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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기 Oct 23. 2024

"우리 이름을 찾아준 거야."

소설 <동산리 히든 할매들과 만나다방> 6화

주현은 열이 펄펄 끓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무거웠고, 온몸의 마디가 부서질 것처럼 쑤셔왔다. 뒤척이다가 이불에만 스쳐도, 거친 사포에라도 긁힌 것처럼 피부가 따가웠다. 물 밖에 던져진 고기처럼, 할딱할딱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동산리 체육대회가 끝난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증상이 시작돼, 며칠을 꼬박 앓아누웠다. 악몽에 시달렸다. 배달이 자꾸만 지연되어 애가 타는데 끝없이 연장되는 도로 위를 달리고 있거나, 아버지와 살던 옛집에 돌아가 눈코입이 없는 여자와 마주 보고 있기도 했다. 시간과 공간이 녹아내린 것처럼 끈적하고도 불쾌하게 주현을 훑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앓는 시간을 버티다 보면,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나 밖에서나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끝을 모르는 긴 터널을 통과하는 막막한 마음으로, 이 고통이 살면서 지어온 잘못의 대가라면 제발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눈을 감았다 뜨는 혼미한 가운데 몇몇의 사람들이 주현의 주변에 머물다가 떠나는 것만 드문드문 기억에 남았다. 


며칠이 지났을까. 주현은 잔잔한 수면 위에 부드럽게 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꿈을 꿨다. 주변엔 짙은 푸른색의 바다와 그보다 연한 빛깔의 하늘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멈춰버린 것 같은 풍경이었다. 주현은 숨을 크게 들이마실 때마다, 얕은 파도 위를 지나는 배처럼 몸이 살며시 출렁였다. 반쯤 물에 잠긴 귀에선 공기 방울이 꼬륵대는 소리와 저 깊은 곳에서 '우웅' 하고 공명하는 바다 생물의 소리도 들려왔다.


아악악악아악!


주현의 시야 밖에서,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거슬리지 않았지만, 주기적으로 반복된 웃음소리는 주현의 평온함을 깨뜨리기 충분했다. '악' 하고 마침표를 찍듯 소리가 끊기면, 이내 창문 틈새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처럼 '아' 하고 길게 숨을 뱉으며 웃음소리가 다시 시작되는 식이었다. 실은 악몽이었던 것인가, 생각하며 주현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려 했다. 중심을 잃은 몸이 흔들리며 휘청거렸다. 심장이 쿵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뛰었다. 그러자 다시 '아' 하고 웃음소리가 시작되려 할 때, 몸의 중심보다 주현의 평점심이 먼저 깨졌다. 주현은 첨벙 댔다. 호수처럼 잔잔한 해수면 위에 커다란 물결이 일었다. 고등어처럼 길쭉하고 통통한 몸을 가진 갈매기 한 마리가 긴 날개를 펼쳐 사뿐하게 날아와 허둥대는 주현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현은 손발을 마구 허공에 휘저으며 잠에서 깼다. 너무 개운해 이곳이 어디인지 조차 헷갈릴 지경이었다. 2층 방 침대 위. 이상한 마을의 이상한 체육대회가 끝난 뒤 쓰러지듯 누웠던 그 자리 그대로였다. 며칠 동안 주현을 괴롭혔던 두통도 더 이상 몰려오지 않았다. 열이 내려 더 이상 춥지 않았던 탓인지, 발로 찬 이불이 둥글게 구겨져 침대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아팠던 시간들 마저 모조리 꿈이었던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아악악악아악!


갈매기 울음소리 아니었던가. 주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리는 분명 1층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한 사람의 것이 아닌 듯했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높이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영업하지 않는 다방에도 손님은 찾아오는 것일까. 주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녹슬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 같던 몸이 기름칠이라도 한 것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주현은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약 봉투를 잠시 살펴보았다가,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짧은 머리가 제멋대로 뻗치고 눌려 있었다. 손으로 지그시 눌러보았지만, 고집이 생긴 머리카락이 탄성 좋은 용수철처럼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주현은 주옥빌라에 두고 왔을 헬멧 생각이 났다. 오토바이를 타지 않을 때도,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지 않을 때 곧잘 뒤집어쓰곤 했다. 


