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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Oct 22. 2024

"참 이상한 마을이에요."

소설 <동산리 히든 할매들과 만나다방> 5화

1톤 수레 끌기 대회 결승전은 순위 결정전과 차원이 달랐다. 결승전 선수들은 바퀴 끄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공중을 가르듯 가뿐하게 달려 나갔다. 그와 상반되게 모래 폭풍은 훨씬 더 짙고 빠르게 경기장을 뒤덮었다. 불안정한 대기에서, 급격하게 상승하며 만들어지는 적란운처럼 모래로 된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아래에서 위로 쌓였다. 마치 경기장엔 다섯 명의 선수들만 있는 것처럼, 진공 상태의 객석에선 아무 소리도 번져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콧등을 붙잡고 간신히 일어나 빈자리에 앉았다. 주현은 이 상황을 어떻게 원만하게 처리하면 좋을지 고민하면서도, 경기장으로 자꾸만 힐끔거리게 됐다. 모래 폭풍이 결승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영춘의 순위를 알고 싶었다. 비겁한 방식으로 형광 연두색 헤어밴드가 이기게 된다면, 주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항의를 할 생각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선두 쪽을 바라봤다. 2등과 상당한 격차를 벌리며 달리고 있는 사람이 모래 폭풍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가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영춘 어르신이 1등이네!"


영춘이었다. 주현은 팔뚝에 새겨진 만개한 장미 문신을 똑똑히 보았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경기에 흥미를 가져본 적 없었던 주현이었다. 오히려 그런 날엔 몰아치는 야식 배달 콜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리저리 엉키는 오토바이들과 차들 사이에서 목숨을 건 주행을 이어나간 기억뿐이었다. 그런 주현이 바다 마을의 수레 끌기 대회를 보면서 난생처음 작은 흥분감에 휩싸였다. 주현이 경기장에서 사력을 다해 뛰는 것도 아닌데 숨이 가빠졌고, 곧 이어질 승리의 순간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왁' 하고 소리를 지를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경기 결과에 반전은 없었다. 영춘이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반회전을 하며 멋지게 수레를 멈춰 세웠고 이어서 형광 연두색 헤어밴드와 3순위, 4순위, 5순위가 차례로 들어왔다.


"와아아아악!"


주현은 마치 자신이 우승한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불끈 쥐고 공중에서 마구 휘둘렀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두 발을 모아 폴짝폴짝 뛰기도 했다. 영춘이 먼 곳에서 주현의 목소리를 듣고 주현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마치 오래도록 좋아했던 연예인의 콘서트에라도 온 골수팬처럼 소리를 지르고, 영춘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영춘 어르신, 멋있죠."


주현은 영춘의 우승에 고통에 신음하던 남자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남자는 객석에 정자세로 앉아 결승선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짙은 눈썹에 높은 콧대, 날카롭지만 부드럽게 찢어진 눈매까지. 동남아 유명 배우를 연상케 하는 매력적이고도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말끔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선명한 코피 자국이 인중을 따라 붉은 길을 만들며 흐르고 있었다. 주현의 머리와 부딪힌 콧대도 둥글게 부풀어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주현은 아무것도 없는 빈손을 어쩌지 못하고 공중에서 휘저었다. 남자는 주현의 손동작에 깜짝 놀라 거북이가 목을 감추듯 움츠렸다. 그 때문에 코피가 더 빠른 속도로 뿜어져 나와, 코피는 이내 남자의 목을 타고 흐를 지경이었다. 괜한 오해를 산 것 같아 주현은 안절부절못했다. 더 이상은 일을 크게 만들 수 없어, 주현은 주머니가 깊은 트레이닝복 바지 주머니에 최대한 양팔을 깊게 넣어보기로 했다. 주현이 주먹을 그다음엔 손목을, 그다음엔 트레이닝복의 탄성을 이용해 팔꿈치까지 집어넣었을 때 남자도 그에 비례해 움츠렸던 목을 조금씩 빼냈다. 그 덕분에 주현은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지고, 조금만 건드려도 휘청거리다 넘어질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됐다.


남자의 코가 벌름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마의 콧구멍처럼 둥글고 큰 모양이 됐다.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드는 것을 발견하고, 주현은 남자의 코가 완전히 망가져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남자는 처음에는 작게, 나중에는 크게 웃기 시작했다. 웃을 때 더 커지는 것 같은 시원한 입매를 자랑하면서. 그러나 주현은 그 모습이 공포스러웠다. 남자의 앞니 하나는 코피로 붉게 물들다 못해 절여진 것 같은 상태였다.


