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동산리 히든 할매들과 만나다방> 2화
“…아직 살아 있네.”
주현의 아득했던 정신이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저 먼 곳에서 들리는 것이라 생각했던 부서지고, 웅성거리는 소리들은 자신의 집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문의 목소리가 말한 것처럼 '아직' 살아있는 주현이 슬며시 눈을 떴다. 그러나 눈을 뜨고 나서는 오히려 자신이 살아있다는 확신을 거두어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꿈이거나, 꿈과 현실이 기이하게 뒤섞인 풍경이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방진막이 건물 옥상 높이까지 세워진 뒤부터, 주현의 방 창문으로는 먼 곳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것이 전부였다. 주현은 아주 느린 속도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쪼그리고 앉아 주현을 향해 기웃거리는 실루엣이 보였다. 수상한 실루엣은 몸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머리 부분이 은빛으로 빛났다. 주현은 눈꺼풀을 느리게 감았다가 뜨며, 반딧불이처럼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것만 같은 흔적을 눈으로 좇았다. 주현 혼자 사는 집에 초대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온 것인데도, 이상하게 평온한 마음이었다. 그건 아주 오래도록 기다려온 사람을 만난 것만 같은 기분과 닮아 있었다.
금세 어둠에 적응한 눈이, 깊은 주름 사이의 명암을 구분해 냈다. 주현을 찾아온 사람은 적게 잡아도 70대 후반은 됨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만 주름진 부분을 제외한 피부는 어둠 속에서도 팽팽하고, 심지어 두껍고 단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초면이지만 친근하고, 노년이지만 그 어떤 연령대보다 강인해 보이는 사람은 주현의 이마 위에 투박한 손을 얹었다. 이마 위로 온기가 전해졌다.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대부분 혼자 앓으며 이겨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바짝 마른 눈물샘이 다시 울컥거리며, 간질거리는 듯했다. 주현은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걸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저승사자... 저를 데리러 오신 거죠? 근데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과는 많이 다르시네요.'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되뇌던 주현은, 저승사자인 것이 분명한 노년 여성의 머리 위에 자리 잡은 운동용 헤어밴드에 눈길이 머물렀다. 가운데 선명하게 나이키 로고가 박음질되어 있는 것이었다. 로고의 날카롭게 위로 뻗친 부분에는 아주 미세하게 검은 실밥 하나가 튀어나와 있었다. 주현은 이런 중대한 순간에도 작은 발견에 기뻐하는 자신을 우습다 생각했다. 그때였다.
둥실. 주현의 몸이 가볍게 떠올랐다. 곰팡이로 얼룩진 천장에 주현의 몸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가, 이내 오래된 장판이 보였다. 세상이 온통 반대로 뒤집혔지만, 주현은 이 모든 이상한 것들에 순응적이었다. 발버둥 한 번 치지 않았고, 그저 봄 이불 빨래처럼 저승사자의 어깨에 축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주현을 단번에 탄탄한 어깨 위로 얹은 사람은 보통의 존재는 아닌 듯했다. 주현은 자신이 사람의 어깨가 아닌, 단단한 바위 위에 걸쳐져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얘가 명희 아들이라고?”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현은 힘겹게 고개를 돌려 신발장 쪽을 바라보았다. 두어 명의 사람들의 것으로 보이는 실루엣이 일렁일렁 검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노망이 난 거야, 아님 이젠 멀리 있는 것도 잘 안 보이는 거야? 딱 보면 몰라? 젖가슴이 나무판때기처럼 착 달라붙었어도, 딱 봐도 계집이지. 영춘이가 지난번에 김명희한테 아들이 아니라 딸이 있었던 것 같다고 얘기한 거 벌써 또 잊었어? 하마터면 송장으로 찾을 뻔했어.”
저승사자는 사자의 명부를 누구의 딸과 아들 따위로 기록해 들고 다녔던 것인가. 누구에게나 죽음은 딱 한 번 찾아오는 것이기에 배달 후기처럼 진짜 리뷰를 보거나 듣는 일은 불가능할 테지만, 이렇게나 다르다니. 주현은 언성을 높였다가, 다시 낮추기를 반복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이 그들의 입에서 오르내렸기 때문이었다.
김명희.
