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몬순 Jun 15. 2019

여행이 가져다준 의외의 변화

눈은 기억하고 있었다.

[여행이 끝난 후 D+30일]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여행하는 꿈을 꾼다. 초반에는 비행기 놓치는 꿈을 자주 꿨는데 어제는 내가 무거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혼자 걷고 있는데 '강원도 정선이나 여행하면 되는데 왜 여기까지 와서 고생이냐'며 투덜거리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다 잠에서 깼다. 몸이 피곤할 때 이런 꿈을 꾸는 걸 보니 무의식 속 나도 이번 여행으로 어지간히 긴장하고 스트레스 받았었나 보다. 의식이 깨어 있을 때의 나는 좋은 것만 기억하려고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말이다. 힘든 여행으로 고생한 무의식 속 나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보내는 한편 그래도 여행을 갔다 오고 나서 긍정적인 변화가 조금은 있지 않았느냐고 격려해 본다.


그 변화라 함은 실로 의외의 것에서 발현되었다.


최근 쌍둥이 아가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며 짬 시간이 생기자 나는 그동안 손을 대지 못하고 있던 집안 청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몇 년간 지겨웠던 거실 배치도 바꾸고 물건들이 쌓여 발 디딜 틈이 없던 장난감 방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침실 방 화장대 유리도 들어내 씻고 잘 보이지 않는 냉장고 위나 전자레인지 위, 선반 위의 먼지도 다 닦아냈다.  


여행 중 네 군데의 숙소에 묶으며 느낀 것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사실이었다. 내부가 그럴싸하게 꾸며진 숙소도 주방이나 세탁기 청소가 잘 되어 있지 않으면 만족도가 떨어졌다. 보이는 인테리어만큼 보이지 않는 부분의 청소도 중요함을 절감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기본 가구 외에 일상생활 짐이 없는 숙소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우리 집 거실과 방에 쌓인 불필요한 짐들이 매우 거슬려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책 읽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는 욕심으로 거실에 빼곡히 꽂아 놨던 책들도 싹 걷어내 장난감 방에 넣어버리고 내 방 책상에 늘어놨던 책들도 향후 1년간 볼 책만 추려 놓고 나머지는 수납박스에 다 넣어버렸다. 


빈 공간이 주는 여유와 아름다움을 눈은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플라스틱 화분에 담긴 다육이들도 하얀 도자기 화분에 옮겨 심어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던 그림들도 거실 선반에 올려놓았다. 말간 얼굴을 내미는 다육이와 나의 그림들을 보고있자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집이 스트레스를 주는 공간에서 즐거움을 주는 공간으로 대 변신을 하는 순간이었다. 큰 아이도 이사를 안 갔는데 이사 간 것 같다며 좋아한다. 진작에 해줄걸 하는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이번에 여행을 가지 않았으면 몰랐을 공간의 미와 정리 욕구라는 생각도 든다. 비싼 돈 들여 감행한 여행이 또 이렇게 값어치를 하니 흐뭇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나의 일상은 여행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지만 집의 가구 배치와 소소한 인테리어를 바꿨더니 일상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틈만 나면 집에서 도망치려 했는데 이제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다. 돈을 들여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나의 작고 편안한 집에 행복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좋아하는 내 그림들
소소한 기쁨을 주는 다육이들


이전 13화 여행의 마법이 풀리는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