, 핸드백에 던져 넣다가 신영은 어제 혜진에게서 훔친 부적을 떠올렸다. 신영은 기대하는 마음 반, 불신하는 마음 반으로 헐레벌떡 집을 나섰다. 


신영의 집 앞에 멈춘 마을버스를 간신히 잡아 탄 신영은 시계를 확인했다. 이대로라면 최소 20분은 회사에 늦게 도착하게 될 터였다. 버스는 정류장에 정직하게 멈춰섰고, 평소보다 많은 승객들을 꾸역꾸역 태우기 시작했다. 몇몇은 열린 창문 밖으로 몸의 일부가 삐져 나가기도 했다. 운전 기사는 신경쓰지 않고 사람들을 더 태웠고, 버스는 금방 폭발이라도 할 것처럼 사람들로 가득찼다. 신영은 버스 손잡이를 잡지 않았는데도, 사람들 사이에 단단히 끼어 버스가 가고 서는데도 휘청이지 않았다. 


사람들로 웅성이는 버스 안에서 신영은 버스 안내 방송을 잘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었다. 창밖을 보려해도, 사람들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 신영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려 애썼다. 더이상 사람을 태울 수 없을 지경에 이른 버스는 정류장에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기 시작했다. 하차벨을 누르거나, 내리는 사람도 없고, 더이상 타려는 사람도 없었다. 신영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신영은 몸을 간신히 돌려, 직장인처럼 정장을 갖춰 입은 누군가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다. 


"죄송한데, 지금 어이쯤이죠? 제가 지곡역에 내려야하는데... 벌써 내렸을 시간이어야 하는데..."


뒤통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데, 신영의 귀에는 웅성거림이 멈추지 않는 것 같았다. 이대로 엄청난 지각을 하게 될 것 같아 불안한 신영은, 혜진에게 컴퓨터를 미리 켜달라고, 가능하면 겉옷을 의자 위에 걸어달란 부탁을 하고 싶었다. 옴짝달싹 할 수 없던 상태에서 간신히 휴대폰을 꺼내, 혜진의 이름을 찾아 메시지를 남겼다.


- 너도 지각이겠지만... 혹시 몰라서, 일찍 도착하게 되면 컴퓨터 좀 켜달라고.


신영의 메시지에 혜진은 답장 대신 전화를 걸어왔다. 신영은 끙끙거리며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혹시 신영이 네가 내 부적 가지고 갔어?"

"아... 그게, 훔친 건 아니고. 네가 회사 바닥에 흘렸기에 나중에 돌려주려고, 그래서 가방에 잠깐 넣어뒀는데..."

"아니 훔치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고, 네가 지금 갖고 있냐고."

"응. 오늘 출근해서 돌려주려고 했지. 혹시 회사야? 내가 지금 탄 버스가 좀 문제가 있는지... 지각을 할 것 같아서. 컴퓨터 좀 켜주고..."

"...그 부적, 양도 불가야."

"그게 무슨 소리야?"

"양도 불가라고. 내 물건 잘도 가져가 놓고, 주의사항은 안 읽어봤나보지?"

"훔치려고 한 게 아니라니까..."

"절대 양도 불가. 만약 양도할 시, 양도 받은 사람이 출근 지옥에 갇힌다. 그렇게 써있다고."


통신 장애가 생긴 것처럼, 휴대폰 너머 혜진의 목소리가 지직지직 잡음을 내며 멀어졌다. 여전히 신영은 사람들 틈에 단단히 끼어 있고, 버스는 무한정 달리는 중이었다. 신영은 일말의 기대로 버스에서 흘러 나올 안내방송을 기다리며 귀를 기울인다. 다음 정류장은 지곡역, 이라는 말이 들릴 때까지. 계속, 또 계속. 



<끝>







'출근길에 읽는 초단편'은 출근하는 마음으로 쓰고, 공개하는 짧은 시리즈 소설입니다.

돈 벌고, 먹고 사는 일에 관한 모든 수고들을 소재 삼아 써나가려 합니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래서 나의 삶과 닮은 소설을 읽어 보고 싶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인스타그램 @hit_seul

이메일 kslgi06@naver.com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월화수목금 쓰고, 토일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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