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근교에서 1박을 하고 한참 버스를 타고 델리로 들어갔다. 델리에 가까워질수록 교통은 혼잡하고, 인구는 훨씬 많았다. 아 그래, 델리가 이런 곳이였지. 한산한 곳에서 몇명만 부대끼며 살다가 다시 수많은 사람과 부딪히며 지내는 곳으로 돌아왔다. 대부분 한국인들은 여기처럼 유명한 관광지만 보고 돌아갈텐데… 인도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지 알까? 그들의 주 수입이 사기가 아니라는걸 알까? 동서남북에 따라 문화도 생김새도 말투도 모두 다른 큰 나라를 겨우 몇 개의 장소와 마주치는 몇명으로만 판단하고 다시 가고싶지 않은 곳으로 평가하는 현실이 아쉬웠다. 3개월 전 처음 왔을 때 나에게 비싼 커피를 사주던 델리 커플, 호스텔에서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며 진심으로 안전여행을 기원했던 룸메이트들, 친절했던 쿠마르산 호스트, 완벽한 이방인으로 지낼 수 있게 편안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사라한 게스트하우스, 리와살에서 사과하던 식당 주인장, 까솔의 숙소 주인, 마날리에서 만난 소년과 남인도 식당 사장, 맥간에서 만난 호스텔 주인장, 리시케시에서 같이 살던 사람들, 진정한 홈스테이를 맛보게 해준 샘의 가족들이 순서대로 지나가며 아무래도 인도는 감히 상상만으로는 부족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는 미디어에서 말하는 자극적이고 위험한 곳만은 아니였다. 게으르고 사기만 치는 나라가 아니였다. 물론, 유투브에서 집중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다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걸 누구라도 알아줬으면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나도 처음에는 인도 사람들을 분류하기 바빴다. 음, 이 사람은 사기꾼, 저 사람은 장사꾼. 나에게 사기를 치려고하다니? 못된사람. 저 사람은 그냥 물건을 잘 팔고싶은 착한 사람. 그러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무례하게 본인의 요구를 무작정 들어주길 바라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지만, 아무 대가 없이 나를 도와주려고 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나에게 잘해주느냐 마느냐에 따라 좋은 사람 또는 나쁜사람으로 분류하는 애매한 방식때문에 그 속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델리에서 대화 내내 카슈미르 패키지로 돌아가던 사람일때는 나쁜 사람. 머리 자를 미용실을 찾고자 땀 한바가지 흘리면서 한시간 넘게 돌아다녀준 사람일 때는 착한 사람. 사라한에서 내 돈을 훔친 범인은 나쁜 사람. 하지만 범인이 내가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심지어 도난 이후에도 나에게 여러 도움을 주고 선의를 베풀었을 때는 착한사람. 그 친구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나쁜 습관을 가진 좋은 사람은 아닐까. 평소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는 나쁜 사람일까.
왜, 유독, 인도에서는 그렇게 흑백으로 나누어 보았을까. 눈 앞에 있는 인도사람들을 보고도 인터넷에서 봤던 사람들로 착각하기 바빴다. 나에게 해맑은 미소와 따듯한 눈빛으로 호의를 베풀때도 경계하고 의심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마련인데 왜 나는 인도 사람들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았을까. 인도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다는걸 깨달았다.
어느나라에서 머물든 그렇다는 당연한 상식을 인도에서는 자꾸만 까먹었다. 내 색안경을 던져버리고 편견을 깨는데 시간이 꽤 오래걸렸다. 혼자 다투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인도에 빠져버렸다. 시끄러움이 가득한 빠하르간지에서 마셨던 짜이 한잔, 공짜를 바라지않는 아이들의 눈망울, 오랜 시간 일을하고도 축제를 꼬박 챙기는 그들의 흥, 각자의 신을 존중하는 문화, 여기저기 형형색색 에너지 넘치는 색감, 사람의 손때가 많이 묻지않은 히말라야 산맥, 10년째 변하지 않는 사기 수법까지도 매력적이었다.
그 중에도 인도가 가장 매력적인 이유는 인생만큼이나 내 마음대로 안되서다. 내가 아무리 철저히 계획을 했다한들 그걸 이룰 수 있을지는 그날의 신에게 맡길 수 밖에 없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그러려니. 그럴 수 있지. 한시쯤 버스가 온다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코이띠까네이. 환승할 요령으로 목적지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버스를 탄다. 버스가 잘 가다가 멈춘다. 코이띠까네이. 나는 멈춘 시간동안 과자나 음료수를 마시며 한없이 멍때린다. 옆자리 친구와 수다도 떤다. 다시 기사가 올라탄다. 코이띠까네이. 내 버스를 찾아 다시 앉는다. 버스가 달린다. 양떼를 만나 버스가 갈 수 없다. 코이띠까네이. 버스 기사와 한 마음이 되어 휘파람을 분다. 양을 한구석으로 몰고서 다시 출발한다. 코이띠까네이. 인도는 늘 그런식이다. 어디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긴다해도 받아들이고 그 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면 된다. 그럼 어찌 흘러가든 다 괜찮다. 이게 인도에서 배운 삶의 방식이다.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 나를 내려놓고 받아들이면 안절부절할 이유가 없다.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평화가 찾아온다. 한국에 돌아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그 때의 경적소리를 떠올린다. 뜬금없이 시동을 꺼버리는 기사의 행동을 생각한다. 그래, 내가 불안하고 긴장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어. 나만 손해야.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마음이 편해진다. 나도 어느새 말버릇이 생겼다. 코이띠까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