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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잡는 날(들풀의 어른동화 4)

작은 누나가 시집 가는 날, 검댕이는 하늘냐라로 갔다

by 들풀

작은 누부야가 시집을 간다.

"소를 잡아야 하는 긴데.."

아부지는 혀를 끌 차신다. 돼지 우리에서 나의 검둥돼지, 검댕이가 꿀꿀거린다.

"이 눔아, 마이 묵어라."

맛있는 이밥에 생선반찬에..

"꾸룩 꾸룩, 푸우 푸!"

검댕이가 신이 났다.

내 동무, 검댕이

작은 아부지가 새끼줄을 들고 돼지우리에 들어간다.

검댕이가 구석으로 파다닥 달아난다.

"아차!"

영산 아재가 잽싸게 검댕이 두 귀를 잡아서, 바닥에 꼬꾸러뜨린다.

작은 아부지는 퍼뜩 돼지 네 발을 새끼 줄로 꽉 꽉 꽉 묶었다.

"꽥, 꽤액!"

검댕이가 묶인 발을 버둥거리며, 자지러진다.


네모 반듯한 평상에 검댕이가 뉘어졌다.

순한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본다.

짙은 검은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검은 눈동자가 더 깊어져서 슬프다.

커다란 양철동이가 검댕이의 머리 맡에 놓인다.

외동양반이 검댕이 목덜미에 칼을 깊숙이 찔러 넣는다.

"쾌애액, 꽤액!"


검댕이의 시꺼머죽죽한 피가 철철 흘러, 잿빛 양철동이에 쏟아진다.

외동 양반은 길게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담배연기는 길다란 꼬리를 늘어뜨리며, 잠시 공중에서 맴돌다가 이내 흩어져 사라진다.


할매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다.

"보살님(검댕이를 말함), 우짜등가 다음 세상에는 인도 환생(사람으로 태어남) 하시이소."

"푸우, 푸, 푸르르!"

검댕이가 숨을 헐떡일 때마다 몸 속 깊은 곳에 숨었던 피가 쏟아진다.

모든 것이 멈춰 섰고, 나는 울음이 터져 나와, 꾸욱 꾸욱 가슴 속으로 되새김질을 하는데..

누나는 시집을 가고, 검댕이는 하늘나라로 가고

뜨거운 물이 검댕이의 살갗에 부어지고 검댕이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욕을 한다.

검은 터럭이 뽑혀 짚단 위에 쌓이고, 맨도롬한 살갗이 햇살에 반들거린다.

외동양반은 목을 자르고, 몸통을 갈라 내장을 빼내고, 발목을 잘라 발톱을 뽑는다.


"간이다, 묵어 봐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검댕이의 간을 구포아지매는 내 입 속에 쑥 넣는다.

"우웩, 웩!"

할매가 내 등을 다독인다.

"근데, 막냉이야. 검댕이가 저렇게 웃고 있은 게네, 너거 누부야는 잘 살끼다."

근데, 나는 자꾸만 자꾸만 더 눈물이 났다.

하늘에는 뽀얀 구름이 두둥실 춤을 추고 있었다.

보살님, 우짜등가 인도환생 하이소

[적고 나서: 55년 전, 학교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 내 발자욱 소리를 들으면 먹을 것 달라고 "꽥, 꽥" 검둥이는 떼를 씁니다. 슬며시 엄마 몰래, 먹던 고구마를 3~4개 주면 맛있게 다 먹고 다시 더 달라고 나를 쳐다보며 왔다 갔다 부산했던 내 검둥이!

다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 같은데, 아득해져서 지금은 돼지고기를 잘만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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