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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gongnyeon Aug 09. 2023

집을 좀 찾고 있어요.

좋은 곳에서 조용히 쉬고싶었다. 델리에서 심라로 넘어가는 야간버스에서 잘잤다. 정말 잘잤는데, 피곤했다. 피곤한 심신으로 하루 온종일 보내는 그런 여행을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2+1(하루를 밤새면 이틀은 죽어) 체력이라는걸 알게 됐으니까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구글맵을 켜 심라에서 북쪽으로 3시간~4시간정도 떨어져있는 마을을 찾았다. 그 마을에는 오로지 호텔 호텔 호텔 뿐이었다. 내 지갑은 호스텔 도미토리 믹스룸인데, 거기서 조금 더 사치를 더해 여성전용 도미토리일뿐인데. 내가 가고자하는 거리에 있는 마을은 돈은 돈대로 비싸고, 못생긴 호텔이 너무 많았다. 수요가 없으니 공급이 너무 후지다. 비싸고, 후지다. 안가고 싶어진다. 어차피 돈 쓸거면 예쁜데서 편하게 쉬고 싶어서 에어비앤비에서 검색했다. 그러다 이 숙소 무조건 가야해, 갈거야. 그런 숙소를 만났는데 가는길이 애매하다. 버스정류장에서 숙소까지 3KM인데 비싼 숙소비에 택시비까지 쓸려니 마음이 아린다. 시골이니까 택시 잡기도 어려울거라 생각해서 호스트에게 픽업을 문의했고, 흔쾌히 허락해줬다. 근데 에어비앤비 결제가 자꾸만 안된다. 친구 찬스로 한국에서 결제 시도 요청했는데도 안된다. 에어비앤비 니가 문제냐 내 계정이 문제냐. 1시간을 씨름하다 호스트에게 만나서 직접 결제하는걸로 합의보고 노트북을 덮었다. 내 마음은 무조건 가는건데 선결제가 안 된 상태라 호스트가 내 마음을 못 읽었을까봐 조금은 두려웠다.


가는 길 내내 호스트는 에어비앤비 메세지로 위치를 물었다. 그때마다 현위치를 캡쳐해서 보내줬다. 호스트는 한국인 게스트는 처음이라며 설렌다고 했다. 가족끼리 살고있는 집이지만 아저씨라 조금은 무서웠다. 가족원들 다 여행가고 아저씨만 덜렁 있는거 아니겠지? 나는 아직도 미디어로 접한 인도가 지배적이라 두려웠다. 슈퍼호스트라는 배지와 다른 게스트들의 찬란한 리뷰로 내 마음을 달랬다. 가는 내내 나를 신경써주고 있다는게 너무 고마웠다. 도착한 정류장에는 어떤 차가 한대 있었고, 운전자가 내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계속 메세지 보내던 호스트인줄 알고 엄청 반가워했는데 호스트 친구라고 한다. 호스트 집으로 가는길에 작은 마을로 왔구나 싶었다. 하나의 길을 달리는 동안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본적이 없었고, 작은 집들이 모여사는 여러 마을들을 지나갔다. 여행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라 설렘이 가득찼다. 도착하니 진짜 호스트가 웰컴!이라고 큰 소리로 반겨줬다. 나이스 투 미츄. 땡큐땡큐. 통성명을 하고 짐을 나눠 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도착하자마자 티 마실래? 물어봐서 예스예스 땡큐땡큐 하고 방에 짐을 대충 풀었다. 간단한 안내를 받고 로비 옆에 있는 테라스로 나왔다. 정면에는 호스트가 가꿔놓은 넓은 정원이 있었고, 왼쪽을 보면 산과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있었다. 초록한 것들을 바라보며 햇살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아, 여기서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쉴 수 있겠구나. 몰려오는 안도감에 흠뻑 젖고 있는데 호스트의 가족이 편하게 앉으라며 차를 내려줬다.

”델리랑 심라에 있다 왔구나. 쿠마르산 어때?”


나는 깊은 숨을 내쉬고서 말했다. 


