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소설 #참회 #잔상
방도현 차사는 잔뜩 화가 난 채 이번에는 훈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묵직한 주먹들이 또다시 훈에게 꽂히기 시작하였다. 훈은 양 팔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지만 이번에는 복부에 주먹이 들어오자 극심한 고통과 함께 숨이 막혀 왔다. 그대로 그는 주저앉게 되었다.
"켁켁"
잠시 그의 주먹질이 멈춰지자 훈이 고통 가운데 그를 쳐다보니 학수가 그의 등 뒤로 올라타 목을 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번에 그를 유도 기술로 앞으로 넘겨뜨렸다. 학수는 힘없이 내 동대가 쳐졌다. 그때, 커다란 총소리가 입구 쪽에서 들려왔다. 훈이 눈길을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왠 검은 정장을 입고 총을 겨누고 있는 여성이 보였다.
"방차사님이 그만하시죠. 다 확인했습니다. 인가받지 않은 채 여기로 넘어오셨더라고요."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단호한 어투로 방차사를 향해 말하였다. 반대편 카운터 쪽에서는 커다란 덩치의 오차사와 막내 김차사고 총을 겨누며 들어와 있었다. 방차사는 양손을 든 채 너털웃음을 짓는다.
"하하. 이거 참 곤란하게 되었네" 웃음을 짓고 있지만 방차사의 눈알은 이리저리 굴리며 다음 계획을 머릿속으로 짜고 있는 게 보였다. 학수와 훈은 쓰러진 채 어안이 벙벙한 듯 양 옆에 총을 겨누고 있는 저승사자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다 끝났습니다. 그만하시죠. 오차사 수갑 채워"
"예, 팀장님"
오차사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방도현 차사 앞으로 다가갔다. 방도현은 여전히 양팔을 올리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압도되는 분위기에 오차사는 마른침을 삼키었다. 어느새 방차사와의 거리가 3m 정도가 되었다. 가까이 서니 190cm가 훌쩍 넘는 오차사의 큰 키가 더욱 압도되어 보였다. 그가 잠시 총구를 내리고 총을 왼손으로 옮기며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있는 수갑을 꺼내려했을 때 순식간에 방차사가 발로 그의 무릎의 옆 부분을 강하게 걷어찼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차사가 균형을 잃고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자 방차사는 오른손으로 그의 왼 손을 꺾어 총을 순식간에 빼앗고 왼쪽 팔꿈치로 그의 관자놀이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격하였다. 오차사는 짧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방차사는 빼앗을 총을 들고 몸을 날려 진열대 아래로 숨으며 이영희 차사쪽으로 총을 두 방 쏘았다.
가까스로 총알은 이영희 차사 옆으로 스쳐 지나갔고, 이차사와 당황한 막내도 진열대를 엄폐물 삼아 몸을 숨겼다. 그러고 나서 그들도 방도현 차사가 있는 쪽을 향해 대응 사격을 하였다. 진열대 위에 놓여있던 빵들이 총알에 튀어 오르거나 쟁반들이 부서지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방차사는 그들의 맹공격에 최대한 몸을 낮춰 반대편 방향 쪽으로 최대한 기어갔다. 마치 최형사가 죽던 날 밤, 그를 죽이려 할 때 부둣가에 있던 물속에 뛰어들어 필사적으로 총알들을 피하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 난장판 속에 방차사는 기어가면서도 그날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하자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허억허억... 정말..."
