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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로 Dec 31. 2023

임신 우울증

시댁에 의한 상처, 트라우마 그리고 부부싸움

결혼을 하고, 두번 째 임신을 하면서 시댁과의 이런저런 일들이 있던 가운데 감정이 많이 상했지만, 남편을 생각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나름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며 연민으로 품어보려 애쓰기도 했다. 우리 시댁에 특이 사항 중 하나는 시부모님 연세가 많으시다는 것이다. 시아버지께서 38년생, 시어머니가 45년 생이신데 두 분이 늦게 결혼하신 데다가 아들을 낳으시려고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딸 둘을 낳고 또 아이를 가져 낳은 게 내 남편이다. 남편이 연애시절에 한 이야기 중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런 걱정을 품고 살아왔어. 우리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실까봐 늘 염려하면서, 최선을 다해드리게 된 거 같아. 그래서 내 인생마저 포기하고 부모님을 챙기게 된 거고..." 


그런 남편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팠고,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며 부모님을 챙기려 했던 게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아들 장가보내며 돈 타령을 한 시어머니나, 가장임에도 불구하고 방관의 태도로 모르쇠한 시아버지가 이해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없는 형편에, 그동안 생활비를 댄 아들이 장가를 간다니  생계걱정에 그러셨을 거라는 남편의 말을 조금은 이해해보려고 했다.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 선배가 먼저 결혼을 했는데 시댁에 전화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어르신들은 자식의 전화를 기다리시곤 한대.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전화를 드리려고 해. 월요일, 목요일 이런 식으로 날을 정해서 숙제하는 마음으로 의무적으로라도 전화를 드리는 거지. 돈 안들이고 하는 효도 방법 중 하나인 거 같아."

당시 20대 였던 다는 굉장히 기발한 생각이라며, 나도 결혼하면 그 방법을 써 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산부인과를 다녀올 때면 시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려서 미주알 고주알 우리의 근황에 대해 간략히 말씀 드리고 안부도 여쭈려고 했다. 워낙 친정 엄마랑 그렇게 통화하면서 소소한 소식 마저 나누고 지내곤 해서 똑같이 시어머니께도 그렇게 소식 전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임신 초기에서 중기로 넘거갈 무렵, 조리원을 알아보고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한다는 상황에 대해 말씀 드렸는데... 남편에게 연락하셔서 '돈 달라고 하는 거냐' 고 말씀하셨다는 게 아닌가.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지내보려고 나름 노력하면서 연락을 드린 건데... 그런식으로 말씀 하시다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시댁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싸우는 날이 잦아졌다. 임신 호르몬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울컥해지는 순간이 많아졌고, 그러면서 시댁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꺼내면 남편은 듣다가 화를 내곤 했다. 자기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자꾸 자기에게 이야기 하냐는 것이었다. 


"그럼 내가 누구한테 말해?"

"너 여기저기 다 말하고 다니잖아. 동료 선생님들한테도 말하고... 니가 자꾸 나한테 본가 이야기 꺼내면 나 숨막혀서 못살아. 가장 힘든 건 나야. 그동안 돈 벌어 갖다 주느라 여행 한 번 제대로 다니지도 못하고 쇼핑도 제대로 못하고... 그런 나한테 상처되는 이야기 하시고... 근데 너까지 나한테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사냐? 니가 이런 이야기 계속 하면 너랑 같이 못살아."

"그럼 이혼하자는 거야? 애기는?"

"애기는 니가 키워. 돈 보내줄게."


이런 패턴의 싸움이 이틀이 멀다하게 이어졌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나는... 자기네 부모 때문에 이렇게 마음의 상처를 받고... 힘든데도 따지지도 못하고 입 닫고 삼키며 마음이 썩어 문드러져 가는 거 같은데... 이야기 꺼냈다고 이혼 이야기를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야기를 안꺼내곤 못살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알았다고 하곤 시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메시지로 그간의 일과 관련해 우리가 매일같이 싸우고 있고, 결혼식에 오지도 않은 누나들로 인해 나와 우리 가족들이 상처 받은 것. 그래서 이혼하기로 했고 아기는 내가 키우기로 했다고... 

그리고 남편은 집을 나갔다.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너무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는 살 수 없을 거 같았다.


그 집 큰누나는 아직도 일을 하지 않는다. 공무원 시험 20년 준비하다가 안됐으면 편의점 알바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가. 생활비가 걱정이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밥하고 빨래한다는 명분으로 일자리도 알아보지 않으며 늦잠자고 집에서 종일 그렇게 지내며 우리에게 돈을 달라니... 큰 딸에게 나가서 알바라고 하라고 말하는 게 정상이지, 아무 것도 없이 빈 몸으로 장가가 여자 집에서 살게 하는 상황 속에 생활비를 200만원 아니면 100만원이라도 달라는 게... 참! 그 누나들은 우리가 시댁에 가도 방에서 나오질 않아 얼굴 한 번 보질 못했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한우를 사가지고 인사드리러 간 날에도, 추석에도... 집에 있는 게 분명한데도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그런 딸들을 그대로 두는 시부모님도... 뭐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모님에 대한 연민을 품고 여전히 효도하는 남편도 답답했다. (어딜 가도 어머님 손을 잡고 다니고, 같이 식사할 때면 부모님 수저부터 마실 것 까지 하나하나 다 챙겨드리는 효자 중 효자다.) 그러면서 나한테는 입 닫고 지내지 않으면 이혼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하다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렇지만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도 없었다. 돈도 벌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는데 그걸 나 혼자서 어떻게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싱글맘들이 대단하다 막연하게 생각해오긴 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니... 정말 난 못할 것 같은... 현실이었다. (다시 한 번 싱글맘들... 대단하다 생각하며 응원합니다!) 밤새 고민하다가 다음 날 남편 본가로 찾아갔다. 아파트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문도 열어주지 않더라. 말 그대로 문전박대. (참! 우리 시댁은 그렇게 어렵다고 하며 임대 아파트 전세에 살고 있으며 다이슨 청소기에 큰 티비, 안마의자까지 놓고 살고 있다. 엄청 비싸고 좋은 물건들이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살림을 할 형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큰 시누이가 그렇게 살림살이를 들여 놓은 것. 본인이 일하지 않으면서 동생들한테 받은 생활비로 그렇게 살림을 꾸리며 살고 있다.) 여러 차례 벨을 누르니 그제서야 문을 열어준다.