“살 것 같아요”


내 진심이 느껴졌는지 그들은 함박웃음을 짓고서 릴렉스, 인조이 유얼 타임을 외치고서 자리를 떠났다. 따듯한 차를 마시면서 산을 바라보는데 웃음이 나왔다. 경적소리가 없고, 사람들이 북적북적 거리지 않는 곳, 많은 것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곳, 나는 그저 바람을 맞고 새소리를 들으면서 햇살을 즐기면 된다. 모든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랄까. 아, 정말 살 것 같다.


쿠마르산에서는 별로 하는 것 없이 산을 보면서 멍때리다 지루할 때 쯤 영상 편집을 하면서 지낼 줄 알았다. 완벽한 오산이였다. 한국인 게스트가 오다니! 신난 호스트는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괜찮으면 근처 마을 구경갈래? 그러길래 오케오케 굳굳을 외치며 따라 나섰다. 부부 호스트와 집 근처 폭포를 보러 가는 길에 마을에 대해 설명해줬다. 이 동네 이름은 뭐시기고 저 동네 이름은 저시기야. 작은 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골이였다. 


폭포를 보러 가는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산책이라길래 아무 생각 없이 온 것 치고는 경사도 있고 무성하게 자란 풀과 나무들이 내 눈을 가리기도 했다. 주변 경관이고 뭐고 다치지 않을려고 땅만 보고 걸었다. 호스트 발자국만 쫓아가다 갑자기 멈춰서길래 오잉? 하고 올려다봤는데 멋진 폭포가 있었다. 정말 아는 사람들만 올 것 같은 멋진 명소였다. 꽤나 큰 폭포가 솨아아아-하고 물을 뿜어내는데 사람들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아서 훨씬 좋았다. 호스트와 폭포 아래서 사진을 찍고 노느라 옷이 다 젖은지도 몰랐다. 그때부터 인터뷰 늪에 빠진지도 몰랐지만.


호스트는 홈스테이 사업을 키우고 싶어했다. 시골 마을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인이라는 외국인이 게스트로 와서 모든걸 기록해야한다고 생각했나보다. 영어를 잘 못하는데 계속 인터뷰를 하는게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아이라이킷, 어썸 플레이스 굳굳 하고 표정으로 보여줬으면 됐는데 호스트가 너무 진심인걸 아니까 어떻게 말해줘야 도움이 될까 고민하다 굳이 스트레스를 조금 받았다. 호스트는 나에게 여기저기 구경시켜주고 싶어하면서도 컨디션 체크를 열심히 해줬다. 폭포에 내려와서 피곤하냐고 물어보길래 노우노우 암 오케를 외쳤다. 신난 호스트는 마을 구경 좀 더 하자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마을로 계속 걸어갔다. 얼마 안가서 여기는 친구 집이라고 하더니 그리로 갔다. 안전한 느낌이 들면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여행을 애정하는 편이라 이리로 저리로 휙휙 상황이 변하는 이 과정들이 재밌었다. 누구를 만날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랜덤박스의 재미, 어쩌면 극한의 도파민 중독자일지도 모르겠다만.


