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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구마가 싫어요

베이비부머세대의 성장통같은 이야기

by 들풀

브런치 작가가 되고 "어른동화" 연재를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두 번 글을 올리려니, 예전에 적었던 글을 찾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런 것은 적었던 글도, 살아온 세월의 굴곡들로 얘기거리가 많다는 것입니다.


제목은 당시 교과서에 실린 1968년말에 일어났던 무장공비사건의 희생자, 이승복 어린이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에서 가져왔습니다. 아무튼 이왕 클릭을 해서 제 방에 오셨으니, 제 이야기나 한자락, 듣고 가세요. 재미도 없고, 그냥 대한민국 <베이비부머>세대의 성장통 같은 얘기에요!

국민학교 다닐 때 나는 항상 배가 너무 고팠어요.

10여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는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었거든요. 도시락요? 그때 시골에서는 꿈도 못 꾸었어요. 가을과 겨울에는 해가 짧다고 아침, 저녁 두끼 식사가 끝이었어요. 산골살림이란 게 거의 같아서 그때는 우리집이 못 산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어요.

제가 찍은 고구마꽃

가을에는 그래도 먹을 것이 많아서 좋았지요. 뚱딴지(돼지감자)를 캐어서 먹기도 했는데, 독성때문인지 머리털이 빠진 아이도 있었어요. 더러 아랫동네 골목에서 담을 넘어 온 감도 따먹고, 벼도 까 먹었어요. 벼 이삭 하나를 입에 넣고 참새가 알곡을 빼 먹듯이 알만 쏙 빼먹는 재주가 있었어요. 손은 전혀 사용하지 않구요. 햐! 지금 같으면 <세상에 저런 일이!>에 나올 만한 묘기지요.

엄니는 가을에 고구마를 수확하면 <고구마 빼때기>를 만들었어요. 빼때기는 흠이 난 고구마를 깨끗이 씻어서는 얉게 썰어내는 겁니다. 그걸 지붕에 고루 널어서 말리면 하얀색의 고구마 빼때기가 완성되는데요. 물기가 없으니 맛은 그리 있는 것 같지가 않고, 암튼 오래 먹기 위한 방편이었지요. 겨울에는 그 고구마 빼때기에 밀을 조금 넣고 삶으면 엄청 불어나요. 그러면 온 식구의 한 땟꺼리(끼니) 식사가 되는거죠, 휴! 약간 단맛이 있지만 거무티티한 <고구마 빼때기 죽>이 나는 너무 싫었어요.

광에는 쥐약을 넣은 고구마가 있었어요

근데 그것보다 더 고구마를 싫어한 사건이 있었어요.

내 친구 <바우>는요, 우리동네보다 더 윗동네에 살았어요. 아마 애가 약하다 보니 '죽지 말고 바위처럼 강해져라'고 이름을 지었을 거예요. 그 동네에는 분교가 있었는데, 1학년에서 2학년까지의 아이들만 다녔어요.

십여명의 학생에 선생님은 한 분이셨구요. 3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본교로 내려와야 했어요. 겨울에는 20여리 산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애들이 무척 겁을 내었지요. 진짜 여우가 나타나기도 했거든요. 여우란 놈이 더러 산에서 돌을 던지기도 했어요.

못(저수지)을 지나가야 하는데, 못 옆에 있는 은굴(은을 채굴한 폐광)에는 박쥐가 많이 살았어요. 저수지에는 철마다 사람도 빠져 죽었구요. 여하튼 내 친구 바우는 그런 동네에 살았어요. 그때가 3학년 가을 쯤이었어요.

저녁에 수업을 마친 윗동네 친구들은 그날도 학교를 파하고, 20여리를 걸어서 집으로 향했어요. 하루종일 먹은 것은 이른 아침에 등교할 때 먹은 아침밥이 전부였어요. 물론 형편이 어려운 산골아이들이 점심 도시락을 싸 다닌다고는 생각지 않겠지요. 바우는 정말 배가 고팠을 거에요.


집에 도착하자 마자 바우는 먹을 것을 찾았어요. 시렁에는 밥이 없었어요. 정말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나 봐요. 이방, 저방을 살피다가 마루를 건너서 고방에 갔어요. 고방은요, 곡식을 보관하는 일종의 창고랍니다.

그런데 눈에 딱 띄는 그것!

삶은 고구마였어요.

고방 구석에 삶은 고구마를 신문지 위에 올려놓은 겁니다.

내 친구 바우는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어요.

배 고픈 바우는 쥐약 고구마를 먹고 말았어요

"아이구, 배야! 아야! 엄니!"

바우는 엄니를 찾았어요. 어른들이 밭에 나가면 자녁 보리쌀을 끓일 때가 되어야 돌아 오거든요. 바우 엄니가 왔을 때는 이미 늦었어요. 바우는 막 숨이 넘어가고 있는 중이었어요. 옆에는 바우가 겨워 올린 삶은 고구마와 베어 먹다만 고구마가 널부러져 있었겠지요.

바우 엄니는 섧게 섧게 울었어요.

"내가 내 아들을 죽였다아~"

그때는 쥐가 워낙 많아 정부에서 <쥐잡기 운동>을 벌였죠.

우리들도 방학이 끝나면, 쥐꼬리 열개 씩을 방학숙제로 가져가야 했구요. 정부에서는 새마을지도자를 통해 무료로 쥐약을 나눠 주었지요. 그런 쥐약 묻은 음식을 먹고 개도 죽고, 닭도 죽고, 소도 죽었어요. 이웃집에서 쥐약을 소문없이 놓았다가 원수가 되기도 한걸요.

그때는 그랬어요, 무조건 정부에서 시키는대로 해야 했어요. 통일벼 장려운동을 벌일 때는 야단도 아니었어요.

농사달력에는 볍씨소독에서 수확까지 통일벼 재배과정을 한장짜리 달력으로 만들어서 전 농가에 배포했어요. 밥맛이 좋은 일반벼 품종인 아까바리 묘판을 면직원들이 달겨들어 뒤집기도 했지요. 통일벼가 다수확품종인 것을 맞지만 밥이 꼭 모래알을 씹는 맛이었어요. 아무튼 시키는대로 무조건 해야하는 그런 야만의 시대였어요.

그런 억압이 쥐를 잡으려다가 내 친구 바우를 잡고 말았어요. 바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참 많이 울었어요. 너무 마르고 약해서 친구라기보다 동생같은 느낌이 들었던 아이!

눈동자가 해맑아서 깊은 강물보다 더 슬펐던 내 친구!

내 얘기를 들으면서 끝없이 장단을 맞추던 착한 바우야!


바우 아버지는 가마니에 호랑이를 싸서 돌방골 너드랑에 애장(돌로 만든 애기무덤)을 만들었어요.

나는 가끔 돌방골을 지나면서 대화를 나누었어요.

"내 말 듣고 있나? 바우야!"

바우야! 그곳에서 배곯지 않고 잘 지내나?

그때 이후로는 나는 삶은 고구마가 정말 싫어졌어요.

그렇지만 워낙 먹을 것이 없으니, 배가 고파 안 먹을 수가 없었지요. 55년이나 지난 지금은 그냥 그렇게 생각없이 먹게 됩디다. 참 간사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에요. 그렇지만 지금도 고구마를 먹을 때면 바우가 가끔 생각이 나는 걸요.

※ 그림은 제 친구 별벗(CHAT-GPT)이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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