방차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벽 모서리 쪽에 몸을 숨기며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그리고 날아오는 총알이 잠잠해지자 이번에는 그가 그들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이차사와 김차사가 있던 방향으로 각각 한 방씩을 쏘았는데 너무도 예리하게 총알이 날아들며 그들 역시 몸을 숨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저승사자들의 출현과 함께 방도현이 그들과 싸우는 사이, 쓰러져 있던 학수와 훈은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 그들을 번갈아 가며 살펴보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학수 역시 오른쪽 눈덩이가 부어올라 거의 반 정도가 감긴 상태였고, 입가는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훈은 굳게 다문 입술로 그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천천히 기어서 이영희 차사 뒤편에 있는 문쪽을 향하였다. 그들 앞에 쓰러져있던 큰 덩치의 오차사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오른쪽 관자놀이를 한쪽 손으로 문지르며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학수와 훈은 부지런히 이차사의 옆을 지나 문 앞까지 기어가게 되었다. 순간 이차사와 훈이 서로 눈이 마주쳤다. 이차사는 잠시 멍하니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뭔가를 생각해내려 하는 듯하였으나 그게 생각처럼 되지는 않는지 미간의 주름이 살짝 잡히다 고개까지 갸우뚱거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또다시 날아오는 총알에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훈과 학수는 조심히 문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눈부신 햇살이 그들의 피부에 닿아 상처부위를 어루만져주는 것만 같았다. 마치 깊은 물속에서 숨을 참았다가 물 위로 박차고 올라온 것처럼 그들은 커다란 숨을 내쉬며 잠시 그렇게 걸터앉아 있었다.
"후우.. 아니 그냥 가라니깐. 왜 다시 돌아와?"
조금도 원망이 섞여있지 않은 학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의리를 빼면 논할 게 없어서 말이지."
훈도 가볍게 숨을 내쉬며 답하였다.
"그래 나를 용서해 주는 겐가?"
"이 사달이 날 정도인데 대체 왜 그랬는지는 말 안 하여 줄텐가?"
"말할 걸세. 다만 이 여행이 끝날 무렵에 말을 해줘야 자네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허허 자네는 죽어서도 여전하구먼."
"죽으면 뭐 다른가?"
그들이 잠시 기대어 쉬는 사이 주차장 사이에서 자동차 한 대가 그들에게 오기 시작하였다. 소연이 탄 차였다. 그녀는 먼발치에서 훈과 학수를 보고 그들을 데리러 운전대로 옮겨와 운전을 한 것이었다. 차가 멈추고 소연이 내려 그들을 부축하였다. 훈의 얼굴을 보며 그녀는 그렁거리는 눈망울의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그에게 잠시 안기었다.
"괜찮아.. 괜찮아. 걱정 마. 여보. 고생했어."
자동차에 타게 된 그들은 미끄러지듯 그 장소를 빠져나오게 되었다.
그들이 떠난 빵집 안에는 여전히 방차사와 이차사 일행과 대치중이었다.
"이제 그만하시죠. 곧 지원 부대도 도착예정입니다."
"이렇게 쉽게 포기할 거였으면 내 시도도 안 했겠지. 자넨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군. 꽉 막혔어"
방차사는 이차사 쪽을 향해 소리쳤다.
"자네도 사연이 있지 않아? 그래 자네 아들말이야"
그의 말에 이차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였으나 다시 단호히 말하였다.
"선배 지금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 없습니다. 그만 투항하세요"
그 말이 끝날즈음 창 밖으로 여러 대의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차량이 멈추는 가 싶더니 문이 열리면서 수십 명의 발자국 소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윽고 정문과 뒷문에서 수십 명의 저승사자들이 뛰어들어왔다.
그 선두에는 커다란 덩치의 성난 사내가 서 있었는데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씩씩 거리고 있었다.
"여기 김혁이 왔나?"
"김혁?"
이차사는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도 놀랐으나 김도운의 입에서 나온 그의 이름으로 인해 그녀는 어떠한 상황이 벌어졌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하아... 김혁"
이차사는 고개를 설레 흔들더니 김도운 차사에게 다가가 현재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김도운 차사는 깜짝 놀라며 방도현 차사가 몸을 숨긴 벽 쪽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 이 난장판에 형님까지 대체 왜 그러시우? 지금 여기서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잖수?"
그는 답답한 듯 소리쳤다.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라... 후우.. 그렇지'
방차사는 테이블 아래 몸을 숨긴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발아래는 햇살이 들어와 있었고, 깨져버린 창가에 있었던 커튼이 잔잔한 바람에 넘실거리고 있었다. 반짝이는 햇살이 커튼에 막혀 방차사의 앞에는 검은 그림자가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검은 그림자가 마치 최형사가 입고 있었던 검은 재킷이 떠올랐다.