집으로 가니 또 다른 부부가 있었고 그 집은 전통 가옥이라고 했다. 한국 전통 가옥이랑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달랐다. 우리나라 아궁이가 있는 집을 보면 부엌이라는 공간이 크지않고, 아궁이를 쓰는 용도 정도로만 활용하는데 여기서는 부엌 겸 거실같은 공간이였다. 요즘 우리나라 아파트랑 비슷한 느낌이랄까. 인도 거리를 걷다보면 여기저기서 모닥불 피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게 익숙해서 그런지 아궁이 곁에서 연기를 들이마시는 행위에 대해 거부감이 크게 없어보였다. 피어오르는 연기에 눈이 맵고 기관지에 안 좋을 것 같다고 걱정하는건 나 뿐이여서 티낼 수 없었다. 정말 배고프지 않았지만 인도는 게스트 이즈 골드인지라 그들은 뭔가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나는 로컬 체험을 좋아하지만 뭔가를 먹어야할 때 늘 두려워진다. 일단 긴장한 상태로 먹기 시작하는데 게스트라서 많이 줄 걸 알아서 두렵다.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억지로 끝까지 먹다 체해버린다. 집으로 돌아가면 어김없이 토하거나 하루종일 속이 불편하다. 그렇지만 늘 그렇듯 선택권은 없다. 내 마음을 숨긴채 와우, 굳굳. 을 외치며 조용히 기다렸다. 부엌은 그냥 일반 시멘트 바닥에 천 깔개를 깔아 그곳에 앉아서 불을 떼고 요리를 해먹는 형태였다. 신기해서 부엌을 둘러보다 벌레를 많이 봤다. 한국에서, 내 집에서 봤다면, 내가 자는 곳에서 발견했다면 우악미친우아!@#!@$#@이렇게 될 바...ㅋ..ㅟ..벌..레 였지만 그곳에서 난 차분했다. 뭐랄까 집 안이지만 바깥과 너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있는 느낌이라 벌레가 없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걸까. 크게 놀랍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호스트는 다시 카메라를 들이밀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 내용은 항상 같았다. 이 체험활동 어때? 기분 어때? 마음에 들어? 바선생에 대한 의식도 줄일 겸 잘됐다 싶었다. 혹시 한국어로 해도 되냐고 물었고 호스트는 신박했는지 더 좋아했다. 그 때 인터뷰는 다 어떻게 쓰이고있는지 전혀 모르겠다만 부디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시도때도 없이 카메라를 갖다대며 나에게 경험을 공유해달라고 하는 호스트가 부담스럽긴 했다. 그치만 또 진심을 다해 내가 즐기길 바라고 편하게 해줄려고 노력하는게 느껴져서 그저 부담스럽다고 욕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나도 고프로로 영상을 찍고 있는터라 오히려 마음 편하게 같이 서로 찍는거에요! 암묵적으로 서로 오케오케한 느낌이라 영상 찍기가 편했다.


인터뷰를 한바탕 하고나니 음식이 완성되었다. 밀가루 같은걸 물에 풀어서 하염없이 저어 만드는 요리였는데, 우리나라 죽 만드는거랑 비슷했다. 그걸 ‘기’라는 정제된 버터에 발라서 먹는 음식이었다. 사실 맛있지 않았다. 하지만 난 손님이고 그들의 대접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보답하고 싶으니까 열심히 두 손가락을 움직여 퍼먹었다. 근데 아무리 먹어도 양이 줄지 않았다. 그걸 알아챈 호스트가 진짜 안먹어도 된다고, 그만 먹으라고 여러번 말해준 덕분에 그 날 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차라리 체하더라도 끝까지 다 먹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후회를 하면서도 오늘 안 체했다. 아싸. 이런 생각이 왔다갔다했다. 전통가옥에서 요리를 해먹고 차도 마시고나서야 자리를 떴다. 좋으면서도 아쉬웠던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남자 호스트 한 명이라 대화를 하는게 쉽지 않았다. 힌디어를 안다면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텐데 싶었지만 언어라는 장벽이 있어서 비언어적인 태도와 행동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서로의 눈빛과 태도로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 함께 시간을 보내고싶은지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집으로 가는건가 싶었는데 집 도착해서 마트를 간다고 했다. 보통 나의 숙박 예산은 만원 이내인데 여긴 4-5배 되는 곳이였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평소 예산보다 비싼 금액이라 연박을 할지말지 고민했지만 이렇게 좋은 마을과 숙소를 만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연박을 하기로 결심했다. 연박을 한다면 나도 요리를 해먹어야하니 마트를 따라간다고 했다. 마음은 집에가서 자고 싶었지만 오늘 하루 빡세게 할거 다하고 내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레츠고를 외쳤다.


