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임신한 아내가 구토를 심하게 해요."

[응급실이야기] 응급실 이용 팁 #8 산과 응급

브런치를 통해 응급실이야기를 쓰고 있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최석재입니다. 응급실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삶과 죽음의 갈래에 선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현장을 기록하고, 이를 통해 응급실이 어떤 공간인지 알리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멀어 보이는 시민과 의료진 사이를 이어주는 따듯한 소통의 장이 되리라 꿈꿔봅니다.


이번에는 산모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응급 상황과 대처 방법을 정리해 봤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아이 셋 낳느라 고생하고 지금도 신생아 보느라 고생하는 아내가 생각나더군요. 아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응급실 이용 팁, 시작합니다.







- 진통 말고도 임산부에서 나타나는 응급 상황이 있나요?


임신이라는 과정은 여성의 몸에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저도 학생으로서 배울 땐 실감하지 못하다가 아이 셋을 낳는 아내를 옆에서 보조하며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서도 다뤘지만 세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각각 위기 상황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 이번 산과 응급에 대한 설명이 자세해질 것 같습니다.


임신을 확인한 이후 첫 번째로 발생하는 위기의 대표 격은 아무래도 입덧이겠죠. 저희 아내도 매 임신 때마다 증상이 심해 옆에서 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구역 구토가 너무 심해 탈수가 진행되면 어쩔 수 없이 응급실의 도움을 받으러 오시게 되죠. 태아에 완전히 안전한 약물은 없지만 응급실에서 수액에 섞어 사용하는 Metoclopramide계 진토제는 FDA class B (동물 실험에서 안전성 확인) 약물입니다. 산부인과에서도 필요할 때 사용하고 있으니 수액치료만으로 버티기 힘들 정도로 심한 입덧은 약물치료의 도움을 받으시는 게 좋습니다. 보통 입덧은 임신 4-7주에 시작해서 20주경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주 이후에도 증상이 지속되면 다른 원인을 감별해야 합니다.


임신 중엔 혈역학, 내분비계 변화가 발생하면서 평소에 없던 질환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산모의 연령이 높아진 때에는 그 변화가 더 뚜렷하죠. 저희는 둘째 때 임신성 당뇨를, 셋째 때 임신성 고혈압을 진단받고 셋째 낳을 땐 임신중독증이라고도 부르는 전자간증 상황까지 발생했었습니다. 아무래도 나이 38세 산모에게 출산이라는 긴 여정은 녹록지 않은 것이겠죠. 임신성 당뇨는 거대아, 선천성 기형, 태아 사망의 확률이 높아지므로 철저한 혈당 관리가 요구됩니다. 하지만 임신성 당뇨에서 어려운 점은 경구 혈당제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죠. 대부분 경구 혈당제가 FDA class C (동물 실험에서 기형 유발, 사람에서 연구 없음)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운동과 식이요법에 실패하면 바로 인슐린 사용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인슐린 사용이 불편하긴 하지만 고혈당이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임신성 고혈압도 일반적인 고혈압 조절에 비해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고혈압 약물을 사용할 수 없어 필요하면 입원을 해야 하고 그냥 두면 산모에게 구토와 경련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합병증으로 전자간증, 자간증이 있는데 전자간증은 임신 20주 이상의 산모가 혈압 140/90 이상을 보이면서 단백뇨가 있거나 전신 부종 또는 다리의 부종이 심할 때 진단됩니다. 자간증 경련이 이미 발생해 태아에게 해가 됨에도 불구하고 항경련제를 쓰면서 응급수술로 태아를 꺼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임신성 고혈압에 의한 가장 흔한 사망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내가 셋째를 낳을 때 출산 예정일 한 달 전에 발생한 심한 구토로 응급실에서 소변검사를 확인했고 단백뇨가 확인되어 응급 분만을 결정한 경험이 있습니다.







- 그 외에도 알아두어야 할 임산부의 응급 상황은 뭐가 있나요?