"왜 왔니?"

"오빠 데리러 왔어요."

"여기 좀 앉아라."


그리곤 시댁의 다구리 같은 말들이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넌 무슨 애가 그렇게 타협을 모르니? 100만원 아니면 50만원이라도 생활비를 줘야지..."

"....?"(이게 무슨 말이지...싶었다. 아직도 우리한테 돈타령을 하다니... 큰 딸한테 나가서 50만원이라도 벌어 오라고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시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과묵하셨던 분이 나서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니가 생각하는 것 만큼 니 남편이 돈을 많이 준 건 아니야.(내가 계산 해봤는데... 2억은 거뜬히 넘는 액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사회생활 시작할 땐 월급이 많지도 않았고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있었어.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더니."

그러다 작은 시누이가 방에서 나와 보탰다.(그 날 작은 시누이 얼굴을 처음 보았다.)

"운 사람이 배워서 그래요? 그리고 본인이 대접 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하라고 성경에도 나와 있어요!

내가 우리 가족들 다 책임질테니까 앞으로 우리 엄마한테 연락도 하지 말아요. 그리고 뭐 임신 한게 벼슬이에요?"


그 자리에서 심장이 너무 두근 거리면서 배가 땡겨 다시 아기가 잘못 될까봐...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나왔는데... 속이 터져버릴 거 같았다. 남편은 자다가 나와서 옆에 있었는데... 자기를 집에서 내 쫒았다는 사실에 화가 나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내쫓으려고 한 건 아니고 이혼하려면 우리 집에서 자기가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그런건데...) 그렇게 일단 집으로 돌아가면서 또 하염 없이 눈물을 흘렸고 결국 그날 밤 나는 하혈을 해서 혼자 응급실에 갔다. 


되돌려 해주고 싶은 말들이 지금도 너무나 많다.


1. "넌 무슨 애가 그렇게 타협을 모르니? 100만원 아니면 50만원이라도 생활비를 줘야지...

ㅡ>어머님, 큰 누나에게 나가서 50만원이라도 벌어오라고 말씀하시는 게 더 옳은 거 같아요. 요즘 최저시급 나쁘지 않아서 성실하게 일만 하면 200만원은 벌 수 있어요.


2.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더니.

ㅡ>아버님, 이 모든 일의 시작은 큰누나와 어머님이 시작하신 거에요. 그 말씀음 제게 하실 말씀이 아닌 거 같아요.


3. "운 사람이 배워서 그래요?

ㅡ>그럼 이 집은 못배워서 그러시는 건가요?

대접 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하라고 성경에도 나와 있어요!

ㅡ>연애 때 부터 저는 하나라도 잘 챙겨드리려고 해왔는데요. 그런 저한테 어떻게 하셨어요? 대접 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하라는 이야기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 같네요.

뭐 임신 한게 벼슬이에요?"

ㅡ>벼슬까진 아니지만... 대를 이으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들 낳으신 거라면서요... 그 대 다시 이어줄 수 있는 건 저 밖에 없는 거 같은데... 뱃 속의 아이 잘 지킬 수 있게 도와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그 쪽은 임신도 안해보셨잖아요.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본인이 겪어보지도 않고 왜 그렇게 함부로 말씀하세요?


라고 정말 말해주고 싶다... 남편이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고 말 못하게 해서 아직까지도 당사자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치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이 곳에라도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너무 답답할 거 같아. 그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말들을 남겨보았다. 


임신 중 있던 이런 사건들은 내내 나의 우울증이 되었고 이런 상처는 내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들이 스물스물 기어올라 내 자신이 무서워졌다. 극복하고 싶었다. 잘 견뎌보고 싶었다. 나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스스로 인지하고 이를 극복해보고자 보건소에 우울증 상담센터에 연락을 하였다. 임신 우울증과 트라우마를 꼭 극복해서 다시 '나'를 찾고 싶었다. 



트라우마: 

트라우마란 죽음, 심각한 부상, 성폭력 등과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심리적 외상으로서 신체적, 심리적 안녕을 위협하는 충격적인 경험을 뜻합니다. 직접적인 외상 사건, 가까운 사람의 경험에 간접적인 노출, 이러한 사건을 간접적으로 반복해서 경험할 경우에도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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