주현은 그 이름을 잊은 적 없었다.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친모의 이름. 언제부터 그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주현은 계속 그 이름을 품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엔 가정통신문의 ‘모’라고 적힌 란에 어른 글씨를 흉내 내려 애쓰며 그 이름 석자를 써넣은 적도 있었다. 너 아빠랑 둘이서만 사는 거 아녔어? 짓궂은 같은 반 아이 중 하나가, 주현의 가족 관계를 잘 알면서도 물어오면 주현은 뻔뻔하게 거짓말을 뱉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이랑 달라서, 꿈을 이루려 외국에 유학을 간 거야. 가끔 외국에서 선물도 보내준다고. 다른 거짓말처럼 엄마에 관한 거짓말엔 죄책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주현은 진짜로 엄마를 만나게 된다면, 그동안 듣지 못했고 받지 못했던 모든 것을 받아낼 작정이었다.
신발장 근처에 있던 실루엣 중 하나가 움직이더니, 집 안으로 들어왔다. 밑창이 두꺼운 등산화를 가지런히 벗어두고서였다. 남은 실루엣은 신발장에 그대로 남아 혀를 끌끌 차며, 집 안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하여간 길자 너는, 이제 곧 무너질 집에 들어가면서도 신발을 벗고. 유난 떠는 것도 병이야.”
“그래도 집이잖냐. 오락가락 하기는 해도, 이 집에 사는 사람이 버젓이 눈을 뜨고 우리를 보고 있는데.”
주현은 길자라고 불리는 사람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고 깊게 빛나는 눈이었다. 등산화를 벗고 집 안으로 들어온 존재는 주현의 빈 가방 하나를 꺼내 지퍼를 열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마구 쓸어 담았다. 다 쓴 지 오래여서 한참을 쥐고 뒤집어 흔들어야 겨우 몇 방울 묻어 나오는 로션병이 포함됐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이 10년 넘게 살아온 집을 둘러봤다. 싱크대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냉장고, 낡고 오래된 이불과 베개가 한눈에 들어오는 단칸방. 저승사자의 어깨에 실린 채, 죽어서야 떠날 수 있는 곳. 주현의 코끝이 재채기가 나오기 직전처럼 시큰거려 왔다.
무거운 졸음이 쏟아졌다.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주현은 눈꺼풀 사이의 미세한 틈 사이로 이승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보기위해 애썼다. 장면들이 사진처럼 뚝뚝 끊겨져 보였다. 현관문을 벗어나는 장면 하나, 빙글빙글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 하나, 주현의 집 보다 먼저 폐허가 된 채 문이 열린 3층의 집 장면 하나, 계단을 다 내려간 뒤 눈이 멀 것처럼 밝은 빛으로 점멸하는 흰색 자동차 장면 하나. 드르륵, 소리를 내는 슬라이드 문이 열리고 주현은 뒷좌석에 내던져졌다. 시트에 코를 박고 누웠는데, 진한 가죽 시트 냄새가 피어올랐다.
'백마, 아니 흰색 스타렉스를 탄 3인 1조 저승사자라니. 게다가 이승에서의 물건도 챙겨주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 이젠 저승이겠지. 주현은 눈꺼풀을 벌리는데 주고 있던 마지막 남은 힘마저 빼기로 했다. 가늘게 남아 있던 시야가, 머리카락 굵기만큼 얇아지다가 이내 주현의 세상은 완전한 암흑이 되었다. 우주처럼 짙은 어둠 속에서 주현은 죽음에 가까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주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눈을 떴다. 느리게 전원이 켜지는 TV 화면처럼, 눈앞의 풍경이 펼쳐졌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주현은 풍경을 이루는 것들을 하나씩 떼어내 살폈다. 하늘과 바다 사이를 가르는 수평선 위로, 작은 벌레 정도 크기로 보이는 배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마치 큰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는 눈이 부시도록 밝은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하늘은 마른 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아 놓은 것처럼 구름 한 점 없었다.
'요즘엔 저승으로 가는 배도 거의 유람선급이구나.'