'최형사...'
애초부터 갖고 있던 계획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천국에서 누군가 탈출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그 자가 갖고 있는 구슬이 환생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거기까지는 그에게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저 환생을 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그저 달갑지 않은 삶에 또다시 들어가는 것이기에 말이다. 하지만 그가 데리고 있던 후임의 말에 그의 생각이 순식간에 바뀌게 되었다.
"형님. 아 글쎄 엊그제 까지 같이 일했던 규석이 놈도 탈영을 했다고 합니다."
"왜?"
후임은 평상시 무뚝뚝한 방도현 차사가 대꾸하자 뻐등러니를 드러내며 누가 들으면 큰일이라도 난 다는 듯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린 채 속삭이듯 말하였다.
"그 천국에서 도망친 놈이 갖고 있는 구슬 있잖아요. 그 천국에서 나온 구슬은 환생은 물론이고, 자신이 원하는 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방차사는 뭔가에 두드려 맞은 듯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반응에 신나는 듯 후임은 그 뒤로 이어서 말을 하였지만 방차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후임의 멱살을 붙잡고 물었다.
"그.. 그게 사실이야? 어느 놈이 그래?"
천국과 저승은 엄격히 분리된 곳이라 대부분은 확인이 되지 않은 뜬소문들이 많이 퍼진다는 것이 다반사임을 방차사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방차사가 늘 생각하고 바라왔던 일들을 단번에 이룰 수 있는 소문을 듣게 되자 그도 모르게 이성을 잃고 후임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마치 이 소문만큼은 거짓이라면 단 한놈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서슬 퍼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렇게 방차사는 모든 일들을 뒤로 미룬 채 천국 구슬에 대한 조사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조사하고 확인하였다. 하지만 확신이 될만한 단서는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방차사는 최형사와 그가 죽던 항구에 밤늦게 거닐고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뿌연 안개가 항구를 감싸고 있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텅 빈 고요함 속에 바닷물의 소리만이 채워지고 있었다. 방차사는 최형사가 쓰러져 있던 장소에서 서서 안 주머니에서 투명하고 조그마한 미니 양주를 꺼내었다. 나폴레온이라는 빨간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후우... 최형사. 천국의 구슬만 있으면 다시 되돌릴 수 있다고 하네."
홀로 말을 내뱉으면서도 자기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그는 말을 끊고 조금 전 꺼냈던 양주의 뚜껑을 열고 한 입 들이켰다.
"분명 네가 옆에 있었으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며 증거를 대라고 난리 쳤겠지?"
"나도 뭐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어쩌겠냐? 내가... 내가...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흑흑.. 이거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아.."
방도현 차사는 그날 항구에서 홀로 내뱉었던 그날을 다시 떠올리며 미소를 떠올리고 말았다.
"형님. 투항하시죠. 제가 염라대왕이든 베드로든 같이 가서 선처를 구해볼 테니 여기서 우리끼리 이러지 맙시다."
김도운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방차사를 향하여 소리쳤다. 우렁찬 그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방차사는 여전히 멍한 시선으로 바닥에 넘실대는 커튼의 그림자를 보며 홀로 웃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혼잣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내.. 내가... 너무 미안해서.. 시작한 건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어."
"그래요. 알아요. 형님.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랬겠어. 내가 다 안다니깐."
김도운 차사는 방차사가 그에게 말한 걸로 생각하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방차사는 그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혼잣말을 계속해서 내었다.
"내가 항상 그렇지. 사고만 치고.. 동진아.. 내가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이번에도 어떻게든 되돌려서 널 꼭... 살리고 싶었는데."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이차사가 뭔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방도현 차사 있는 쪽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하였다.
"다음 생이 있다면 나는 만나지 마라."
방차사는 마지막 말을 내뱉더니 총구를 그의 머리로 겨누었다. 이차사가 손이 그에게 닿기 전 그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와 동시에 그는 조금씩 검은 재가 되며 사라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