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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상 Nov 03. 2024

#15. 배신과 의리

#파노라마 #소설 #배신과 의리 #잔상

최형사는 방도현을 노려 보며 소리쳤다.

"방도현 형사, 당신이 어떻게.. 어..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어? 마약 조직과 손을 잡고 이제는 같은 경찰까지 죽이겠다고? 이 개새끼야!!!"

최형사는 잔뜩 흥분한 채 침을 튀기며 방도현에게 소리쳤다. 그의 일그러진 얼굴은 다리에 생긴 총상의 흔적이 아니라는 것이 방도현의 눈에 다 보여 차마 계속해서 그의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어서 끝내세요. 방.도.현 형사님" 최형사의 말은 들리지도 않은 듯 중간 보스인 남자는 방형사에게 총을 겨눈 채 말하였다. 방도현은 잔뜩 흔들리는 총구에 다른 한 손으로 잡아 울기 시작하였다.

"방도현 이 나쁜 새끼야!!"

"그.. 그만해!!!"

그의 고함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총알이 총구에서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오더니 정확히 최형사의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 최형사는 총알이 그의 머리통을 뚫고 지나갔지만 잠시 그것조차 인지도 못하였는지 두 눈을 부릅뜬 채 그의 모습을 쳐다보다 잠시 후 쓰러졌다.

"잘하셨어요. 방형사님! 얘들아 잘 찍었냐?"

"네 형님"

그들 중 누군가 휴대폰으로 방형사가 총을 쏘는 장면을 녹화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방도현은 쓰러진 최형사만을 바라보며 힘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른 사내들이 차에서 꺼내온 커다란 비닐을 꺼내어 쓰러져있는 최형사 시신으로 다가갔다. 그때, 그들 중 한 명이 최형사의 몸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소리쳤다.

"혀.. 형님!! 휴.. 휴대폰이 토.. 통화가 연결되어있습니다."

그는 황급히 휴대폰을 중간 보스에게 가져다주었다. 휴대폰에는 이반장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고, 통화가 연결되어있었다. 그 수화기 너머로는 쉰 목소리의 남자가 '최형사'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는 얼른 위치 추적을 해서 찾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중간 보스 남자는 휴대폰의 통화종료를 누른 후,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발로 밟더니 다시 휴대폰을 바다에 던졌다. 재미있다는 듯 한바탕 크게 웃어댔다. 그의 급작스런 모습에 모두가 잠시 멈춘 채 그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동안 그렇게 웃더니 방도현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어휴.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형사님. 미안하게 됐어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방형사에 총을 쏘았다. 총알이 방형사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방형사는 육중한 몸을 날려 바로 바닷물로 몸을 날렸다. 이윽고 물 위에서 총알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일직선으로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방도현은 총알들을 간신히 피하며 더욱 깊숙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하아.. 산적 같은 놈이 몸은 겁나 빠르네. 하긴 지 살겠다고 동료까지 죽인 놈인데. 일단 짭새가 곧 뜰 테니 이 자리를 뜬다. 그놈은 날 밝은 대로 다시 찾아"

"시신은 어떻게 할까요?"

중간 보스 남자는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한번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그냥 놔두고 간다. 어차피 전화기 통해서 방도현형사가 쏜 것도 다 알고, 총도 방형사 그놈의 것이니깐. 우리가 구태여 시신을 치워줄 필요는 없지"

그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다듬고 그의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후 그 자리를 벗어났다.

10여분이 흐른 뒤, 방도현은 다시 그 근방으로 올라왔다. 초가을이었지만 바닷물이 차가워 몸이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떨리며 이빨이 저절로 부딪힐 정도였다. 그는 오른쪽에 스치고 지나간 상처 위에 손을 올린 채 절뚝거리며 쓰러져 있는 최형사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죽기 직전의 모습처럼 여전히 두 눈을 부릅뜬 채 하늘을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내... 내가 어쩌다... 흑흑 동진아.. 내가 미안해 내가 미안"

방형사는 최형사를 끌어 안은채 오열을 하였다.  그 사이 멀리서 여러 대의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방도현은 다시 조심스럽게 최형사를 눕혀놓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었다. 물에 젖은 담배는 물렁거리기까지 하였다. 라이터를 꺼내어 몇 번이고 부싯돌을 비벼대 보지만 결국 불이 붙지 않는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었고, 희미한 가로등에 아까 급히 몸을 피하느라 떨어뜨리고 간 권총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기다시피 하여 권총으로 다가가 힘겹게 집어 들었다.