주현은 언젠가 바다에 꼭 가보고 싶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쉽게 가볼 수 없는 곳처럼 느껴졌다. 조금만 더 돈을 벌면, 여기서 더 나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 좋은 사람을 만나면. 여러 핑계로 바다에 가는 것을 자꾸만 미뤘다. 그러는 동안 돈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고, 재개발을 앞둔 집에 숨어 지내며 홀로 죽을 날만 기다렸다. 죽어서야 오게 된 바다라니. 아니, 죽어야만 올 수 있는 게 바다였다니. 서글픈 지난 시간들이 편집된 장면처럼 주현의 머릿속을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았던 버려진 시간들이 조금은 보상 받는 기분이었다. 배달을 하며, 혹은 재개발 지역에 숨어 지내며 쫓기듯 살아왔던 주현의 마음에 낯선 여유가 번져 들어왔다. 풍경이 만들어내는 느릿한 선율에, 주현은 자신도 모르게 박자를 맞추듯 발을 까딱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다 이내 낭만적이지 않은 생각이 불쑥 끼어들었다.
'이 유람선이 왜 당연히 좋은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거야? 지옥으로 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조금만 떠올려봐도 천국 보다는 지옥에 갈 이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돼!”
주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지럼증을 느껴 크게 한 번 휘청였지만, 컨디션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미 죽은 사람에게 어지럼증이라니. 주현은 선 자세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보았다. 맨발에 마룻바닥의 미지근하면서도 맨질맨질한 감촉이 느껴졌다. 죽음은 꿈과 다른 것인가. 모든 감각들이 살아 있었다. 왼팔 안쪽에는 커다란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팔을 접을 때마다 까슬한 감촉이 예민하게 느껴졌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두꺼운 유리로 된 통창 앞에 이르러서야, 주현은 자신이 서있는 곳이 유람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저 바다와 아주 가까운 건물 안이었다. 천국에 도착해버린 것일까. 적어도 주현이 그토록 오고 싶었던 바다가 있는 풍경이 저승에서 지내야할 곳이라면, 이곳은 천국이라 불러도 무방한 곳일 듯 했다.
잠에서 깨었던 자리로 돌아왔다. 오래되어 낡고 색이 바랜 패브릭 재질의 소파였다. 시간 차를 두고 무언가 흘렀다가, 그대로 말라버린 얼룩들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그리 위생적이지 않은 소파였다. 손으로 조금만 건드려도 하얗게 먼지가 피어 올랐다. 소파 왼쪽으로는 바퀴가 달린 링거대가 놓여 있었다. 테이블 아래쪽에 놓인 휴지통엔 속이 빈 수액팩이 버려져 있었다. 왼팔의 반창고와 수액팩. 누군가 주현의 팔에 링거를 달아주었던 모양이었다.
통창 반대편으로 시선을 옮겨보았다. 오래된 건물의 내부였다. 군데군데 현대식으로 리모델링을 한 흔적이 있었지만, 세월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4인용 테이블 네 개, 10인용 테이블 하나,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일렬로 앉을 수 있는 바 테이블도 있었다. 카페로 운영되던 곳인 듯 했다. 주현은 숨을 깊게 들이마셔보았다. 마른 풀 냄새와 커피향이 느껴졌다. 가까운 테이블 위에 손을 뻗어 만져보았다. 원목 테이블은 기포 하나 없이 매끈하게 만들어낸 달고나의 표면 같이 맨질맨질 했다. 주현은 블루문 카페 사장을 떠올렸다. 그는 낡지 않고 늙어가는 가구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업종을 가리지 않고 배달 서비스가 확대되던 때였다. 그 시기 쯤 커피 한 잔에 고작 1500원인 저가 커피 전문점이 날개 돋힌 듯 생겨났다. 주문도 꽤 되었다. 덕분에 콜수도 늘고, 부지런히 움직이면 하루 수입도 꽤 괜찮은 때였다. 동광 빌딩에 배달을 가던 길이었다. 빌딩 바로 옆에는 3층 짜리 꼬마 건물 한 채가 있었는데, 2층엔 40년 된 블루문 카페가 있었다.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특유의 분위기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SNS 리뷰가 남겨지던 곳이었다. 그 건물 앞 인도에 블루문 카페의 것으로 보이는 가구들과 집기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것을 본 것이었다. 블루문 카페 사장은 거리에 내놓은 카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주현이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이전하시나요?”