계단과 이어지는 문을 열자,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10인용 테이블에 영춘을 포함한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주현을 가장 먼저 발견한 두콩이 달려와 배를 뒤집은 채 꼬리를 쳤다. 바닥에 있던 흙먼지가 부채 모양을 그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영춘이 의자 등받이에 비스듬히 기대며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체육대회 끝난 할매들도 펄펄 날아다니는데, 젊은 놈이 약해 빠져선."


파란 바탕에 '길자 오징어 물회'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인 티셔츠를 입은 노인이 혀를 끌끌 차며 영춘의 말을 이었다.


"젊은 놈이니 아프지, 우리 같으면 죽었지."


영춘의 맞은편에 앉은 노인이 악악악, 갈매기처럼 웃었다. 양갈래로 땋은 은발의 머리가 장난스럽게 휘청였다. 주현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을 때, 테이블에 둘러앉은 할머니들은 위에 놓인 주전부리를 와작와작 소리를 내며 신나게 씹어 먹었다.


“그나저나 만나다방 문은 언제부터 여는가?"


주현은 그대로 꼼짝 않고 서있었지만, 할머니들은 그곳에 주연이 없다는 듯 저들끼리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최 사장도 생각이 있겠지."

"암만, 생각이야 없겠냐만."

"사람이 일을 너무 하지 않으면 녹스는데. 때를 놓치면 영영 못 쓰게 되는 수가 있어."

"강 씨네 아들내미처럼?"

"말도 말아. 명희 딸이면 잘하겠지."


최 사장. 그건 주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주현은 마음속으로 그 말을 여러 번 곱씹어 보았다. 주현은 지금껏 불렸던 이름들을 떠올려보았다. 라이더, 주현 씨, 누님, 이모, 저기요 같은 가까이서 들리던 단어들이 있었고, 딸배, 딸배년 같은 비교적 먼데서 들려오던 단어들이 있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선생님' 혹은 '사장님'이라고 부르고 보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주현이 '사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린 건 처음이었다. 털이 쭈삣 설 정도로 낯선 기분이었다.


"최 사장!"


양갈래 머리가 불렀지만, 주현은 부름에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목에서부터 시작한 열감이 귀까지 금세 번져갔다.


"또 열이 나는가. 얼굴이 흙빛이여."


주름진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고, 주현을 한 번 더 부르려던 양갈래 머리를 파란 티셔츠가 말리며 주현의 안색을 살폈다. 영춘도 다시 의자 등받이 뒤로 어깨를 빼내며 뒤를 돌아봤다.


"이상하네. 열은 어젯밤에 내리는 걸 봤는데."

"아, 아픈 건 아니고...."

"아픈 게 아니믄?"


다섯 할머니들의 시선이 일제히 주현의 입으로 향했다. 주현은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터질 지경에 이르렀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파란 티셔츠가 크고 두꺼운 손으로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기쁜 거네. 최 사장이 아주 기뻐서 그래."

"아악악악! 맞네, 맞아. 우여곡절은 있었지만서도, 제 엄마 살던 곳도 오게 되고 우리 마을에서 제일로다가 인기 좋은 가게 사장도 하고."


아주 잠깐이었지만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물에 푼 휴지처럼 풀어헤쳐지며 녹아내렸다. 파란 티셔츠가 주현을 향해 손짓하며, 제 옆자리의 빈 곳을 가리켰다. 주현은 몇 번 더 쓸어내린다고 해서, 위로 사정없이 뻗친 머리카락이 가라앉을 리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자꾸만 머리에 손을 얹었다. 느릿느릿 테이블 가까이로 다가가, 근육질 할머니들 사이에 초라하게 앉았다.


“다방 운영해 본 적은 있고?”


호프집, 카페, 편의점, PC방, 영화관. 젊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아르바이트 일자리부터, 콜센터 상담, 물류센터 상하차, 인형탈 쓰고 전단지 돌리기 등 어느 정도 요령이 필요한 일자리까지. 라이더 일을 하기 전까지 주현은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시간을 팔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곳이면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고 했다. 진득하게 눌러앉아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진 못했지만,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쌓은 내공이라는 게 있었다.


"체인점 카페에서 몇 달 아르바이트 한 적은 있는데...."

"그럼 합격이지."

"충분하지."