"동진아. 미안한다."

그는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총구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갖다 대며 크게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더니 결국 방아쇠를 당기었다.


[푸른 언덕 베이커리]

"그럼 이 새끼는 필요 없네?"

방도현차사는 총구를 쓰러져 있는 훈에게 겨누었다. 그때 다급한 목소리로 학수가 소리쳤다.

"내 친구를 죽이면 너도 구슬은 못 가져!"

방도현은 자신의 계략에 걸려들었다는 생각에 씨익 웃으며 학수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느새 구슬이 들어있는 가방을 꺼내었고 한 손으로는 천사경을 그 가방 쪽으로 겨누고 있었다.

"털끝 하나라도 건든다면 이 구슬들도 모조리 박살 나는 거야"

"이야 친구와 네 구슬을 두고 거래라. 눈물겹구먼"

방차사는 훈을 향해 총을 겨눈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훈은 힘겨운 듯 상반신만 겨우 일으켜 진열대에 몸을 기댄 채 방차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훈아. 소연이를 데리고 어서 나가"

학수는 조금은 떨리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훈에게 소리쳤다. 훈은 시선을 돌려 학수를 바라보았다.

"자.. 자네는 어떡하려고?"

"설마 죽었는데 또 죽겠는가? 대신 이번에 내가 무사히 나가면 나 좀 용서해 주게."

"자네 구슬이 없어지면 자네 기억을 잃거나 잘 못 되는 거 아니야?"

"하도 질리게 기억을 봐서 이제 지겹기도 하고, 저 놈 말대로 난 천국에서 나왔기 때문에 언제든 환생이 가능해. 그러니 내 걱정일랑 말고 어서 소연씨를 데리고 나가게."

훈은 소연이 쓰러진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소연도 정신을 차리고 카운터 쪽 아래서 몸을 기대고 있었다.

"하지만..""어서!! 나가라고!!"

학수가 소리쳤다. 그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잔뜩 부풀어있었다. 훈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진열대를 부여잡고 힘겹게 일어났다. 몸을 일으키니 마치 온몸을 얻어맞은 듯 쑤셔왔다. 그는 발을 질질 끌며 힘겹게 카운터 밑에 앉아있는 소연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그때, 그들의 등 뒤로 방차사의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들려왔다.

"지금 한가하게 놀러 온 줄 알아? 보내줄 때 얼른얼른 꺼져라"

방차사는 지금 이 광경에 조금은 화가 났다. 마치 그가 예전에 했던 선택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방차사는 여전히 총을 겨눈 채 자꾸 그의 안에서 떠오르는 그 생각을 떨쳐내려고 용을 썼다.

"조.. 조심해"

훈은 소연을 부축하여 학수를 지나 입구문까지 도달했을 때 살며시 돌아보며 이야기하였다.

"걱정 말라니깐. 나 용서해 주는 거지?"

"요. 용서는 무슨."

입구문을 나서자 밖은 마치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분명 베이커리는 시내 한 복판에 있어 사람들과 자동차들로 북적거렸으나 처음부터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휑하였다. 훈은 소연을 부축하며 물었다.

"여보.. 괜찮은가?"

"네.. 당신이야 말로 괜찮아요? 어휴.. 피봐.."그들은 힘겹게 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훈은 그의 마음속의 불편한 뭔가에 시동까지 걸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돌아간 들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자문을 구해봤지만 그렇다고 친구를 남겨두고 이렇게 가는 것은 그로서는 용납할 수 없었다.

"하아... 여보. 정말 미안한데..""알아요. 여보. 다녀와요. 차 문 걸어 잠그고 경찰에 신고하고 있을게"

소연은 다 안다는 듯 입을 굳게 다물고 나긋한 눈빛으로 훈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래도 되겠어?"