“이제 그만 하려고요. 35년이면 많이 했지요.”
“비싼 가구들 같은데, 이것들은 다 어쩌고요?”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에다가 명품인 것처럼 올려서 그렇지, 처음 시작할 때 싸게 주고 산 가구들 그대로 지금껏 써왔어요. 아무리 오래돼도, 시간을 들여 정성껏 만진 물건들은 낡지 않고 늙어가지요. 같이 잘 늙었다 생각합니다.”
파도 소리가 기억에 잠겨 있던 주현을 다시 현실로 불러왔다. 이곳의 가구들도 블루문 사장이 말했던 것처럼, 낡지 않고 늙은 것들로 가득한 듯 했다. 가구와 같이 오랜 세월 늙어갔을, 이름 모를 공간의 주인을 주현은 생각했다.
벽면 선반 위칸에는 찻잔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아래칸에는 진공 유리병에 각종 찻잎과 설탕, 커피 가루로 보이는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테이블과 찻잔 위를 손으로 쓸어 보았다. 얕게 내려앉은 먼지 위에 손길을 따라 짧은 선이 여럿 그어졌다.
출입문과 가까운 쪽에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로 된 계단이 있었다. 난간을 잡고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고작 몇 계단을 오르는데도 숨이 차 몇 번이고 쉬어갔다. 계단 끝에는 불투명한 유리가 끼워진 푸른색 문이 있었다. 손으로 살짝 밀었을 뿐인데, 잠겨 있지 않은 문이 스르륵 힘없이 열렸다. 주현은 매일 밤 주옥빌라로 돌아갈 때처럼, 숨을 죽이고 열린 문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1층이 카페라면, 2층은 가정집이었다. 1층과 같은 방향의 바다가 보이는 넓은 거실과 두 개의 방, 작은 부엌, 화장실 하나가 있었다. TV와 소파, 식탁, 침대 위에는 먼지가 앉지 않도록 흰 천이 덮여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먼지 구름이 작게 일었다. 이곳 역시 1층처럼 사람이 머문지 꽤 시간이 지난 듯 보였다.
거실 한 켠에 놓인 장식장 앞에서 주현은 멈춰섰다. 크고 작은 액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액자에는 '제 71회 동산리 체육대회'라는 대형 플랜카드가 걸린 단체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어제 자신을 어깨에 짊어지고 나온 사람의 얼굴도 있었다. 사진의 한 가운데서 가장 큰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어제의 모습처럼 운동용 헤어밴드를 한 채였다. 사진 속 사람들 모두 비슷한 차림새였다. 무엇보다 사진속 사람들 모두 엄청난 신체 조건을 가진 듯 했다. 얼굴은 노년의 여성, 그러니까 흔히 보는 할머니인데 남다른 근육을 뽐내고 있었다. 머리보다 더 큰 어깨 근육이, 헐거운 체육복 밖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체 내가 어디에 와 있는 거지. 주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장식장 위의 액자를 더 살폈다. 흑백 사진부터 비교적 최근의 사진으로 보이는 것들까지 다양했다. 이 집 주인의 것으로 보이는 독사진도 여럿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길쭉한 몸통에 짧은 다리를 한, 납작한 코를 가진 개가 늘 함께였다.
“이제야 살아났네.”
귀가 쨍하니 울릴 정도로 울림통이 큰 목소리였다. 주현은 뭐라도 훔치려다 걸린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손에 들고 있던 액자 중 하나를 떨어뜨렸다. 유리 대신 아크릴로 된 액자여서 다행히 깨지진 않았지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뒹굴었다. 액자가 분리 되며 구성품들이 사방에 흩어졌다. 주현은 습관처럼 죄송하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흩어진 것들을 빠르게 줍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명희 때처럼 늦을 뻔 했어.”
