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공부
프랑스어를 공부한 것이 옷 사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이거, 완전 엉망으로 쓰여 있네. 사지 말자.”
티셔츠를 사려고 돌아다니다 보면, 옷에 엄청 큰 글씨로 프랑스어 단어나 문장들이 적힌 경우가 많다. 철자라도 제대로 지켜주면 좋겠건만, 오탈자는 기본에 문법도 깡그리 무시하고 이상한 단어들을 끼워 넣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흐린 눈’을 하고 사기엔 내 안의 프랑스어문학 전공생이 양팔을 휘저으며 나를 막아서기에, 색상과 재질이 마음에 들어도 슬그머니 내려놓고 만다.
너무나 소소한 순간이지만, 의외로 그런 날에 프랑스어 공부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하지 못했다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옷을 사서 입고 다녔을 것 아닌가. ‘일단정지’라는 한국어가 적힌 바지를 아무것도 모르고 입고 있던 베트남인 친구가 문득 생각난다.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처음 시작한 프랑스어는 3년 내내 매 수업이 괴로웠다. 문법, 회화, 독해, 청해, 그 과목도 다양했는데 하나같이 다 싫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초등학교부터 12년간 수업을 결코 '땡땡이' 쳐본 적 없던 나름 모범생이었던 내가, 딱 한 번, 프랑스어 회화 수업을 빠진 적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대학 입시 관련 다른 활동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결국 선생님한테 걸려서 둘 다 엄청 혼났다.
이토록 프랑스어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대학 전공까지 프랑스어가 되었다. 이렇게 질긴 인연일 줄이야. 엄밀히 말하면 프랑스어문학이어서, 나는 전공을 공개해야 할 때면 ‘문학’ 쪽에 강세를 주어 이야기하거나, 때로는 복수 전공한 신문방송학만 밝히기도 했다. 1년간 프랑스에 교환학생도 다녀왔고, 프랑스어 자격시험인 델프에서 중상급 정도인 B2도 땄지만, 결국에는 나도 '전공자지만 잘 못해요'가 되어버리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스어를 계속 공부하고 있다니, 사람 일 참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한때는 나를 숨 막히게 하던 것이, 이제는 일종의 취미가 되었다. 나도 내가 왜 계속 공부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자격시험을 보고 싶은 것도 아니고, 위에서처럼 옷을 살 때가 아니면 당장 써먹을 일도 없다. 이 글을 쓰는 건 그 이유를 찾아보기 위함이기도 하다. 때로 글로 표현하다 보면 나도 알지 못했던 내 진심이 나오기도 하니까.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어릴 때 미국에서 잠시 살았다. 물론 집에서는 한국어를 썼지만 세상이 온통 영어였던 나는 한글보다 알파벳에 더 빨리 적응했다. 그러니, 하마터면 내가 외국어 습득에 매우 재능이 있다고 생각할 뻔했다. 다행히 프랑스어가 그 생각을 저지시켜 주었다. 나는 프랑스어를 통해 비로소 외국어를 배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왜 사람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해 온 영어를 성인이 되도록 갈피를 못 잡는지, 여실히 공감하게 되었다. 그게 이 모든 애증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시작한 공부였지만, 늘 그렇듯 쓸모없는 배움은 없었다. 프랑스어를 통해 내 세상은 계속해서 넓어졌다. 교환학생 생활 덕분에 유럽에서 1년간 생활하며 여행할 기회가 주어졌고, 다녀온 뒤에는 난민 지원 단체에서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국가 출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그 봉사 경험으로 대학생 기자단을 통해 실제 기자와 함께 기사를 써볼 기회까지 생겼다. 이후 두려움 없이 아프리카를 2개월간 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프랑스어 덕분에 시야가 유럽을 너머 아프리카까지 넓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더 이상 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은 내 인생은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앞으로는 AI 기술의 발달로 외국어 능력을 기반으로 한 통번역계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다지만, 나는 그렇다고 해서 외국어 공부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외국어 자격시험이 지금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취미로 공부하는 건 여전할 것이다. 번역기든 통역기든, 무언가를 거치는 게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거나 못 미더운 사람들은 계속 스스로 공부할 것이니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내 말의 의도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막으로 전달되지 않는 의미까지 알아챌 수 있는 건 그 언어를 직접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뿐이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프랑스어 공부를 하고 있다. 그 방법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고 있다.
첫 직장에 있을 때는 독학을 해보기도 했고, 주 2회 퇴근 후 저녁 수업을 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외부의 자극이 없는 독학은 늘 작심 일주일 정도에서 끝이 났고, 학원은 너무 멀었다. 그리고 여럿이 듣는 수업이다 보니 내가 참여하는 것은 숙제일 뿐, 실제로 말할 기회도 잘 없었다.
그렇게 뒤늦게 찾아낸 것이 화상 프랑스어였다. 일주일에 2번, 20~30분씩. 종종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실 때도 있지만 일상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 부담 없는 분량이다. 중간중간 여행이나 출장, 각종 일상적 바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중단했다 다시 시작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거의 10년 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는 건 뿌듯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혼자 병행하는 방법도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좋아해서 수도 없이 봤던 미국 드라마들을 프랑스어 버전으로 틀어 놓는 것, 다른 하나는 프랑스어 책을 틈틈이 읽는 것이다. 전자는 이미 전체 내용과 대사 일부를 기억하고 있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보는 것이기에 공부라는 느낌이 덜 든다. 후자는 전자보다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다행히 독서를 좋아하는 편이라 한 페이지씩이라도 틈틈이 읽어본다. 두 방법의 공통점은, 한 콘텐츠 안에서 비슷한 단어와 표현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 앞부분에서 새로 배운 단어가 뒤에 다시 나올 때, 그걸 이젠 한 번에 알아들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이란!
글을 쓰고 보니, 내가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재미를 위한 발판을 다지기 위함이었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거나 프랑스어를 이용해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열망은 딱히 없다. 나는 그냥 프랑스어 덕분에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 좋을 뿐이다. 새로운 단어를 알아들을 때의 쾌감, 모국어가 프랑스어인 사람을 처음 만날 때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해 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와 같은 말을 들을 때의 기쁨 같은 것들 말이다.
크게 성장하지는 않더라도, 실력을 적당히 유지하는 것만이 나의 목표라면 목표다. 반강제적인 고군분투가 아니라, 내게 가장 재미있게 다가오는 방법으로 꾸준히 이어나갈 때 뭐든지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내 방식대로 프랑스어를, 그리고 프랑스어가 내게 가져다주는 세상들을 가까이할 것이다.