"어휴 어차피 내가 아무리 말려도 내 말을 듣지 않을 그 표정인데 어찌 제가 말리겠어요"


[푸른 언덕 베이커리 안]

"자.. 친구들도 갔으니 이제 내놓으시지. 네가 날 속이고 저 문 밖으로 도망가도 소용없는 거 알지? 내가 끝까지 쫓아가서 다 죽여버릴 거야"

방차 사는 이번에는 총을 천사경 쪽을 겨누며 학수에게 말하였다.

"후우 그래."

학수는 힘을 다한 듯 한숨과 함께 답하였다.

"우선 천사경부터 조심히 내려놓고 이쪽을 향해 발로 차"

학수는 천천히 천사경을 바닥에 내려놓고 방차사를 향해 발로 힘껏 밀었다.

"그런데 굉장히 절실한 가보네."

"또 뭔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하려고 그러시나? 막상 친구 보내고 나니깐 후회되냐?"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기억리셋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저승사자의 결계를 쳤다는 건데 그러면 다른 저승사자들에게도 '나 여기 있소' 밝히는 꼴이지 않나?"

학수는 처음에 훈을 만났을 때처럼 히죽거리며 말하였다.

"제법 이 쪽 세계를 아는 놈인가 보네. 그래도 뭐 그들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 네 놈 구슬 가져가고 사라질 정도의 여유는 있어"

방차사는 마치 시계를 보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면서 마찬가지로 히죽거리며 응수하였다.

"잡담은 여기까지. 이제 구슬가방을 천천히 가지고 앞으로 와라"

학수는 조금 전까지 히죽거리던 미소를 거두고 입을 굳게 다문 채 천천히 방차사 앞 쪽으로 걸어 나갔다. 한걸음 한걸음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멈춰. 거기에 가방을 내려놓고 넌 다시 뒤로 빠진다."

방차사는 총을 겨눈 채 빠른 발걸음으로 가방 앞에 섰다. 검고 짙은 가죽의 가방이 바닥에 놓여있었다.

'그래 저 구슬이면 다시 그날로 환생해서 최형사를 구하는 거야. 내가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방차사는 그 짧은 거리를 걷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였다. 그 역시 환생의 숨은 뜻이 있었다. 다른 차사들이 알 수 없도록 은밀히 사람들의 구슬을 빼앗았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천국에서의 출가 소리를 들으며 방차사의 심장은 두근거리게 되었다. 사실 그에게는 사건에 대한 수사 명령이 떨어진 게 아니었다. 그는 천국의 출가 소식을 듣는 즉시 당국에 알리지도 않은 채 나온 것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놓인 검은색 가방의 손잡이를 잡았다. 미지근하면서 부드러운 가죽으로 감싸져 있는 손잡이가 매끄럽게 느껴졌다. 그는 천천히 가방을 열었다.

"엇?"

가방 안은 텅 비어있었다.

"아.. 아니 이게"

방차사는 텅 빈 가방을 보고 깜짝 놀라 잠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

"천국에서 나올 때 가져온 구슬인데 내가 쇼핑하듯이 가방에 넣고 다닐 줄 알았어?"

앞에서 장학수의 히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차사는 순간 속은 것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사라고 똑똑한 것은 아닌가 보군"

순간 방차사는 주먹을 날려 학수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하였다. 학수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지며 뒤로 몇 발자국 밀려났다.

"이 자식이 지금 장난치는 줄 아는가 본데. 빨리 내놔라"

방차사는 순식간에 그의 멱살을 다시 잡아 조금 전 훈을 가격할 때처럼 주먹으로 매섭게 그의 얼굴을 계속해서 강타하였다.

"빨리 말해. 이 새끼야. 너는 물론이고 아까 네 친구 놈도 끝까지 쫓아가서 죽여버리려니깐"

방차사의 분노가 담긴 주먹은 끝없이 학수의 얼굴을 가격 하였다. 학수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되었지만 웃으며 말하였다.

"하여 하아.. 내.. 내가 천국에서 그냥 마실 나온 거 같냐? 허억"

그때 방차사의 등 뒤로 커다란 충격이 가해지며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분노로 일그러진 방차사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 한채 뒤를 쓰윽 바라보았다. 뒤에는 훈이 부서진 의자의 일부분을  꽉 붙잡고 서 있었다.

"캬아. 이 것들이 쌍으로 미치게 만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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