그 외에 분만에 임박해 발생하는 응급 상황으로 태반 조기 박리, 전치태반이라는 상황이 있습니다. 질출혈이 주 증상인 상황으로 태반 조기 박리의 경우는 응급 분만의 적응증이 됩니다. 출산 예정일이 다가오던 중 갑작스러운 질출혈이 발생하거나 심한 복통이 발생하면 일단 응급 상황으로 간주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예기치 못한 응급상황이라서 산부인과 응급실을 찾지 못하는 경우라면 119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량 수혈이 필요한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대학병원 산부인과 응급실로 이송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만 후 응급상황이 있는데요, 자궁 무력증폐동맥 색전증을 설명드리고 마칠까 합니다. 정상적으로는 분만 후 자궁이 저절로 수축하면서 출혈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원활치 않으면 대량 출혈이 멈추지 않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학생 때 산부인과 교수님으로부터 자궁 안쪽에 주먹을 넣고 바깥에서 배를 눌러 지혈을 해야 한다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치료는 자궁 수축제 약물치료에 실패하면 바로 대량 수혈을 하면서 출혈의 원인이 되는 자궁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폐동맥 색전증은 본문에서 다룬 산과 응급질환입니다. 정상 분만 후 다리 쪽 큰 정맥을 누르고 있던 자궁의 무게가 소실되면서 엉겨 붙었던 혈전이 올라가 폐동맥을 막아버리면서 심한 호흡곤란과 열, 의식저하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임신 초기에서도 간혹 호흡곤란의 형태로 폐동맥 색전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태아 방사선 노출과 조영제 부작용 문제로 CT 검사를 확인하기 매우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초음파만으로 추정 진단해야 하고 치료도 색전을 녹이는 약물과 시술이 필요해 태아에게 해를 줄 수밖에 없어서 난감한 경우가 발생합니다.


쭉 들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산과 응급이 참으로 다양하고 진단도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태아의 생명과 산모의 생명을 모두 다뤄야 하는 데다 어떤 경우엔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다가 임산부 평균 연령은 점점 올라가고 있어 고위험 산모가 흔합니다. 건강하던 여성이 산모가 되면서 많은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에 산과 응급질환에 의한 사고가 났을 때 환자와 가족의 고통과 충격이 훨씬 큽니다. 이런 실정이라 산과 응급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호해주고 안전망을 마련해주어야 할 텐데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고위험 산모의 출산을 도와줄 산과 의사가 없어서 전전긍긍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제 얘기가 인식의 변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임신 중에 사용할 수 있는 약물에 대해 알려주신다면요?


앞에 진토제 얘기가 나왔지만 모든 약이 태아에게 해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임신 극초기인 1-2주에는 만약 약물에 의한 기형이 발생한다면 유산이 되는 경우가 많고 8주 이후에는 장기 형성 시기가 지나 구조적인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3주-8주에는 가능한 한 약물 투여를 피하시는 게 맞습니다. 약 한 두 번 잘못 복용했다고 인공 임신중절을 고민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 약물에 의한 기형이 발생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약물을 모르고 복용했다 하더라도 미리 걱정하지 말고 우선 산부인과 전문의와 상의하시면 되겠습니다.


증상별로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소화기계 약물입니다. 소화제와 제산제는 class C 약물이 많아 임신을 확인한 이후라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실제 태아에게 기형을 일으켰다는 보고도 없기 때문에 모르고 복용했다 하더라도 인공 임신중절을 고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진토제는 설명드렸듯이 class B 약물인 Metoclopramide계 약물을 사용하게 됩니다. 변비 완화제는 특별히 금해야 할 약은 없고 둘코락스-S, 듀파락 등의 약물 사용이 가능합니다. 설사를 줄이는 지사제는 로페린, 스멕타 정도는 사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감기약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단 경한 감기 증상에는 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감기약은 대부분 대증치료이기 때문에 감기를 빨리 낫게 해주는 역할은 없습니다. 너무 심한 증상인 경우만 조절한다는 생각으로 사용하는 것이 맞습니다. 일단 해열제로는 타이레놀이 가장 안전하게 사용 가능합니다. 진해 거담제는 생약인 시네츄라 시럽을 사용할 수 있고 꼭 써야 한다면 코푸 시럽이나 뮤테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콧물 재채기를 줄이는 항히스타민제는 대부분 class B 이므로 필요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진통제의 경우 아스피린은 태아에 기형이 보고되어 있어 사용이 금기시됩니다. 그 외 NSAIDs 계열 진통소염제인 부루펜 등은 임신 초 중기에는 사용이 가능하지만 임신 말기에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진통 목적으로도 타이레놀이 가장 안전하게 사용 가능합니다. 그 외의 약물은 증상과 임신 주수에 따라 산부인과 전문의와 상의 하에 결정하고 투약하시는 것이 맞겠습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226607
응급실이야기와 응급실 사용 설명서가 모여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났습니다.

책이 나오기까지 사랑과 배려로 지켜봐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전 07화 "아이가 열이 나요, 경련을 했어요, 구토가 계속돼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