"... 피가 나요."

"제가요?"


주현은 손을 빼어 코피가 나는 쪽을 가리키려다,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입꼬리를 한껏 내리고 턱짓으로 남자의 코 쪽을 가리켰다. 남자는 손으로 얼굴 이곳저곳을 더듬더니 이내 축축하게 피로 젖은 인중에 이르렀다.


"정말 죄송해요."

"저도 죄송해요. 주현 씨를 못 봤으니까."

"저를 아세요?"

"장모님이 주현 씨 관련된 얘기를 많이 해줬어요. 명희 사장님이 동네 사람들한테 얘기 안 한 자식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부터, 영춘 어르신이랑 원주 어르신, 장모님 셋이서 밤마다 서울에 가서 수소문하며 찾는 얘기도. 여기 오셨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손으로 대충 문지른 탓에 남자의 인중엔 붉은 콧수염이 돋아난 것처럼 더 얼룩 해졌다. 좀 전까지는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던 남자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자 주현도 조금 안심했다. 구부러진 어깨를 펴고, 손목 높이만큼만 주머니에서 팔을 남겨두었다.


"저는 촉차이."

"네?"

"태국 이름이 촉차이. 한국식 이름은 석재. 동산리 사람들은 다 석재라고 불러요."

"이국적으로 생겼다고 생각만 했지, 외국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한국말도 엄청 잘하시고."

"아직 부족해요. 그런데 아까 급히 어디 가시려던 것 같았는데."

"연두색 헤어밴드 한 할머니가 부정행위를.... 다행히 영춘 어르신이 이겨서 괜찮아요. "


석재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주 어르신이 원래 승부욕이 강해요. 원주 어르신의 이런 사소한 부정행위도, 이미 이 마을에서는 전통이 되어버린 셈이라 아무도 신경 안 써요.”


생각해 보니 연두색 헤어밴드, 그러니까 원주의 부정행위를 주현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기장을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는 객석의 눈이 결승에 진출한 다섯에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실은 모두가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 원주 어르신 수레는 모래 5kg이 더 들어가 있어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1kg이었는데, 곽상용 주무관이 우리 마을에 오면서 더 늘어났죠."


사람이 한 주먹에 쥘 수 있는 모래는 100그램이 채 될까 말까 한 양일 것이었다. 석재가 태연하게 원주의 부정행위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주현은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되면 2등을 한 원주가 너무나 억울한 것은 아닐까 하고.


"그것도 너무한데요?"

"너무하죠."


여전히 앞니에는 붉은 피가 묻어 있었지만, 석재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전해주는 소년처럼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어차피 수레 끌기 대회라는 게 덮개가 없는 1톤 모래를 싣고 달리는 것이고, 흔들리는 수레에서 모래는 금세 사방팔방 날리기 마련이었다. 모래 한두 줌의 무게, 아니 넉넉잡아 1킬로그램의 무게라도 경기 시작 1초도 되지 않아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진짜 우승을 하고 싶어서 작정하고 부정을 저지르려면, 이렇게 눈이 많은 곳에서 대놓고 속 보이는 행동을 하진 않을 거예요. 영춘 어르신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만년 2등인 원주 어르신만의 시위, 아니 퍼포먼스라고나 할까."


1톤 모래 수레 끌기 대회 종목별 시상식이 열렸다. 영춘은 시상대에 올라 성인 몸통만 한 커다란 트로피를 받아 들었다. 근육이 불끈거리는 양팔과 모래가 가득 실린 수레를 형상화 한 독특한 트로피였다. 시상대의 중간 높이인 2등 자리에서 원주는 영춘에게 눈을 흘기고, 발끝으로 애꿎은 바닥만 찍어댔다. 그러고 보니 관중석의 사람들도 그 광경마저 재미있게 지켜보는 듯했다.


"이건 듣고 모른 척하셔야 해요. 약속하면 말해드릴게요."


석재의 이야기는 온 신경을 집중해 귀를 기울이게 되는 마법이 있는 것 같았다. 절대 모른 척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더 듣고 싶었다. 주머니에 꼭꼭 숨겨 두었던 손 중 오른손을 석재가 위협적이지 않을 속도로 천천히 빼내, 나머지 손가락은 모두 접은 채 새끼손가락만 뻗어 올렸다. 석재는 비밀 이야기를 하듯 주현 가까이로 몸을 더 붙인 뒤 소곤거렸다.