읍내에 있는 마트로 가서 볼 일을 보고 맞은편에 있는 옷 집으로 갔다. 호스트 친구가 운영하는 옷집인데 거기서 또 차를 마시고 가라고 해서 시간을 꽤 보냈다. 돌아가는 길에도 여기저기 모두 호스트 친구의 집이자 가게라 인사하고 또 인사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마을에 산다는건 이런걸까 괜히 소속되는 기분이 들어 안정감이 들었다. 집으로 가서 쓰러져 자고 싶었지만 저녁을 해먹자는 말에 방으로 갈 수 없었다. 사실 오늘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청 배고픈 상태였는데 호스트가 본인들이 아침에 요리했던 “칠리빠니르”라는 음식을 내어줬고 나는 설거지를 해버렸다. 인도와서 제일 맛있게 먹은 음식이었고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매일매일 먹어도 맛있게 먹을 자신이 있는 음식이였다. 그 모습을 본 호스트가 뿌듯했는지 오늘 저녁은 다른 방식으로 요리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나보다.


오늘 마트에서 개인 물품을 산거 빼고는 돈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호스트가 이것저것 구경시켜주고 뭐든 척척 내어주는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내가 시키는대로 요리를 하겠다며 선전포고했다. 호스트의 지휘아래 양파를 썰고 전통 음식인 짜빠띠도 만들어봤다. 역시나 매 활동마다 인터뷰가 남아있었지만 이미 피로도가 가득차서 괜찮았다. 여자 호스트를 따라 짜빠띠를 만드는데 너무나도 소질없는 나의 능력 덕에 호스트 부부가 행복해했다. 밀가루를 만지고만 있어도 그들은 유쾌하게 웃었다. 만드는 과정이 너무 우스워서 나도 코를 먹으며 웃어댔다. 가평에 와서 같이 노는 기분이 들다가도 요리를 할 때 향신료를 10가지 가까이 쓰는걸 보고 아 여기 인도였지. 싶었다. 음식을 다 만들었을땐 거의 9시였다. 새벽 6시부터 움직인 나로서는 이제 그만 집으로 가고 싶었다.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싶은 자이언티 마음을 아시는지요... 하지만 가긴 어딜가. 짜빠띠 만들어야지?


호스트는 캠프 파이어를 보여주겠다며 바깥에 모닥불을 열심히 피웠다. 잠시 불멍을 하면서 지쳐있던 모든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아무말도 안하고 그저 차가운 공기와 따듯한 불 속에서 에너지를 얻었다. 그러다 먹은 요리는 정말로 꿀맛이었다. 점심 때 먹은것과는 다른 버전의 칠리빠니르였다. 향신료에 따라 맛이 이렇게 저렇게 휙휙 바뀔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밥까지 다 먹고나니 잠이 쏟아져왔다. 북인도로 올라와서 적응하지 못한 내 몸은 밤 공기를 조금만 먹어도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심라로 도망쳐온 이후부터 매일 감기약을 달고 살았다. 평소에 감기도 잘 안 걸리고 어디 안 아픈 사람이라 여행중에 조금이라도 아픈 구석이 보이면 난리를 쳐서 막게된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평소에 안 아픈 사람, 예 접니다. 호스트가 내일 또 다른 마을 구경시켜주고 싶은데 본인들 모두 일이 있어서 일찍 나간다고 했다. 원하면 노트북을 들고 다른 마을가서 각자 할거 하는거 어떻냐고 했다. 같이 또 따로 그 방식은 너무 좋은데 그 말을 듣자마자 아싸 이제 내 세상!!! 이 집 내꺼!!라는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화색이 돌았다. 영상 데이터가 너무 많이 쌓여서 내일은 집에서 쉬면서 영상 만들어야할 것 같다고. 오늘 늦게 자서 내일 늦게 일어날 것 같다고. 거절을 하고 드디어 방으로 돌아왔다. 와 진짜 긴 하루였구나.다음날 호스트 아이들은 학교로, 부부는 각자의 일을 하러 떠났다. 이 큰 집과 정원 모든게 다 나의 공간이 되었다. 신난 나는 요리와 커피를 만들어 첫 날 볕을 쬐던 테라스로 갔다. 맛있게 먹고 드러누워 멍 때리고 폰을 보다가 정원도 즐겨야 된다는 생각에 마당으로 내려갔다. 가만히 산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너무 좋아서 여행의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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