주현은 목소리를 기억해냈다. 주옥빌라에 찾아와 주현을 어깨에 들쳐메고 흰색 스타렉스에 태운 할머니, 아니 저승사자. 주현은 은색 스텐 그릇을 양손으로 들고 서있는 그녀를 쭈그리고 앉아 있는 자세로 올려다 보았다. 근육질 할머니들의 단체 사진만으로도 이미 놀랐지만, 실제로 보니 더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분명 얼굴은 70대 후반에서 80대 쯤으로 보이는 영락없는 할머니인데, 몸이 달랐다. 키는 180센티미터 남짓했고, 형광 노랑색의 민소매 티셔츠 안팎으로 잔뜩 부푼 근육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통이 큰 반바지 아래로는 웬만한 충격에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튼튼한 기둥 같은 두 다리가 버티고 있었다. 적당히 그을린 팔뚝 위에는 만개한 장미꽃 문신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입 다물어라. 벌레 들어간다. 그것도 아주 큰 놈으로다가.”
주현은 그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입을 다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떨어진 턱을 천천히 끌어 올리면서 주현은 밭고랑처럼 깊게 여러 갈래로 패인 주름을 한참이고 바라봤다. 저승사자, 아니 근육질의 할머니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긴 머리카락을 살랑거리며 주현이 멍하니 있는 곳 가까이로 다가왔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배달일을 하며 온갖 집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겪어왔다는 것이 주현의 작은 자부심이었다. 그동안 보아왔던 사람들, 특히 노인들의 평균치라는 것도 주현이 말하면 꽤 정확한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눈 앞의 이 사람은 그 어떤 범주에도 들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달랐다. 다르다 못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다보니 지금껏 생각해왔던 노인의 이미지들 마저 왜곡되는 것만 같았다. 걸음이 느리고, 근육이 줄어 허리가 굽고, 불편한 관절을 대신 해 내는 앓는 소리 같은 것들이 노인 고유의 것이라 생각해 왔던 것들이 부정되는 기분이었다. 나이 든다는 건 취약함과 나약함으로 접어든다는 그런 생각들. 그렇기에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했던 그런 순간들은 깡그리 부서져버렸다. 성별과 나이를 뛰어 넘어 강인한 인체의 완벽한 표본처럼 보이는 몸을 한 할머니 앞에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주현은 생각했다. 거의 다 죽어가던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근육질의 할머니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러다 이내 소름끼치는 답을 떠올리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노예다.
주현은 3인조 할머니들이 자신을 노예로 데려온 게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심지어 지난 밤, 주현은 분명 친모의 이름을 들었다. 이들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을 사람들을 찾아 헤매는 전문가들일 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야 재개발을 앞둔 건물에서 조용히 숨어 지내던 자신을 찾아낼 수 있을리 만무했을테고. 주현은 쭈그리고 앉아 있던 자리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모으고 믿지도 않는 신에게 마음 속으로 묻기 시작했다. 왜 더한 지옥으로 자신을 데려왔냐고.
주현이 알수 없는 누군가와 소통을 시도하려는 때, 근육질의 할머니는 부엌 식탁을 덮고 있던 흰 천을 한 손으로 능숙하게 걷어내고, 그 위에 가지고 온 스텐 그릇을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주현은 그 모습을 곁눈질로 살폈다.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할머니의 종아리에는 고된 훈련을 거듭한 씨름 선수에게서나 볼 수 있는 뒤집힌 하트 모양의 근육이 움찔거렸다.
“그러고 있지 말고, 와서 먹어라.”
주현은 대답하지 않으려 했지만, 배에서 요란하게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대신했다. 주현은 몸을 일으켜 식탁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릇 안에는 흰죽이나 설렁탕, 끓인 라면 따위가 들어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예상과는 달랐다.
"입맛에 맞을 거다. 명희도 길자네 오징어 물회를 좋아했거든."
주현은 유튜브에서 먹방 보는 것을 즐겨했다. 구독자가 많은 유튜버 한 명이 언젠가는 물회 열 그릇을 앉은 자리에서 먹어 치운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직접 먹어본 적은 없었지만, 자주 어떤 맛일지를 상상해봤던 음식이었다. 군침이 돌았다. 살얼음이 낀 붉은 국물, 얇게 채썬 당근과 오이, 양배추와 청양고추. 아이스크림을 동그랗게 퍼주는 스쿠프로 퍼 얹어 놓은 것 같은 투명한 오징어 회가 둥글게 뭉쳐져 가장 위에 올려져 있었다. 손잡이 부분에 인삼 그림이 그려진 은색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살며시 국물을 먼저 떠 먹었다.