주현은 어리둥절했다. 최주현이 최 사장이 되는 일이 마치 잡기놀이의 술래 정하는 정도로 쉬운 일이었던가. 주현은 만나다방의 사장이 된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처음엔 드라마에 나오는 부유하고 여유로운 카페 사장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가, 이내 언젠가 영화에서 본 적이 있던 시골 다방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흰 셔츠에 고급스러운 재질의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상상 속 주현이 어느새 눈두덩은 파랗고 입술은 빨간 화장을 하고, 호피 무늬 카디건과 꽃무늬 치마를 입은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언제부터 씹기 시작했을지 모를 껌도 질겅질겅 씹으면서.


"어르신들도 보시다시피 제가 얼굴도 평범하고, 몸매도 그럭저럭이고… 꽃무늬나 짧은 치마 뭐 이런 것도 잘 어울리지도 않거든요. 또….”


주현이 테이블에서 유일한 발화자가 됐다. 주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굳게 말아 쥔 파란 티셔츠의 커다란 주먹이 보였다. 무기로 쓸 수도 있을 것 같은 양갈래 머리의 단단하게 엮인 머리카락도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영춘의 장미가 살아 움직이는 듯 불끈거리다가, 피부를 뚫고 뛰쳐나와 가시로 찔러댈 것 같기도 했다. 주현은 횡설수설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 제가 그렇게 싹싹하지를 못해서요. 배달 일 할 때도 자주 시비도 붙고… 그러니까 다방 일이 잘 맞는... 그 김명희 씨 아니, 제 친모한테 또 다른 자식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고... 이걸 이렇게 성급하게 정하면 안 되는....”


정적이 흘렀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주현은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었다. 그까짓 게 뭐라고, 그냥 하면 되지 왜 핑계를 대서. 주현은 후회했다. 모두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지만, 지금이라도 말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하던 때 입을 벌리고 동상처럼 멈춰있던 영춘이 손에 쥐고 있던 강냉이를 입안에 쏙 집어넣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성큼성큼 출입문 쪽을 향해 걸어가더니, 카운터 쪽에서 메뉴판 하나를 집어 와 테이블 위에 쿵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갈라진 가죽 재질이 선명하게 도드라진 표지였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다방, 우리도 거절이다. 거절이야. 할매들 뿐인 마을에 가당치도 않지."


영춘이 불경한 것이라도 털어내는 사람처럼 부르르 몸을 떨고, 팔을 번갈아가며 문질렀다. 다른 할머니들도 서로 귓속말을 몇 번 속닥이더니 이내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영춘은 메뉴판을 양쪽으로 펼쳐 가장 앞 페이지를 주현에게 보여주었다.


“마을이 다 담겨 있어. 만나다방에는, 그리고 명희의 메뉴에는.”


메뉴판은 30페이지가 훌쩍 넘었다. 바다 마을의 작은 다방의 메뉴판 치고는 과한 듯 보이는 메뉴판에는, '김명희 스페셜'로 시작해 사람들의 이름에 '스페셜'이 붙은 메뉴들이 빼곡히 이어지고 있었다. 


“영춘 어르신 이름으로 된 메뉴도 있네요?”

“그럼. 동산리 사람들 이름이 여기 다 있지.”


왕영춘 스페셜

사과, 바나나, 시금치와 삶은 닭가슴살, 계란 노른자를 갈아 넣은 왕영춘의 고단백 건강 비법 주스! 


마을 사람들의 이름으로 된 특별한 음료들이라니. 주현은 퍽 감동을 할 뻔했으나, '왕영춘 스페셜'의 레시피 설명란을 보고 의아했다. 맛을 떠올리기만 해도 혀뿌리가 뻐근해지는 기분이었다. 주현이 입꼬리를 한껏 내리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동안 영춘은 옛 추억에 잠겨, 창 너머 바다를 바라보며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파란 티셔츠가 '오길자 스페셜' 메뉴가 있는 페이지를 펼치며 손으로 쓸며 말했다.


명희는 우리 이름을 찾아준 거야."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현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이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 물론 맛이 좀 아쉬웠던 건 사실이야."


길자의 말에 사람들의 고개가 더 크게 아래위로 흔들렸다. 마치 풍랑에 휩쓸린 배에 함께 몸을 맡긴 이들처럼,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조용히 흔들리는 시간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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