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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nnjoy Nov 03. 2022

스피커

Thanks for Things(땡포띵) - 첫 번째 물건

이 스피커를 처음 보게 된 건 2018년쯤이었나. 나는 습관적으로 29cm 어플을 들락거리는데, 이 스피커도 그러다가 발견한 물건이었다. 대학생이었던 시절엔 학교 앞 좁은 자취방에서 살았었는데, 그래서 스피커를 살 돈이 있어도 놓을 공간이 없었다.


공간의 의미는 물리적 의미와 정서적 의미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가령, 그때 내가 살던 좁은 자취방은 그저 먹고, 자고, 살기 위한 공간이었다. 본가가 용인이라 자취방 없이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왔다 갔다 하는 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0년 말, 지금 사는 오피스텔로 이사를 오고 나서 주거 공간에 대한 내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뭐랄까.. 이전에 살던 자취방은 내 인생에서 가장 구질구질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런 순간들이 응축된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집으로 장소를 옮기고 나니 나도 그런 기억들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고, 단순히 먹고, 자고, 살고 하는 의미 이상의 의미를 이 공간에서 찾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해준 첫 물건이 바로 이 스피커였다.


이 집에 처음 이사 온 게 2020년 크리스마스였는데, 그 날 이 스피커를 설치하고 <Scorton’s Creek>이라는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아직 주문한 테이블도 도착하지 않아서 휑하니 러그만 깔려 있는 거실에 누워 이 노래를 들었던 순간이 지금 와서는 왜 이다지도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주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고, 그래서 앞으로의 삶도 그다지 녹록치 않을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집에는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떠나보내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뭐.. 세상을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둘러보면 나보다 힘들었던 사람이야 엄청 많았을 거고, 나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남이 힘든 것보다 내가 힘든 게 몇 배는 더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요약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집 스피커는 나에게 이런 의미다. 인생의 새로운 챕터, 좋은 사람만 만나고 싶은 바람, 그리고 내가 이전보다는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그런 마음이 응축된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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