새콤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덕분에 조금 더 과감해졌다. 숟가락 머리를 그릇 한 가운데로 가져가 깊이 찔러 넣었다. 무언가 찐득한 것이 걸렸다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감각이 전해졌다. 힘을 주어 크게 한 숟가락 떠올렸다. 고작 물회 한 숟가락을 퍼 올렸을 뿐인데, 힘에 부치는 팔이 덜덜 떨렸다. 숟가락 위에는 밥과 채소, 오징어 회가 적절하게 올려졌다. 입을 크게 벌려 숟가락을 집어 넣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알알이 씹히는 쌀알, 가늘게 썬 채소들이 부드럽게 구부러지며 만들어낸 아삭한 식감, 오징어의 탱글탱글함이 입안 가득 느껴졌다. 숟가락은 빠르게 그릇과 주현의 입 사이를 오갔다.
“넙죽넙죽 잘 먹더니, 갑자기… 어디 아프냐? 왜 울고 있냐.”
주현은 울고 있었다. 눈물 콧물이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물이 흐르는 것처럼 쏟아져 나왔다. 죽으려 했는데, 살아서 납치된 것에 대한 설움이나, 어떤 괴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를 근육질 노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물음처럼 어디 아픈 것도 아니었다. 그저, 너무 맛있어서 울었다. 맛을 느끼고 있는 살아 있는 자신에 대한 대견함일 수도 있었고, 허기를 채울 수 있다는 안도감이나 기쁨의 눈물 비슷한 것일 수도 있었다. 잊고 있던 모든 감각들이 죄다 한꺼번에 깨어나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말라버린 눈물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상황과 기억을 모조리 잊고, 현재의 감각에 집중할 수 있었다. 황홀한 맛이었다. 오징어 물회를 잔뜩 먹고, 포동포동 살이 찌워진 다음, 오징어 배에 팔려 나가 본격적인 노예 생활을 하게 되더라도, 주현은 그 배 위에서 오징어 물회만 매 끼니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 그릇에 든 물회는 바닥을 보였다. 주현은 바닥 긁는 소리를 내며 마지막 남은 밥을 하나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그릇은 대충 씻어서 길자네 가게 가져다주면 된다. 참, 길자네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든지, 운동삼아 걸어 가든지 바닷길 따라서 쭉 걸어가면 금방이다. 그 집엔 남는 게 냄비니까 서두르진 않아도 되고. 석재나 다운이가 다방 문 열었다고 하면, 참새 방앗간처럼 들릴테니까 걔네들 편으로 줘도 되겠네.”
“저… 외람된 말씀인 줄은 알지만요.”
“나는 왕영춘. 마을 젊은 애들은 영춘 어르신, 하고 부르더라.”
“아… 네. 영춘 어르신.”
“그래.”
“저는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영춘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절반은 간다고 했는데, 왜 지금 이 순간엔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해서 납치범의 심기를 건드렸나. 주현은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못간다.”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영춘의 단호한 답변에 주현은 적잖이 당황했다. 자의로 집에서 나가지 않고 버틴 경험은 있지만, 타의로 갇혀본 적은 없었다. 납치를 당했으니, 저항 비슷한 것이라도 해 자존심이라도 회복해야 하나. 아니면 순순히 복종 하다가 빈틈을 노려 도망칠 궁리를 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마땅히 해야 할 말도, 행동도 떠오르지 않은 채 멍하니 서 있는데 영춘이 먼저 침묵을 깼다.
“네 집, 이제 없어. 네가 살던 빌라는 굴착기랑 불도저가 와서 싹 다 허물어버렸다. 나랑 길자, 원주가 하루만 더 늦게 왔어도 넌 그 건물이랑 같이 가루가 되었을게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뭘 어떻게 돼?”
“노예가 되어도, 주업이라는 게 있을 것 같아서… 오징어나 새우 잡이 배를 타거나, 밭을 갈거나… 제가 이래뵈도 다른 사람들보다 깡도 있고 힘도 세고. 그 정도 알려주실 수 있는 자비가 있는 어르신인 것 같아서 여쭙는 거예요. 제가 불만이 있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고요. 정말 감사하고요. 또….”
“학학학!”