"영춘 어르신은 끝없는 바위 굴리기 종목에는 출전 안 해요. 갑자기 설사병이 났다, 깜장비를 깜빡하고 놓고 왔다, 집에 가스불을 켜놓고 왔다. 핑계도 매 년 달라요."

"그런데 그게 왜요?"

"끝없는 바위 굴리기는 원주 어르신이 제일 잘하는 종목이거든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래 목욕이라도 한 것 같은 영춘이, 커다란 트로피를 안고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왔다. 트로피는 가까이서 보니 더 크고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주현은 트로피를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만져 보았다. 햇빛에 달궈진 금속 특유의 열기가 느껴졌다. 정교하게 새겨진 근육과 힘줄의 모양도 독특했다. 영춘은 짐백에서 수건을 꺼내 흐르는 땀을 조금 닦더니, 이내 전쟁터에 가는 비장한 전사 같은 얼굴을 하고서 경기장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한 종목을 제외한 모든 종목의 결승전에 참가하는 영춘은, 동산리 스타디움에서 가장 바쁜 사람 같았다.


경기는 쉬지 않고 이어졌다. 영춘은 각 종목별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모양과 색이 다른 트로피를 가져와 주현의 자리 옆에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늦은 오후가 되자 주현은 트로피들 사이에 거의 파묻힐 지경이었다. 나란히 앉았지만, 트로피 때문에 더 이상 눈을 마주칠 수 없는 석재와  드문드문 얘기도 나누었다. 주현은 확실한 승자인 영춘을 응원하는 재미로 경기를 보다가도, 때로는 움직임 자체만으로도 퍽 감동을 주는 다른 선수를 응원해보기도 했다.


"참 이상한 마을이에요."


경기장 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석재가 말했다. 주현은 이상하다는 말을 곱씹어 보았다. 저승에 온 줄 알고 잠에서 깬 바다 마을, 얼굴도 모르는 친모가 물려준 다방, 엄청난 힘과 신체를 가진 할머니들, 고대 유적 같은 경기장과 독특한 경기 종목들. 이상하지 않은 것을 꼽는 편이 더 빠를 듯했다. 매 순간 새롭고도 이상한 것들이 주현의 눈앞에 모래 폭풍을 일으키듯 몰아쳐왔다. 이곳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되지 않을 정도였다.


"동산리에 있으면 열심히 살고 싶어 져요. 돈을 잘 벌고 성공하는 그런 열심 말고. 그저 태어났으니, 있는 힘껏 살아보자는 그런 의지가 생기거든요."


경기장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성인 두 팔을 뻗어도 한 번에 닿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트랙터 타이어가 순차적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쿵, 하고 소리를 내며 떨어진 트랙터 타이어는 표면의 깊게 파인 트레드 자국을 따라 흙바닥에 문양을 만들며 굴러갔다.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면, 전광판에 커다란 글자로 기록이 떠올랐다. 정미소를 운영한다는 강 씨는 지난해 개인 기록을 경신했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뒤이은 참가자가 강 씨의 기록을 금방 넘어섰지만, 강 씨의 표정은 밝았다. 적어도 일흔여덟의 강 씨가 일흔일곱의 강 씨 보다 더 강한 사람이 된 것이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인지도 몰랐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모든 경기가 마무리됐다. MVP 시상식이 열리는 폐회식에 참석하기 위해 참가자와 객석에 있던 관람객 모두 경기장 아래로 내려왔다. 주현도 사람들의 무리에 섞였다. 아직 식지 않은 열기 사이로 울샴푸 특유의 부드럽고 은은한 냄새와 땀 냄새가 섞여 들었다. 건강한 기운이 공기에 떠다니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생생함이 있었다. 장내 아나운서가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아직 호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영춘이 가볍게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올 해의 MVP도 역시 왕영춘 어르신!"


영춘이 MVP 벨트를 받아 들고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노을빛에 벨트의 금색 부분이 더 노랗게 빛났다. 끝없는 바위 굴리기 종목 트로피를 끌어안고 눈을 흘기는 원주를 제외하고, 마을 사람들 모두 영춘을 향한 축하와 존경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주현도 그 사이에 섞여 열심히 박수 소리를 더했다.


"정말 이상한 마을에 왔어."


주현의 혼잣말은 박수 소리에 파묻혀 아무도 듣지 못했다. 두 팔을 쭉 뻗어 벨트를 치켜든 영춘의 뒤로, 동산리의 반짝이는 바다가 넘실대는 풍경이 이어졌다. 이상한 마을의 이상한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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