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개발의 역할 1
나의 직장생활 중 최근 7-8년 정도는 IT 업계에서 사업개발의 역할을 했고, 사업제휴 팀장을 하기도 했다. 그간 내가 담당한 프로덕트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일부 성과를 거두거나, 일부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네이버에 있을 때는 대부분 이미 커버린 서비스에 올라탔었고, 현재 내가 있는 스타트업은 아직 큰 성공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덕트의 성공을 위해 판을 키우는 일, 사업개발의 관점에서는 크고 작은 성과들을 거두었다. 성과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를 견지했던 마인드셋, 사업개발의 자세 몇 가지만 공유해보려고 한다.
항상 그렇듯 시장과 투자자는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받아 든 일정은 빠듯하다. 프로덕트 개발 기간 동안, 당초 계획했던 출시 스펙 그리고 자비 없는 일정 둘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멤버들이 야근을 하지만, 결국 출시를 앞두고 스펙을 후려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세상에 나온 것은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 기능 제품)라는 면피용 포장지로 감싼.. 세상 초라한 것이었다. 내가 받아 든 것은 대부분 그런 모양새였다.
회사 내부에 초기 제품 상태가 구리니까 사용자가 없어도 된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사업개발자(혹은 PO)를 쳐다보며 물을 뿐이다.
"oo님, 초기 확산 계획 어떻게 세우고 계세요?"
'이런 X, 이렇게 만들다 만 걸 누가 쓴다고 팔아오래, 니들이 한번 팔아봐라!'
대표와 프로덕트 관련자들 앞에서 속마음을 말할 수 없다. 왜냐, 이것은 폼(가오)의 문제다.
팔다리가 생기다 만 프로덕트를 받았더도 어떻게든 팔아와야 하는 것이 담당자들의 일이다. 잘 뜯어보면 셀링 포인트 하나는 있기 마련이고, 지금은 부족해도 로드맵이 창창하니까 그 가능성을 어필할 수 있고, 이 반쪽짜리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 있을 것이고(그렇게 희망회로를 돌려보자), 정히 답이 없다면 지금까지 알고 지낸 제휴사와 지인들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누군가는 우리를 도울 것이니, 이미 프로덕트가 나온 이상 안된다는 말은 안 된다. 이는,무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서비스의 부족함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 때는 작은 성과라도 가져온 뒤여야 한다. 이를테면 이렇게...
"A사 담당자가 우리 서비스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했지만, 로드맵을 잘 설명했더니 이용해 보겠다고 합니다. 쉽지 않았어요... (그제야 죽는 소리를 덧붙임)"
아쉬운 제품에 대한 불평은 잠시 넣어두고, 사업개발의 역할을 맡았다면 닥치고 성과를 내야 한다. 프로덕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넘어올만한, 아니 넘어와야 하는 상대를 찾는다. 각 상대에 맞게 관심을 가질 기능을 강조하고, 이후의 청사진(로드맵)을 펼치고, 후킹할 혜택을 넣어서 제안서를 꾸린다. 이 상황에서 내가 강조하는 것은, 규모감 있는 혹은 영향력 있는 타겟을 찾는 것이다.
여기서 생길 수 있는 질문..
1) 아직 초기인데, 규모감이 중요한가? 다양한 사람들이 골고루 쓰게 하고 반응을 보는 게 맞지 않나?
- 프로덕트 성장 관점에서도 규모감 있는 사용자를 데려오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담당자 입장에서도 무리를 해서라도 초장에 규모감 있는 성과를 가져와야 한다. 그래야 사업 담당자의 행보, 의사결정에 힘이 실린다. 그래야 사업개발 담당자가 '여기랑 만나고 있습니다. 저기 좀 만나보려고요.' 라고 할 때 대표와 관계자들의 머리 위에 생기는 물음표(대체 언제 터지지? 하는 생각)를 잠재울 수 있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데려와 사업을 전개하면 대표와 구성원들에게 말이 먹히질 않는다. 일단 한 뭉탱이 가져다 놓고 나서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을 하자.
2) 아직 기능이 부족하여 영향력 있는 타겟에게 가져가면 까이기만 할 텐데?
- 맞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기능이 부족하다고 컨택을 못해볼 것도 아니다. 먼저 공략 타깃을 중요도 측면에서 나열해 보자. 1순위 그룹과 2, 3순위 그룹으로 나누고 이후 출시 스펙을 살펴보자.
- 1순위 그룹의 사업 파트너들 숫자가 충분히 많다면, 일단 하나씩 찔러봐도 좋다. 기능이 부족하더라도 제공할 특전(혜택, 예산)이 충분하다면 누군가 하나가 걸릴 수 있다.
- 프로덕트 로드맵을 파악한 뒤, 출시 스펙에서 빠진 기능 중에 잠재 파트너사들에게 먹힐만한 기능이 있을지 살펴보자. 그 기능이 출시 전까지는 2,3순위 그룹을 먼저 공략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장의 반응을 본 뒤, 해당 주요 기능이 배포되면 1순위에게 컨택하자. 기능이 구리다고 가만히 놀 수는 없다. 그렇다고 좋은 패를 먼저 써도 안 되는 것이다.
회사도 다 안다. (말하지 않을 뿐) 시장에 내놓기에 부족한 서비스가 나왔다는 것을. 그렇다고 손가락 빨 수는 없지 않은가. 완벽한 프로덕트로 사업을 전개하는 것은 이상적인 이야기다. 믿을만한 사업개발자라면, (불평불만은 사업개발 팀 내에서 하고) 회사와 경영진에게 그럴싸한 시작점을 제공하여 투자자를 안심시킬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회사와 PO에게 서비스를 완성도를 높여나갈 시간을 벌어주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