영춘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학학학, 하고 웃는 소리는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큰 소리였지만, 호쾌했다. 영춘은 웃다가 이내 눈물까지 흘렸다. 흘러내린 눈물을 닦기 위해 티셔츠 아랫부분을 한껏 끌어 올려 눈 가까이로 가져가 눈물을 훔쳤다. 티셔츠 사이로 드러난 영춘의 배엔 선명한 식스팩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 명희 집이야.”
“네?”
“네 애미 이름도 모르고 살았냐?”
“아니요. 압니다. 김명희 씨.”
“김명희 씨? 제 애미 이름 부르는 버르장머리 하고는. 네가 그러고 산 줄을 알았다면 명희가 살았을 적에 그냥 두진 않았을텐데….”
“그 분이요?”
“그래. 내가 아는 김명희는 분명 그랬을 거다. 얼마나 마음에 사무쳤으면, 그 긴 세월 자식 얘길 한 번을 안했다. 그 마음을 어찌 알겠나.”
영춘은 슬픈 눈을 하고서 거실 창 너머 바다에 시선을 두었다. 주현은 아무렇지 않았다.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던, 생사도 모르던 친모였다. 그런 김명희가 죽었다고 한들, 주현에겐 크게 달라질 일이 없었다.
“김명희 씨, 그러니까 저를 낳아주신 분이 돌아가신 거고....”
“우리도 많이 고민했어. 갑자기 명희가 세상을 떠나고, 장례까지 정신없이 치르고 나니까 그제야 너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찾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명희가 어디 제 자식에 대한 흔적을 남겨 놨어야 말이지. 아무튼 찾아서, 네 엄마 세상 떠났다는 얘기만 전하려고 했는데 네가 그 꼴을 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여기 데리고 온 거 아니냐.”
“...그냥 내버려두셔도 됐는데.”
“…….”
“저 그냥 죽는 게 나은 인생이었거든요. 그냥 내버려두시면 자연스럽게 죽었을 거고,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세상도… 컥!”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주현의 숨이 턱 하고 막혔다. 폐 두 쪽이 몽땅 터져버린 것은 아닐까 싶은 충격이었다. 영춘의 커다란 손이 닿은 부분에서 얼얼한 통증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현은 한참이나 잔기침을 뱉고 나서야 간신히 고른 숨을 쉴 수 있었다.
“명희 빈자리가 동산리에서 얼마나 큰지 모른다. 오갈데 없으면 다방 문 열고 네가 명희 자식 노릇이라도 해. 그놈의 죽을 각오가 그리 대단하면, 이 악물고 여기서 한 번 살아내봐. 그렇게 해도 안 되겠으면 어르신 저 인자 진짜 죽어야겠어요, 하고 다시 말해. 그 때는 내가 그 방법도 찾아 줄테니까.”
영춘은 불룩하게 솟아 있던 바지 주머니에서, 형광 노란색 헤어밴드를 꺼내 머리에 둘렀다. 나이키 로고가 정 가운데 오도록 거울을 보며 잘 맞추는 일도 잊지 않았다.
“나는 늦었으니 이만 가보마. 쉬거라.”
영춘은 진짜 급한 일이 있는 듯 종아리 근육을 불끈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이내 1층 출입문에서 청량한 문종 소리가 들려왔고, 집은 다시 고요해졌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주현은 식탁에 앉은 채, 지금까지 자신의 몫으로 던져진 이상한 상황들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주현은 꿈 속인가. 살아는 있는가. 할머니는 저승사자인가. 여기는 저승인가. 그도 아니라면 저승에 가는 유람선인 걸까. 이곳에서 가구와 함께 늙어갔을 김명희는 왜 이런 이상한 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고. 곱씹으며 생각할 수록 모든 것이 뒤죽박죽 더 섞이는 것만 같았다.
오징어 물회가 담긴 빈 그릇을 앞에 두고, 주현은 거실 창문 너머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봤다. 그러는 사이 주현의 부지런한 내장기관이 일을 했고, '꺼억'하고 주현은 아주 오랜만에 길게 트림을 했다. 가만히 기다리는 동안 확실하고도 분명한 것들도 조금씩 주현 앞에 쌓여갔다. 어찌됐든 주현은 살아있다. 당분간은 산채로 이곳에 머물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